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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부르크의 최중원 May 02. 2021

함부르크, 함부르크

점심을 준비하면서

하루에 세 끼를 매 번 챙겨 먹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다.  요리를 하는 것에도 밥 먹는 것에도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든다. 요리를 하기 위해서는 식재료가 필요하기에 장을 봐와야 하는데, 이 역시 만만찮은 일이다. 코로나 때문에 식당에서는 음식을 테이크 아웃으로만 제공하는 데다가, 우리 동네는 상업공간이 서울처럼 주거지 근처에 고밀도로 몰려있지 않기 때문에 편하게 음식을 받아올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식당은 몇 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렇게 맛이 있지도 않다. 


처음에 독일에 왔을 때에는, 장을 보러 가는 것도 요리를 하는 것도 신났다. 슈퍼마켓에 가면 신기한 재료가 사방에 깔렸으니 그럴 만했다. 치즈며 생햄은 왜 이렇게 종류가 많은지. 와인이며 고기는 너무나도 저렴했다. 삼 년이 넘게 독일에 살고 있는 아직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식재료가 종종 보이고, 요리하는 것은 여전히 재미있지만, 어떨 때는 정말 귀찮아지기도 한다.


그럴 때 부엌 창문 너머로 건너편 건물을 보면, 열과 오를 맞춰 나 있는 창문 너머로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우리 집은 건물의 꼭대기층, 한국식으로는 6층에 위치하고 있는데, 보통 유럽 도시에서 6층은 주거용 건물 치고는 높은 편이다. 그래서 우리 집 창문가에 서면 길 건너 맞은 편의 집들을 내려다볼 수 있다.   우리가 점심 준비를 할 때면 사람들도 부엌에서 점심 준비를 한다. 저녁 요리를 하면서 창 밖을 보면 사람들도 저녁을 하느라 바쁘다. 분주하게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고, 씻고 손질하고 볶고 굽는다.  맞은편 건물에 사는 사람들도 우리처럼 매끼마다 꼬박꼬박 요리해 먹으면서 살고 있다. 


당연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도 나는 작은 만족감을 느낀다. 나와 같은 시간에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맞은편의 건물 안에 가득하다는 것을 눈으로 매번 확인하는 것. 저 사람들도 우리처럼 먼저 해 먹어야 하는 냉장고 속 재료들을  체크하고, 매번 요리해 먹는 것도 이젠 지겹다고 생각하다가도 막상 먹기 시작하면 너무 맛이 있어서 그릇을 싹싹 비운 다음에 부른 배를 만지며 십 분만 소파에 앉아있다가 뭔가 생산적인 일을 시작해야지 하고 생각하겠지. (아닐 수도 있다)


날이 아직 쌀쌀할 때에도, 남자들은 상의는 걸치지 않은 채로 팬티만 입고 요리하는 경우가 많다. 자랑할 만한 몸이 아니지만 거리낌 없다. 한국보다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는 독일인이지만 부엌에서 팬티 차림으로 요리하는 모습은 남에게 보여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이좋게 요리를 함께 하며 그 바쁜 와중에 틈을 내어 백허그도 하고 키스도 하는 커플도 종종 보인다. 창가에 놓고 키우고 있는 바질을 요리하는 중에 따서 곧바로 먹는 아주머니도, 부엌 창가에 서서 바깥 구경을 자주 하는 할머니도 있다. 이 사람들은 어떤 요리를 그렇게 매일 해 먹고 있을까? 우리 집 창가에는 새 관찰용 쌍안경이 항상 준비되어 있지만, 쌍안경으로 건너편 집 부엌의 프라이팬에 올려진 요리 재료를 보는 것은 할 수 없어서 아쉽다.  


우리는 가끔 커튼이 처진 창가 앞에 자리 잡고 앉아서 매일 밖을 관찰하는 회색의 고양이를 쌍안경으로 구경하기도 한다. 커튼 때문에 방 안쪽은 보이지 않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털은 언제나 윤기 나고, 표정에는 막 밥을 먹고 나서 소파에 드러누워있는 우리들처럼 귀찮음이 가득하다. 한 번은  길을 산책하던 개들이 창가의 고양이를 발견하고 멍멍거렸는데, 고양이는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물론 고양이는 우리 쪽을 보지도 않는다. 우리에겐 고양이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어떤 방법도 없다. 레이저 포인트를 사볼까 나는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실례에 민폐에 유난이었다. 쌍안경을 들고 건너편 건물을 관찰하는 우리를 누군가가 발견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우리의 고양이 구경은 언제나 아쉬움을 남기고 일찍 끝난다.  


회색 고양이의 주인은 가끔 커튼을 걷고, 창가에 위치한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무엇인가를 노트에 끄적인다. 책상에 앉은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제일 오른쪽의 일층 집 창문 너머로는 침대가 보이는데, 그곳에 사는 사람은 언제나 자고 일어난 다음에 이불을 깔끔하게 정리해두는 모양이었다. 정돈된 침대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검은 덩어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실루엣은 개의 모습이었는데 움직임이 전혀 없어서 우리를 혼란에 빠트렸다. 아마도 개 모양의 인형인 듯했다.


민선은 그 건물에 사는 사람 한 명의 얼굴을 익혔다. 매번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자전거를 타고 들어오는 사람이라고 했다. 언젠가 장을 보러 오는 길에 민선이, 앞에서 다가오는 여자가 바로 그 사람이라고 했다.  당연히 그 사람은 우리를 알지 못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점심 요리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오늘 점심은 중국식 가지 새우볶음이다. 두반장이 없지만 대신할 만한 여러 소스들이 있다. 프라이팬을 닦으면서 나는 건너편 건물을 본다.  회색 고양이는 어김없이 밖을 구경하고 있다. 부엌에서는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오른쪽의 일층 집 침대 이불은 아직까지도 정리되어 있지 않다. 한가운데 놓여있어야 할 검은 인형도 없다. 오늘은 토요일이니 조금 늦장을 피워도 됩니다, 하고 얼굴도 본 적 없는 이웃에게, 머릿속으로, 그것도 한국어로 말을 건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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