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함부르크의 최중원 May 22. 2021

허브(혹은 뿌리파리) 키우기

함부르크 생활

어느 프로그램에선가 제이미 올리버가 나와서 무엇인가를 요리하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 아마도 고등학교나 대학교 1학년 정도였을 때니 벌써 10년도 넘은 일이다. 무슨 요리 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에 남는 것은, 제이미 올리버가 요리를 하던 중간에 텃밭으로 나와서 이런저런 허브를 한 움큼씩 뜯어갔던 일이다. 양식이라고는 아직 아웃백이나 TGI 프라이데이 정도가 다이던 때, 파스타 하면 체인점 쏘렌토가 떠오르던 시절이니 나로서는 그 허브들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부엌 뒤편에서 이런저런 식물을 키우면서 그때그때 따먹는다니, 그 건 꽤 멋져 보였다.   


독일에서 봄은 우선 제일 먼저 알디며 페니며 에데카나 레베에 도달한다. 진열대에서 귤이 점점 사라지고, 그 자리에 딸기나 체리, 복숭아나 살구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슈파겔 매대가 선다면 그야말로 찐 봄이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온갖 종류의 허브 화분들도 매장 입구에서 자신의 존재를 어필한다. 


나와 같은 뜨내기 유럽 거주자는 그 유혹을 견디지 못한다. 바질을 보면 금방 입에 바질 페스토의 고소한 맛, 또는 카프레제 위에 올려져서 맛의 에지를 잡아주는 상큼한 풀 맛이 느껴진다. 로즈마리를 보면 곧바로 로즈마리와 버터 향이 입혀진 스테이크가 떠오른다. 민트를 보면 차가운 여름의 오후에 만들어 먹는 내 맘대로 칵테일 생각에 벌써부터 시원해진다. 어떤 시럽이든 어떤 베이스든 좋다. 탄산수이든 토닉 워터든 상관없다. 적당히 짓이긴 민트 잎 몇 쪽만 넣으면 칵테일바가 부럽지 않다.  차이브를 보면 버터와 섞어서 갓 구운 브레첼에 발라먹고 싶어 진다.  


엄청난 자제력을 발휘해서  나는 바질과 로즈마리 한 화분씩만 집안에 들였다.  그 뒤부터 우리의 식사는 더 풍성한 향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사소한 문제가 생겼다. 언제나처럼 허브와 함께 불청객이 섞여 들어온 것이다. 허브 키우기는 만만하게 볼 게 아니다. 당신은 방금 끝이 보이지 않는 해충과의 전쟁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뿌리파리는 아마도 허브를 키워본 적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제일 익숙한 벌레일 거다. 초파리만큼 작은 날벌레인데, 흙속에 들어가서 알을 낳는다. 알은 4일 만에 깨어나 14일 동안 유충이 되는데, 이때 식물의 뿌리를 먹으며 자란다.  당연히 식물에게는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식물의 뿌리를 먹고 잘 자란 유충은 4일가량 번데기 상태를 거쳐 성충이 되곤 8일 정도 살다 죽는다. 이 놈들은 번식력이 엄청나서 잠깐 방심했다가는 허브 화분 위를 군단처럼 날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사실 뿌리파리를 제거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제거하기 위한 여러 가지의 약품들이 이미 나와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애들이 머무는 화분에 자라는 식물이 바질과 로즈마리라는 것. 직접 따 먹을 허브인지라 아무래도 살충제를 쓰기는 좀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우선 끈적이 스티커를 화분 주위에 여러 개 새우고, 심심할 때마다 허브 화분이 있는 창가로 와서 발발거리며 돌아다니는 뿌리파리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눌러 잡는 식으로 대처한다.  한참 많이 나올 때에는 나와 민선이 각각 하루에 열 마리씩은 족히 잡았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네댓 마리가 보이고, 점심 먹고 가보면 또 네댓 마리가 보이는 식이다.  맨손 가락으로 벌레를 눌러 잡는 감각은 썩 유쾌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때마다 휴지 같은 것을 쓰기도 아깝다. 하도 여러 번 잡아보다 보니, 이제 나는 딱 필요한 만큼의 힘만을 가할 수 있게 되었다. 너무 으스러지지는 않을 정도의 힘만 가하면, 뿌리파리를 처치하면서 나의 불쾌함도 최소화할 수 있다.  허브를 데려온 지 이제 일주일이 좀 넘었더니, 뿌리파리도 한 세대가 지났는지 이제는 이전처럼 많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눌러 잡은 놈들과 끈끈이 스티커에 붙어있는 놈들을 모두 합치면 족히 100마리는 넘게 잡았을 것이다.


작년에 나는 바질과 로즈마리 외에도, 민트와 고수도 함께 키웠었다. 그때는 더 심했다. 뿌리파리는 물론이요 응애와 총채벌레까지 들끓었었다. 눈에 보일랑 말랑 할 만큼 작고 하얀 진딧물같이 생긴 응애는 잎의 뒤쪽에 기거하며 잎맥에 빨대를 꽂고 수액을 빨아 마신다. 응애보단 크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쉽게 찾을 수 없는 총채벌레는 길쭉하고 검다. 응애보다  식성이 난폭한데, 잎을 봤을 때 연초록색으로 꼬불꼬불 무엇인가가 기어간 흔적 같은 게 보인다면, 총채벌레가 잎을 갉아먹은 것이다.  매일매일 허브의 잎을 뒤집어보면서 응애와 총채벌레를 눌러 죽이는 것이 나의 루틴이었다. 과산화수소를 물에 섞어서 뿌려보기도 했고, 식물에게는 해가 없지만 곤충의 신경계를 마비시킨다는 님 오일을 구해서 뿌려보기도 했다. 샤워 부스에 허브화분을 가져다 놓고 돌려대면서 님오일을 뿌리면, 하얀 샤워부스 바닥에 후드득 떨어져서 괴롭게 몸을 꿈틀꿈틀하는 작은 벌레들을 보면서 나는 징그러움과 함께 전투에서 이긴 장수의 승리감, 혹은 묘한 쾌감을 느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결국 작년의 나는, 해충과의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다. 내가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해충들은 곧 다시 증식했다. 님오일은 허브들의 새싹을 검게 태워버렸다.  그 생명력 강한 민트가 먼저 스러졌다.  로즈마리가 뒤따랐다. 바질은 해충의 습격에도 꿋꿋하게 자라서 무성한 정글이 되었지만, 습격을 받지 않은 잎이 드물었다.  고수는 험한 꼴 당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다 먹어버렸다. 우리는 남은 바질 잎을 탈탈 털어서 바질 페스토를 해 먹고는 작년의 허브 농사를 종료했다.



작년에 매일같이 이파리의 뒷면을 하나씩 들춰보며 짜증을 나고 있던 나에게 민선이 허브를 키우면서 너무 스트레스받고 있는 것 같다고 걱정스럽게 말했다.  정말 나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이 작은 화분 하나도 몇 포기 안 되는 허브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니.  베를린에 살 때에는 베란다에 내다 놓았던 바질에 정말 엄청난 수의 진딧물이 달라붙어있었던 적도 있었다. 한 번은 나방이 바질 잎을 돌돌 말아선 그 안에 알까지 낳아놨었다. 새끼손가락 만한 애벌레가 바질 잎을 먹고 있던 모습을 봤을 때 내가 얼마나 기겁했던지.  어쨌든 그래서 작년에 나는, 화분에 담겨있던 흙을 비오 뮐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이제는 허브 화분을 들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누군가가 다짐은 깨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해던 것처럼, 그리고 올해 봄이 오자마자 다시 냉큼 허브 화분을 사고는 다시 해충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베를린의 마틴 그로피우스 바우 미술관에 갔을 때, 여느 때처럼 전시를 관람할 때보다 카페에 앉아서 메뉴판을 구경하는 것에 더 큰 감흥을 느끼던 우리는 카페 한쪽 벽을 크게 자리 잡고 있었던 허브를 키우는 시설을 봤었다. 투명한 유리벽 안쪽에, 갖가지 허브들이 여러 층으로 나누어 쌓인 채 자라고 있었다. 아마도 수경재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LED 전구가  식물의 발육을 촉진하는 파장을 지녔다는 보라색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샌드위치나 샐러드 볼 같은 식사 메뉴에 들어가는 허브를 키우고 있다는 듯했다. 오 꽤 괜찮잖아. 하고 나는 생각했다. 외부와 차단되어 있으니 벌레가 들어갈 일도 없다. 설사 섞여 들어간다고 해도 흙이 없으니 알을 낳을 곳도 없다. 키우는데 손이 갈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식물을 키우는 일에는 손이 좀 갈 필요가 있다.  겉흙이 마르면 물을 듬뿍 주고, 종종 창문을 열어서 바람도 쐬어 주고, 시든 잎을 솎어내 주고, 화분에 비해 식물이 크게 자라면 분갈이를 하고, 잎을 뒤집어가며 벌레를 한 마리씩 눌러 잡는 그 모든 일들을 통해서 나는 식물과 무엇인가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를 포착해서 말로 풀어내는 것은 내게는 쉽지 않다.  머릿속에는 진부한 설명들만이 떠오른다. 이런 수고로운 과정을 통해서 나는 세계와 연결된다. 자연의 위대함을 온몸으로 느낀다... 나를 수련한다... 뿌리파리를 눌러 잡으면서 손끝의 감각을 단련시킨다... 세상의 이치를 배운다... 무엇인가에 정성을 쏟는 기쁨을 느낀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사진을 얻는다... 혹은 정성을 들여 키운 허브일수록 더욱 맛있어진다... 그냥 간단히 이렇게 말해보자. 모든 것을 날로 먹을 수 있다고 해도 종종 어떤 것들은 날로 먹지 않을 필요가 있다. 또는 모든 정성은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받는다. 


제이미 올리버의 텃밭에도 사실 뿌리파리와 진딧물과 총채벌레와 응애가 득실득실 했겠지? 농약을 치지 않는 이상 그런 벌레들은 사라질 수가 없고, 제이미 올리버의 이미지라면 농약을 치느니 벌레들을 함께 좀 키우지 정도의 마인드였을 것 같다. 섬나라의 해충은 대륙의 해충보다 더 질기고 독할 테고... 그가 한 움큼 잡아 뜯어와 제대로 씻지도 않고 요리 위에 대충 흩뿌렸던 허브들과 함께 섞여 들어갔을.. 작은 동물성 단백질들... 역시 윤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미래는 곤충 단백질이다.


방금 윗 단락으로 끝을 내는 것은 좀 뜬금없으니, 진부하지만 소박한 근 미래에 대한 계획으로 글을 마무리하기로 하자. 한국의 동네 마트에서는 허브 화분들을 팔지 않을 테니, 조만간 한 번도 키워보지 않았던 타임과 오레가노도 들여놓아볼 생각이다. 끈끈이 스티커도, 과산화수소도, 님 오일도 아직 충분하다. 나와 민선의 손가락 끝 감각도 날카롭게 날이 서 있다.  






작가의 이전글 함부르크 생활 : 독일에서 장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