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최근 사용해 본 서비스
빨래 없는 생활의 시작, #런드리고
앱스토어에 '빨래'라고 검색하면 세탁특공대부터 런드리폴, 워시온 등 그야말로 세탁 앱이 넘쳐난다. 돈은 제대로 벌고 있는 건가 싶었는데, 얼마 전 65억원을 투자 유치했다는 세탁 서비스 '런드리고'를 알게 되었다. 서비스가 50억원 이상의 투자를 받았다는 것은 그래도 뭔가 있는 거다. 지금은 별거 없어 보이지만 내가 모르는 더 큰 계획이 있다거나, 내가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한 사이 어느새 빨래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해주는 것이 되어버린 세상이 된 걸 수도 있다.
비대면 모바일 세탁 서비스
다른 세탁 서비스와의 차별점은 런드렛을 이용한 비대면 세탁 수거 서비스다. 런드리고를 검색해보면 깔끔하고 이쁜 형광 연두색의 BI와 UI가 신뢰감을 주고, 직접 개발했다는 스마트 빨래 수거함 '런드렛'을 보면 '아, 여기는 뭔가 다르구나...'하는 느낌이 온다. 빨래를 모아서 밤 12시 이전에 문밖에 설치해두면, 누군가가 몰래 가져가서 빨래하고 다음 날 다시 몰래 가져다 둔다.
빨래가 없는 생활이라니
자취를 시작한 이래로 내 방에는 언제나 빨래 건조대가 펼쳐져 있었다. 부지런하게 빨래를 걷어 건조대를 세탁실에 넣어두는 날에는, 뭔가 집이 조금 더 넓어진 듯한 느낌에 기분도 좋았다. 세탁은 기계가 하지만, 꺼내서 널어야 하는 것은 내 책임이기 때문에 빨래를 하는 날에는 내 시간인 듯 내 시간 아닌 1~2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런 빨래가 없는 생활이라니?! 주저 없이 서비스를 신청하고 하루 뒤, 런드렛이 우리 집으로 왔다. 방금 두 번째 빨래를 맡기고서 느낀 점들을 주절주절 적어본다.
1. 옷장 안에 수많은 가방들
런드리고는 이불부터 와이셔츠, 물빨래까지 다양한 빨래를 다룬다. 그래서 런드렛 안에는 다양한 빨래의 부피를 제한하기 위한 천으로 된 가방과 옷걸이가 들어있다. 빨래의 양으로 비용이 측정되는 서비스이니만큼 당연히 필요한 것들이다. 그런데, 비슷비슷하게 생긴 이 가방 중에 내가 써야 하는 물빨래 가방이 뭔지 당최 알 수 없었다. 서비스 소개서의 설명 문구를 토대로 가방의 개수를 비교해가며 추측해서 알아냈다. 가방에 '물빨래용'이라고 네이밍 하나만 달아줬어도..
2. 건조대는 없어지고, 지퍼 옷장이 생겼다.
빨래 건조대가 항상 펼쳐져 있던 그 자리를 '런드렛'이 차지했다. 서비스 소개에서 보여줬던, 현관 앞 런드렛은 미래에서 온 깔끔하고 신박한 무엇이었다. 하지만 우리 집에 온 런드렛은 일주일에 한 번, 세탁 수거 요청을 하는 날 저녁 시간부터 빨래가 되어 오는 다음 날 자정까지를 제외하고는 온전히 그 모습 그대로 내 방 안에 우두커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깔끔해 보이는 저 디자인은 실제로 집 안에 있던 가구들 옆에 두면, 천으로 된 지퍼 옷장이 된다. 접어서 어디 넣어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
3. 갑자기 사라진 내 모든 옷
서비스 설명에는 수거 요청을 하면 밤 12시 이후부터 순차적으로 수거를 해간다고 했다. 내 모든 빨래를 문밖에 내놓은 경험은 처음이었다. 밤 9시, 설명서 대로 준비를 해놓고 문밖에 설치를 해둔 채 수거 요청을 했다. 한 시간 뒤, 편의점에 가려고 집을 나섰는데 뭔가 허전했다. 12시가 안 된 시간인데 런드렛이 통째로 없어졌다. 누가 런드렛 보고서 신기해서 훔쳐 간 줄 알았다. 내 옷이 몽땅 사라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잠깐 상상해봤다. 알고 보니 신청을 하면 더 일찍 가져갈 수도 있단다, 그리고 런드렛을 통째로 수거해가는 게 맞단다.
4. 왜 하필 토요일에 쉴까.
나는 항상 토요일 오전에 빨래하고 일요일에 갠다. 그러면 월요일 아침에는 기분 좋게 깨끗한 옷들이 가득 찬 옷장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런드렛은 토요일에 쉰다. 금요일 자정에 맡기려면 금요일 오전에 준비해서 내놓고 나가야 불금을 즐기고 올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일요일 밤에 내놓고 화요일 아침에 받아봤다. 빨래를 일요일에 받아보고 싶다. 아무리 빨래가 간단해졌다고 해도 퇴근하고 온 평일 밤이나 바빠 죽겠는 평일 아침에 빨래를 신경 쓰고 싶지 않다.
5. 30리터 물빨래는 얼만큼일까
30리터 물빨래 가방에 꽉꽉 눌러 담으면 일주일 동안 내가 입은 옷들과 수건을 맡길 정도가 된다. 너무 과하게 눌러 담아 맡기는 체리피커가 아닌가 하는 마음에 찔려서 고객센터에 물어봤는데, 그렇게 해도 된단다. 나 나름대로의 면죄부를 받고서는 그 이후로 30리터 같은 40리터짜리 물빨래를 맡기고 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30리터 물빨래 가방을 두 개 써야 하는데, 이러면 일주일마다 빨래에 드는 서비스 비용이 2만 2천원이다. 아직 나한테는 비싸다.
6. 정말 내 생활에 빨래가 없어졌을까
모든 것은 그대로다. 빨래를 모아두는 빨래통도 그대로이고, 옷을 입을 때나 수건을 쓸 때 빨래의 주기를 생각해야 하는 것도 그대로다. 세탁기를 돌리는 순간의 수고로움은 가방에 빨래를 개어 넣고 문밖에 설치할 때의 수고로움과 비슷하다. 빨래가 개어서 오기는 하지만, 셔츠나 바지, 속옷 등을 옷장에 넣으면서 다시 손을 봐서 넣어야 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빨래 건조대는 지퍼 옷장으로 대체되었다. 그래도 없어진 것이 있다면, 빨래를 널었을 때의 습함이 없어졌고, 누군가 갑자기 집에 올 때 급하게 빨래를 걷어야 하는 일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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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없는 생활이라는 말에 훅해서 돈을 들여 서비스를 받았습니다.
아직까지는 빨래가 없어졌다고 믿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진짜 빨래가 없는 생활은 엄마와 함께 살았던 어린 시절 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생활인가봅니다.ㅎㅎ
그래도 서비스가 더 성장해서 진짜 빨래 없는 쾌적한 삶을 제공해주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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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드리고를 사용한지 160일 뒤의 후기 글을 올렸습니다.
함께 보시면 도움이 많이 되실 것 같아요.
https://brunch.co.kr/@thoutbox/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