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링 May 07. 2017

무엇을 좋아하세요?

좋아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무엇을 좋아하세요?


특히 남녀간 첫 만남에서, 우리는 이렇게 묻는다. 그런데 사실, 이 질문에 금방 답을 내리는 사람은 많이 없다. 무엇을 좋아한다고 말하는게 나을까라는 미묘한 고민과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것은 있지만 과연 어느 범주의 것들을 말해야하는지, 금방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에 대해, 그리고 현재 내가 고민하는 것들에 대해 지인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야기를 나눈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문득 머릿속이 복잡해졌다고 한다.

'나는 왜 좋아하는 것이 없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나는 왜 이 삶에서 더 나아지려고 노력을 하지 않지?'

그녀는 조급해진 것이다. 무언가 뒤쳐진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나도 궁금해졌다. 좋아하는게 없는 삶에 대해서. 그리고 나는 왜 항상 이 주어진 삶을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걸까?


모든 것은 필요에 의해서 발생한다. 마음 속 허전한 빈자리가 사랑을 찾게하고,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우린 운동에 몰입하거나 누군가는 술을 마신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한다는 것은 어떤 '좋지 못한 상황'때문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특별히 좋아하는게 없다고 생각이 든다면, 지금 상황이 어떤 것에 대한 갈구도 필요하지 않은 지극히 안정적인 상태일 수 있다.


견딜만한 수준의 업무 스트레스, 작지만 나를 위한 여가생활, 소소하게 흘러가는 하루의 일상들. 무엇을 더 하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그런 생활은 그 이상의 행복을 가져다 줄만한 어떤 감정이 필요하지 않다. 그 안정스러운 생활이, 바로 좋아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현재 당신은 안정적인 현실 속에서 만족하며 살아가니 "그 삶을 그대로 유지하세요, 그렇게 좋아하는게 없는 삶도 있습니다"라고 말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좋아하는게 없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여러분은 좋아하는게 있을겁니다, 현재 모르는 것 뿐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일 수도 있다.


그런데 한가지, 나는 의문이 생긴다. 그 '안정'이라는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대기업의 어엿한 부장이어도, 곧 은퇴한다면? 가정주부로 평온한 가정을 꾸리고있지만, 든든한 가장이 어느 순간 사라진다면? 삶을 사랑으로 물들이던 그가 갑자기 이별을 고한다면? 안정이라는건 내가 능동적으로 만드는 상황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축복이 아닐까?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약간의 불안감이 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 현 상황, 그게 바로 안정이 아닐까?


안정된 상황이 사라졌을때, 그제서야 우리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우리는 불안정한 상황에 닥치면,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나에게 집중한다. 왜냐하면 나 자신은 유일하게 통제가 가능한, 그 불안한 와중에 가장 안정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에.


사실 나도 무엇을 좋아한다라고 고민없이 단번에 말할 수 있게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직장이 아닌 어딘가로 탈출하고 싶은 매일매일을 보내던 평범한 직장인인 나는, 방에 틀어박혀 혼자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쓸때마다 숨이 쉬어지는 기분이었다. 항상 숨은 쉬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내가 호흡하고 있구나, 내가 정말 살아있구나를 느끼는 순간은 이 때 뿐이었다. 이 감정은 사실, 좋아한다는 것 그 이상이었던 것 같다.


인간의 불행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작은 방에 홀로 틀어박혀 있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 파스칼 '팡세'


파스칼의 명상록에 나온 말처럼, 나는 불행 속에서 숨을 쉬기 위해 방에 홀로 틀어박혔다. 그 행위가 나에게 주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안다. 몰입하여 그 순간 만큼은 나 자신이 되는 것. 그리고 이 것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난 알고있다.


좋아하는걸 알아가는건 나에 대한 이해다. 우리가 사랑을 할때도 상대방을 알기 위해, 상대가 좋아하는게 무엇인지 알아내려 노력하는 것처럼. 첫 만남에서 무엇을 좋아하는지 묻는 것이 단골멘트인 것 또한,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이니까.

그리고 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누군지 알아가기 위한 긴 여정이다. 우린 살면서 끊임없이 여러 상황에 따른 감정에 부딫히며,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게되고, 그로써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렴풋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우리 모두는 작게라도 좋아하는게 있다. 길가에 핀 들풀이 좋거나, 방금 편 새 책의 종이 내음, 보드라운 이불을 덮을 때 그 폭신함 등. 좋아한다는건 거대한 감정이 아니다. 좋아한다는 것, 그 의미로 끝이다. 마음이 가고 계속 생각나고, 내 자발적인 의지로 하고 싶은 것. 이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좋아하는 것이 어떤 결론에 도달하길 바란다.


좋아함이 어떤 일이나 삶의 성과로, 또는 내 인생을 뒤바꿀만한 어떤 큰 기회로 다가오길 바라기도 한다. 우리는 좋아한다는 것에 너무나 큰 의미를 부여하는게 아닐까?


마치 내가 그림과 글 쓰는걸 좋아한다고 말하면, 먼 미래에는 작가라는 또다른 인생을 살 수도 있겠다고 누군가는 짐작한다. 그리고 자신보다 삶에 있어서 많은 선택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나에 대한 막연한 추측은 자기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약간의 조바심과 함께.

생각해보면 나 또한, 좋아하는 것의 그 행위가 아닌 가시적인 어떤 결과물을 말해왔다. 사실 우리 모두 다 그렇다. 마음 속 좀 더 깊숙한 곳의 이야기가 아닌, 상대방이 한번에 이해할 수 있는, 그리고 이야기하기 편한 말들을 주고 받는다.

만약에 나부터, 좋아한다는 것의 본질에 기반하여 말했다면 우리의 대화는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언젠간 그녀와 나, 우리의 이런 대화가 참 자연스러웠으면 좋겠다.


"나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감성에 젖어드는걸 좋아해"

"그래? 나는 퇴근 후에 마시는 맥주 한잔의 여유를 좋아해"


우리 모두 고민없이 내가 좋아하는것을 스스럼없이 대답할 수 있길, 나라는 사람에 대해 막힘없이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길,

나는 바래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