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마을 신령님 제 나이 마흔다섯엔 적어도 5도2촌 많게는 5촌2도 하게 해주세요. 아예 7촌도 좋습니다.
오시오 안동으로!
지난주 분노조절 장애의 초입까지 갔다. 기사를 하나 썼는데 애초 계획이 틀어져 손실이 난 상품 얘기였다. 이해관계자가 많았고 고객 돈을 잃은 뉴스라 예민한 기사였다.
사방에서 기사를 고쳐대려고 달려들었다. 어떤 기관은 기사에 빨간펜을 그어가며 삭제니 수정이니 요구를 해댔다. 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 언론 검열이 떠오르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러나 하나같이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이었다. 자신들의 실패를 감추려 사실을 축소하려는데 온 힘을 쏟았다. 근거는 빈약했다. 그들의 수정 요구 중에 받아들일 것만 받고, 이치에 맞지 않는 요구에는 맞섰다.
그러다 오후 6시쯤 분노의 둑이 무너졌다. 평소 참 무덤덤한 편인데 이날만큼은 감정 조절이 어려웠다. 고객의 생때같은 돈을 자신들의 잘못으로 잃어놓고는, 세상에 이 사실이 공개되자 부득불 감추려는 작태에, 한점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거짓으로 진실을 덮으려는 모습에, 난 스마트폰 마이크에 대고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언성이 높아지자 상대방도 나도 모두 벙쪘다. 그리곤 더는 수정 요구를 하지 않았다. 나는 감정을 다스리고 언성을 높인데 사과를 구했다. 둘 다 피차 회삿돈을 받아먹고사는 입장에서 감정을 끌어들일 필요까지는 없었다. 상대방에게 예의가 아니었다.
겨우 사태를 수습하고 하루를 마감했다. 한번 표면에 드러난 분노는 쉬 가라앉지 않았다. 그날 새벽까지 잠을 못 자고 뒤척였다. 안동으로 여행을 가기로 한 다음날까지도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안동으로 가는 국도 위에서 마음이 내내 답답했다. 뻥 뚫린 도로와 새파랗게 높은 하늘과 뭉게구름에도 마음은 풀릴 줄을 몰랐다.
3시간을 달렸을까. 안동에 다다랐고 여름의 기운을 한껏 머금은 초록의 들판이 펼쳐졌다. 들판, 하회마을, 낙조, 깊은 밤의 월영교를 보다 보니 어느새 분노가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5도2촌을 왜 하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내 나이 마흔다섯에는 5도2촌 혹은 4도3촌을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