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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청 Jun 25. 2021

[쓰담쓰談03]No Where, Now Here

마음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한다

1950년대의 일입니다. 스코틀랜드에서 포르투갈로 떠나는 포도주 운반선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선원이 출항 준비 점검을 위해 냉동 선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다른 선원이 냉동실에 사람이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하지도 않고 문을 잠가 버렸습니다. 냉동실에 갇힌 선원은 죽기를 다해 고함을 지르고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배는 출항해 며칠 후 리스본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선원들이 냉동 선실 문을 열었을 때 그 선원은 죽어 있었습니다. 동료 선원들은 냉동실 벽에 빼곡히 쓰인 글에서 그가 죽은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얼어 죽은 것입니다. 그는 얼어 죽으며 느끼는 감정을 냉동실 벽에 그대로 적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사실은 냉동실은 작동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냉동실 안 온도는 낮지도 높지도 않은 섭씨 19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선원을 죽게 한 것은 차가운 냉동고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상상에 의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영혼과 삶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바로 절망이라 이야기했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나약한 인간이 죄로 인해 절망하게 된다는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했지만 실제로 우리 일상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은 바로 걱정입니다.      

성서에는 “마음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걱정하는 사람은 모든 것이 걱정입니다. 있으면 있어서 걱정이고 없으면 없어서 걱정입니다. 해가 떠오르면 우산 장사하는 둘째 아들이 걱정이고, 비가 오면 짚신 장사하는 맏아들 때문에 걱정합니다. 해가 떠오르면 짚신 장사하는 맏아들이 장사가 잘되고, 비가 오면 우산 장수하는 둘째 아들이 돈벌이가 좋을 텐데 말입니다. 문제는 어느 쪽을 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자족하고 감사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조건 속에서도 만족을 발견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조건 속에서도 늘 불평을 합니다. 우리는 그 어떤 상황에도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비밀도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한 성자에게 “당신은 가진 것이라곤 없는데 어찌 그렇게도 밝게 살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 성자는 “지나간 일에 슬퍼하지 않고, 아직 오지 않은 일을 걱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고, 이미 지나간 일에 매달려 슬퍼합니다. 캐나다의 심리학자인 어니 젤리스키는 "모르고 사는 즐거움"이라는 저서에서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에 일어나지 않는다.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것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22%는 사소한 고민이다.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나머지 4%는 우리가 바꿔놓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것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말은 결국 걱정해서 해결될 것도 없고 달라질 것은 없다는 말입니다.     


조선 중기 송익필(宋翼弼)은 ‘족부족(足不足, 넉넉하여 모자람이 없든지 모자라든지)’이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군자는 어찌하여 늘 스스로 만족하고, 소인은 어이하여 언제나 부족한가. 부족해도 만족하면 남음이 늘 상 있고, 족한데도 부족타 하면 언제나 부족하네. 넉넉함을 즐긴다면 부족함이 없겠지만, 부족함을 근심하면 언제나 만족할까? 부족함과 만족함이 모두 내게 달렸으니, 외물(外物)이 어이 족함과 부족함이 되겠는가. 내 나이 일흔에 깊은 산속의 험한 골짜기(궁곡 窮谷)에 누웠자니, 남들이야 부족타 해도 나는야 족하도다. 아침에 만봉(萬峰)에서 흰 구름 피어남 보노라면, 절로 갔다가 절로 오는 높은 운치가 족하고, 저녁에 푸른 바다 밝은 달 토함 보면, 가없는 금물결에 안계(眼界)가 족하도다.” 구절마다 ‘만족 족(足)’자로 운자를 단 시의 일부분입니다. 구절마다 족자가 있는 것은 삶의 구비마다 걱정은 모두 벗어 버리고 지족(知足)하며 살자는 지혜로운 노인의 호소인 듯합니다.     


유토피아(utopia)라는 말은 토머스 모어가 그리스어의 ‘없는(ou-)’과 ‘장소(toppos)’라는 두 말을 결합하여 만든 용어입니다. 영어로는 'No Where' 입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란 뜻이지요. 그런데 'No Where' 의 Where에서 맨 앞의 글자인 W를 No 뒤에 옮기면 'Now Here' 가 됩니다. "지금 바로 여기"란 뜻입니다. W는 바로 걱정(worry)입니다. 걱정에 대해 "아니오! (No)"라고 하십시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바꾸면 바로 지금 여기가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이 아니라 그 환경에 대처하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문제와 현실을 앞에 걱정부터 하는 습관을 버리세요. 우리를 걱정스럽게 하는 현실은 바람이 불 듯 늘 우리 삶에 불어옵니다. 문제가 없는 곳은 바로 무덤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도전할 동기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김현청 : 콘텐츠기획자, 스토리마케터, 브랜드저널리스트, 언론인, 국제구호개발가, 로푸드연구가, 오지여행가, 서울리더스클럽회장, 블루에이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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