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호 그리고 보람 Mar 31. 2020

[윤] 난리법석 대환장 이사 썰 in 쿠알라룸푸르

집사야, 이사 함부로 하는 거 아니다. Remeber 20200229

Tinder에서 만나 결혼을 한 커플로, 말레이시아에서 거주 중입니다.
함께 글을 쓰면서 번갈아 가며 올리고 있습니다. 제목의 [윤]은 윤호의 글, [보]는 보람의 글입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새 집을 구하는 여정을 담은 이전 글(쿠알라룸푸르에서 집 구하기)은 이렇게 끝난다. 

부디 새로운 집에서는 무탈하고 행복하게 잘 지낼 수 있기를...!


하지만, 무언가 순조롭게 흘러간다면 타지 생활이 아닌 게 분명하다. 혼란하디 혼란했던 이삿날 전후로 벌어졌던 일들을 공개해보고자 한다.



1. 인스펙션 못 가요, 못가!

대부분의 나라에서 그렇듯이, 말레이시아에서도 기존에 살던 집에서 이사를 나갈 때 이전 집주인에게 집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을 받아야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그래서 이사 전날 확인차 에이전트에게 연락해봤는데, 집주인 쪽 에이전트가 못 와서 집주인에게 올 수 있는지 말해보란다. 그 주에 집주인한테 물어보니까 '에이전트가 올 거니까 에이전트랑 얘기하라'라고 했는데? 그나저나 그런 걸 조율하는 게 당신들의 일 아닌가? 그리고 나 이사 간다고 2달 전부터 말했는데? 

너무 열받아서 문법이고 뭐고 실종된 메세지....

안 그래도 그동안 현 집주인과 에이전트에게 쌓인 것이 많아서 나도 말이 곱게 안 나갔다. '그러면 키 받으러 이사 갈 집으로 오면 되겠네.'라고 하니까 그때서야 집주인 에이전트로부터 '내일 아침에 갈게.'라는 답변이 왔다. 다음날 아침에 만난 에이전트에게 물어봤다. 왜 못 온다고 했어...?

이사가 오후 8시라는 줄 알았지


다행히 보증금은 잘 돌려받았다.



2. 집주인의 약속 파기

1) 나 오늘 계약 못해

나와 보람이는 1월 말에 가계약을 한 후에, 2월 중순 즈음에 가구 배치를 위해 사이즈를 재고 세부내용을 조율하기 위해 한 번 더 집을 방문했었다. 당연히 집주인도 왔고, 집주인의 부동산 에이전트도 두 명이 왔다. 그 날 요구사항(전자레인지를 놔주고, 작은 방 침대를 빼줄 것을 부탁했다)을 말하고, 계약날짜와 이사일자도 바로 말했다. 그리고 이사하기 며칠 전에도 에이전트들을 통해서 재확인을 받았는데, 갑자기 이사 전날 아래와 같이 메시지가 왔다.


나는 회사에서 5시 반에 퇴근하고, 회사에서 새 집까지 채 30분이 걸리지 않아 오후 6시에 계약을 진행하자고 했는데 뜬금없이 8시 반이라는 시간에 보자는 거다. 이사 전날이라 짐도 싸야 되고, 이삿짐 싸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당시 살던 곳과 새 집과는 거리가 꽤 있어 계약을 위해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문제는 계약을 해야 키를 받고 이사를 진행할 수 있는데 계약을 못한다면 이사에 차질이 생긴다. 다행히 나의 에이전트는 내 상황을 잘 알고 있어서 '그러면 내가 저녁에 가서 너를 대리해서 계약을 진행해도 될까? 키는 내가 내일 아침에 건네줄게.'라고 제안했고, 나는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런데, 퇴근하고 에이전트에게 연락해보니 집주인이랑 계약을 안 했단다. 나를 직접 봐야 한다나 어쨌대나... 그러면 내 키는? 내 이사는? 설상가상으로 내일 오전 11시에 오겠다고 했단다. 나는 이삿짐 트럭을 오전 8시로 불렀는데...? 포장은 우리가 하고 그들은 짐만 옮겨주는 것이어서 아무리 길게 잡아도 2시간이면 다 끝난다는데...? 에이전트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그녀도 집주인의 잦은 약속 변경에 화를 억눌러 참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중간에서 도와주려는지 내게는 '윤호, 걱정하지 마. 우선 너는 이사 준비 잘하고 있어. 내가 아침에 가서 키 받아서 이사 잘할 수 있도록 도와줄게.'라고 말해주었다.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다행히 집주인은 이삿날 오전 9시 반쯤부터 와 있었다. 그런데 와 있기만 하면 뭐하냐고. 문득 불길한 생각이 들어 보람이에게 물어봤다.

전자레인지는 있을까? 침대는 빠져있을까?



2) 전자레인지 없어요, 침대는 있어요.

집주인을 만났다. 

"윤호, 6시면 나는 아직 회사에 있을 시간이야. 계약하러 절대 못 와."

아니, 시간은 나 혼자 정했나? 어이가 없어서 에이전트들을 돌아보니 그들도 황당해하는 표정이었다. 안 그래도 신경 쓸 것 많은데 싸우기 싫어서 '우리 모두 다 여기 있으니 됐다.'라고 말했다.


집에 가보니 당연히, 전자레인지는 없었고 작은 방에 침대는 그대로 있었다. 집주인에게 물었다. 

"전자레인지는 언제 와?"

"깜빡하고 못 가져온 에어컨 리모컨이랑 같이 내가 이따가 가져올 거야."(솔직히 나는 이 사람이 에이전트를 시켜서 오후에 다시 오는 길에 사 오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침대는?"

"곧 빼줄 거야."


언제 어떻게 뺀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 방에 들어갈 물건은 거의 없었어서 이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보람이가 와서 내게 말했다.

윤호, 얘네가 침대를 벽에 세워놨는데...?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작은방에 가보니 싱글 침대가 예쁘게 모로 누워있었다.


얘기를 하려고 집주인과 에이전트들을 불렀다.


"작은방 침대가 왜 세워져 있어?"

"우리 저거 못 빼."

"왜 못 빼?"

"침대가 너무 커서 방에서 못 나와."

"그러면 처음에는 어떻게 들어갔어?"

"빼려고 해 봤는데 안 빠지더라. 침대 헤드를 분리해야 되는데, 드라이버가 없어서 못해."


이사 때문에 며칠 동안 고생해서 심신이 지쳐있었는데, 저 말에 나도 대폭발했다. 2주 전에는 된다며! 여기 있는 사람들 다 그때 듣지 않았느냐!!  너네 말바꾸지 마라,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들었고 집주인도 동의했었는데 왜 이제 와서 안된다는 거냐!!! 나 이러면 침대 빼줄 때까지 계약서 싸인 안 한다!!!!


이렇게까지 말하니까 결국 그날 오후에 에이전트가 드라이버를 들고 와서(전자레인지와 함께!) 침대 헤드를 분리한 후 침대를 빼주었다. 아니,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는걸 도대체 왜...?



3. 대망의 이삿짐센터

1) 이사 당일 8시까지 와달라고 했는데, 당연히 8시에 오지 않았다.


2) 8시 15분쯤 내게 전화가 왔다. "그래서 너네 집 주소가 어디라고?" 도착은 8시 30분에 했다.


3) 우리가 싸놓은 짐과 가구들을 보더니 '짐이 너무 많아서 1톤 트럭에는 다 못 들어간다'라고 했다. 테이블도 같이 실으면 부러질거나 흠집 날 거 같단다. 결국 1톤이 넘었다는 이유로 짐도 다 안 실어주고 몇몇 짐을 내려놓고 이사할 집으로 가버렸다. 남겨놓은 짐은 보람이와 동생과 함께 그랩 6인승을 불러서 다 싣고 갔다. 승합차 트렁크에 실리는 짐들이 트럭에 안 실린다고?


4) 짐을 올리는 도중에 돈을 달라고 했다. 집주인과 에이전트들 이구동성으로 '일을 다 하기 전까지는 돈 주지 말아라'라고 내게 말했다. 나도 그 정도쯤은 생각하고 있었지만 점점 열이 받는다.


5) 1톤 트럭에 사람 2명이 짐만 나르는 조건으로 240링깃의 견적을 받았는데, 갑자기 280링깃을 달란다. 40링깃이면 한국돈으로 12,000원이 채 안 되는 돈이긴 한데, 이미 아침부터 뭐 하나 제대로 일한 것도 없었는데 돈까지 더 달라니까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심지어 메시지로 견적 내역까지 보내줬는데도 우기는 통에 언성을 높였다.

갑자기 견적 금액이 오르는 마법을 보여주었다.


인부들과는 이야기가 통하지 않아 사무실로 전화까지 했는데, 나와 그쪽 모두 서로 하고 싶은 얘기만 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솔직히 큰돈도 아니기에 거의 던지다시피 돈을 주고 돌아왔지만 상습적으로 저럴까 싶어 씁쓸했다. 


나는 이 업체(Optium Logistics)를 그랩의 'Clean & Fix'라는 카테고리에 연결되어있는 Kaodim이라는 업체를 통해 알선받았다. 평점이 굉장히 높아서(4.8/5.0) 이용을 해봤는데, 일을 진행하는 것은 사람 by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유난히 불유쾌한 경험을 했나 싶기도 하지만 당연히 재이용 의사는 없다. 아니, 그 이전에 이사를 할 의사도 당분간은 없다...


어쨌든 이사는 엉망진창이었지만 다행히 이사 이후로 집에 큰 문제는 없다. 그러면 지금 나와 보람이는 잘 살고 있을까?  이 때는 2월 말~3월 초였고 우리는 그때까지도 몰랐다. 곧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할 것이라는 사실을.

매거진의 이전글 [윤] 쿠알라룸푸르에서 집 구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