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nder에서 만나 결혼을 한 커플로, 말레이시아에서 거주 중입니다. 함께 글을 쓰면서 번갈아 가며 올리고 있습니다. 제목의 [윤]은 윤호의 글, [보]는 보람의 글입니다.
지금 우리 집에는 체중계가 무려 3개나 있다. 도대체 어쩌다가 팔자에도 없는 체중계 콜렉터가 되었는지 그 이야기를 간단히 풀어보고자 한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인터넷 쇼핑을 하는 것이 매우 험난하다. 사실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가 한국만큼 이커머스 플랫폼이 잘 마련된 것 같지는 않지만, 예전에 혼자 외국에서 살 때는 뭔가를 인터넷으로 구매할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낄만한 계기가 없었다. 하지만 쿠알라룸푸르에 살림을 차리면서 무언가를 야금야금 사들이게 되니 '아니,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물건을 구매하고 며칠씩 기다리는 것은 예사다.
당일배송, 로켓 배송, 새벽 배송? 꿈같은 이야기다. 구매 후 다음날 배송은 고사하고, 구매 후 3일 안에만 오면 '와, 이번엔 굉장히 빨리 왔는데?'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하루 이틀이 지나서 택배가 어디쯤 왔는지 조회해보면 아직 배송이 시작도 안된 경우가 허다해서 문의를 넣어보면 "오늘 배송될 거야 ^^" 같은 답변을 받기 일쑤다. 급한 건 한국에서 온 소비자인 나뿐인가 보다.
2. (이건 콘도마다 다르다고는 하는데 대부분의 콘도에서는) 물건을 받으러 로비 or 주차장으로 내려가야 한다.
문 앞까지 배송? 어림없는 소리. 보안상의 이유인지 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문 앞까지 배송해주는 한국과 다르게 내가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거 잠깐 시간 내서 내려가는 게 뭐가 귀찮아?'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조금 귀찮긴 해도 '그래, 여긴 한국이 아니니까'라고 생각했었는데, 얼마 전에 고양이 화장실용 모래를 20kg어치 구매한 후 집으로 가지고 오는 짧은 순간 이 시스템에 저주를 퍼부었다.
3. 가장 큰 문제는 집에 사람이 없으면, 정확히 말해 전화를 받지 않으면 택배를 배송해주지 않는다.
배송기사들은 물건을 가지고 콘도에 와서 각 구매자에게 전화를 하는데
1) 전화를 받지 못하거나
2) 받았어도 사람이 집에 없다면
택배는 다시 허브(또는 택배회사 등 지정된 장소)로 돌아간다. '아니 잠깐, 동남아 콘도는 대부분 경비원이 있다며? 그들이 받아주지 않나?'라고 물을 수 있을 텐데 그들은 절대 택배를 받아주지 않는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이렇게 되면 물건을 다시 가져다 달라고 전화를 하거나, 그도 여의치 않을 경우 직접 물건을 가지러 가야 한다. 난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여기도 1인 가구라는 게 있을 텐데, 1인 가구가 아니더라도 맞벌이를 하는 등 가족 구성원이 집에 없는 경우도 많을 텐데 그런 사람들은 택배를 어떻게 받는 거지?
(*혹시 아시는 분은 제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나마 말레이시아 이주 초기에는 보람이가 집에 있었으니 보람이에게 택배를 받아달라고 해서 이것저것 구매를 했었는데, 택배를 받는 과정이 매번 매끄럽지 않다 보니 보람이가 점점 스트레스를 받아 나중에는 인터넷으로 무언가를 사는 것을 조금씩 줄이게 되었다. 편리하자고 인터넷 쇼핑을 하는건데, 가격적인 메리트 외에는 그 어떠한 편리함도 느낄 수 없고 오히려 가정에 불화(?)를 가져오는 이 암덩어리의 이용 빈도는 날이 갈수록 낮아졌다
그런데, 3월 중순부터 말레이시아에 MCO(Movement Control Order)가 시행되고, 마트나 병원 등 필수적인 시설을 제외한 모든 상점이 닫고 재택근무가 시작되어서 집에만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처음에는 마트에서 사재기 현상이 일어나 생존을 위해 식료품을 사러 다니는 것 자체에 애를 먹었었는데, 1~2주 후에 어느 정도 상황이 안정화가 된 이후 식료품을 구하는 것은 더 이상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집에만 있다 보니 너무 심심했는지, 아니면 매슬로우의 욕구계층이론에 따라서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가 충족됨에 따라 상위 계층(?)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팔자에도 없던 인터넷 쇼핑에 빠지게 되었다. 다행히 MCO 기간에도 택배회사들은 영업을 멈추지 않았고, 나는 사실상 24시간 동안 집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택배를 받는 것에 큰 문제가 있지는 않아서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 거창한 물건들을 샀던 건 아니다. 고양이 용품(사료, 스크래쳐, 모래, 약품 등), 축구공, 네스프레소 캡슐, 생수 등 자잘한 물건들을 여러 가지 구매했는데, 어느 날 '집에만 있다 보니 조금씩 살이 찌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참에 체중계도 하나 장만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요즘엔 인바디 측정 등 이런저런 기능이 붙은 고급스러운 체중계도 많이 나오는데 나는 체중만 잘 측정되면 되어서 굳이 비싼 제품이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첫 번째로 구매했던 제품이 이 아이였다.
'body scale'로 Lazada에서 검색하니 상단에 나오는 제품이었다. 사실 12.5 링깃이면 한화로 약 3,500원 정도의 가격이라 너무 저렴해서 하자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한국 집에 있는 체중계도 네이버에서 검색 후 만원 안쪽의 가격으로 샀었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이 잘 사용했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게다가 이 제품의 평점은 4.8/5.0, 구매 후기는 무려 1,340개나 되었다. 후기도 꽤 읽어봤는데 정확성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선택한 제품인데 다들 바보가 아닌 이상 체중을 재는 것 정도는 문제가 없는 제품일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오산이었다. 이 체중계는 전혀 정확하지 않았다. 내가 옷을 벗고 재든, 입고 재든,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든 늘 체중계의 숫자는 64.40kg을 표시했다. 그러다가 '이제는 좀 무게가 반영되어야 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때면 숫자는 늘 64.85kg였다. 중간 단계의 숫자가 표시되는 것을 본 적은 없었다. 건전지를 뺐다가 다시 끼우면 100g 정도 늘 다르게 표시가 되니 이 말인즉슨 이 체중계로는 정밀하게 측정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격투기 대회에 나갈 것도 아닌데 그 정도 차이가 뭐 대수냐 싶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그냥 사용하려고 했는데, 3일 정도 사용해보니 저 미묘한 오차가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돈을 주더라도 조금 더 비싼 것을 사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 끝에 재구매를 결정했다.
두 번째로는 대륙의 실수이자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인 샤오미의 미 스케일 2(Mi Scale 2)를 구매했다. 제목에 Pre-Order라고 기입되어 있긴 했는데, 검색을 해보니 이미 출시도 된 제품인데다 잘 사용하고 있다는 후기도 상당수 보여 큰 고민 없이 결제했다. 그런데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나도 상품이 출고가 안되고 있는 것이다. 무슨 문제가 있나 싶어 판매자에게 채팅으로 문의를 해보니 '네가 구매한 건 pre-order 상품이야'라는 답변만 반복해서 와서 취소를 했다.
제발 묻는 말에나 대답을 좀 해줬으면 한다.
이쯤 되니 짜증이 솔솔 나기 시작한다. 이깟 체중계가 뭐라고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나. 숫자도 맞지 않는 체중계는 이미 방 한구석에서 애물단지 노릇을 한 지 1주일이 넘어가고 있었고 볼 때마다 화가 났다. '체중계 하나 제대로 못 만든단 말이야?'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도대체 뭐에 꽂혔는지, 정상적으로 측정이 되는 체중계를 꼭 사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려 인터넷에 체중계에 대해 검색 후 아날로그 체중계가 더 정확할 수 있다는 글을 읽은 후, 2020년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이유와 함께 아날로그 체중계를 구입했다.
아날로그 체중계를 샀다는 이야기를 하니 보람이는 진심을 다해서 어이없어했지만 다행히 체중계는 제대로 작동을 했다. 참고로 바닥에 미끄럼 방지가 되어있지 않아 처음에 체중계에 올라갔다가 뒤로 넘어질 뻔(너무 쪽팔려서 보람이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다)했다.
그런데 내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나는 이미 밀레니엄 시대를 거치며 급속한 기술의 발전과 디지털화의 편리함을 온몸으로 경험한 세대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눈금 체중계가 이렇게 불편한 물건인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특히 매번 영점을 맞추고 체중계 바늘이 멈추면 사력을 다해 째려보아야 눈금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나 번거로운 일인지 망각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체중은 잘 측정이 되니 여기에 위안을 삼고 잘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5월에 접어들자 다행히 말레이시아 정부는 MCO를 CMCO(Conditional Movement Control Order)로 격하시켜 제한적이나마 웬만한 상점들을 다 열게 해 주었다. 오랜 기간 갇혀있었다는 마음에 대한 보상심리로, 평소에 몰 구경 다니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주말을 이용해 집 근처의 몰 내부 매장들을 여기저기 쏘다니기 시작했다. 그중 사지도 않을 전자기기를 구경하던 중 샤오미 매장을 발견해서 들어가 봤는데, 어머나. 체중계를 전시해놓고 판매하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인터넷으로 구매했다가 pre-order 제품이라고 취소했던 제품도 버젓이 판매를 하고 있었고, 이전 버전(체중 측정만 가능)도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를 하고 있었다. 두 제품 간의 무슨 차이가 있었는지 물어보니 디자인과 추가 기능 유무뿐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 길로 쇼핑앱을 뒤져 체중계를 다시 구매했다.
다행히 배송도 빠르고(무려 2일 만에 왔다!), 가격도 매장보다 저렴했는데 디자인도 예쁘고 무엇보다 체중도 잘 측정이 되었다. 처음부터 이 제품을 샀으면 좋았을 텐데, 검색 결과의 상단에 뜨지 않아 내가 발견을 못한 탓에 이 제품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나의 불찰로 인해 나의 체중계 쇼핑은 수 주에 걸쳐서 마감하게 되었다. 말레이시아에서 뭐 하나 사는 게 쉽지 않고, 한국과는 다르게 애매하면 브랜드 제품을 사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교훈과 함께.
그래서 지금 우리 집에는 체중계가 3개가 있다. 나머지 2개는 필요한 분들이 (만약에) 있다면, 나눔을 진행할 생각에 일단은 모셔두고 있다. 보람이가 한국에서 돌아오기 전에 빨리 치워야겠다는 생각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