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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호 그리고 보람 Apr 07. 2024

[윤] 말레이시아의 직장 문화-ep3. 인턴

우리 모두 파이팅

Tinder에서 만나 결혼을 한 커플로, 말레이시아에서 거주 중입니다.
함께 글을 쓰면서 번갈아 가며 올리고 있습니다. 제목의 [윤]은 윤호의 글, [보]는 보람의 글입니다.

현재 내 커리어는 도합 7.5년 정도 되는데, 계산을 해보니 말레이시아에서 어느덧 4년 반을 일해서 말레이시아에서 일한 기간이 한국에서 일한 기간보다 길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나고 자란 곳이 한국이고, 첫 커리어도 한국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외국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음에도 내 기준은 한국 문화에 훨씬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아직도 종종 '아니, 이렇게 다를 수가?', 또는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종류의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말레이시아 직장생활을 하며 느꼈던, 한국인으로서 흥미로웠던 몇 가지 문화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다만 나는 이미 한국을 떠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한국의 모든 회사와 말레이시아의 모든 회사를 경험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주관적인 의견이 꽤나 많을 수 있음을 이해 부탁드린다.




돌이켜보면 처음 팀장이 되었던 시기가 팀이 전체적으로 가장 혼란스러웠던 때였던 것 같다. 아직 업무도, 팀도 낯선데 추가로 팀원을 3명 더 뽑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3명 중 한 명은 인턴을 채용했어야 했는데, 말레이시아와 한국이 문화도 다르고 학제도 다르다 보니 내가 한국에서 경험했던 것과 다른 점이 많아서 초반에 팀원들에게 이것저것 많이 물어봤었다. 어느덧 1년 사이에 네 번째 인턴을 뽑아야 되는 시기가 되어서 나름 말레이시아 인턴에 대한 경험(?)이 쌓였는데, 몇 가지 한국과 다른 점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학교 간판이 중요한가요?

말레이시아에 5년을 살았으니 어떤 대학교가 유명한지 어렴풋이 알고, 오며 가며 이름을 들어본 대학교도 많다. 하지만 막상 처음에 이력서를 받고 보니 말레이시아에 생각보다 다양한 대학교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맹세코 학력으로 이력서를 거를 생각은 없었지만, 말레이시아도 한국처럼 특정 대학교 출신을 사회적으로 좋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는지, 그리고 그런 부분이 채용에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해서 가만히 같은 팀 직원 G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특별히 평판이 좋은 대학교가 있니?


"No... Not really. 근데 학비가 비싸서 잘 사는 친구들이 가는 대학이라는 인식이 있는 대학교는 몇 개 있지. (이력서 한 장을 짚으며) 그런데 얘네 집은 부자겠네(웃음)"


얘기를 조금 더 해보니 학교의 네임벨류 자체를 평가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국립 대학교는 학비가 저렴한 대신 인종 쿼터로 인해(예, 말레이시아는 다인종으로 이뤄진 국가이지만 전혀 화합되지 않았습니다) 원하는 과를 들어가기가 어려워서 그나마 과를 수월하게 고를 수 있는 사립 대학교를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개중에 시설 좋고 조금 더 좋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학비가 비싼 편이고 인기도 많은데, 무조건 비싼 학교≠좋은 학교는 아니라고 해서 한국인 입장에서는 조금 신기하게 느껴졌다. 반대로 G에게 '한국은 한 날 한시에 시험을 치고 시험 결과에 따라 들어갈 수 있는 대학이 정해지고 서열도 있다'라고 설명해 주었고, 그녀는 '오... '스카이캐슬'이 진짜였네...' 라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뭐... 어느 정도는 사실을 반영했다고 본다.


인턴, 꼭 해야 하는가?

한국의 경우 학교에 따라 인턴 경력이 필수적으로 졸업요건인 경우는 있지만 제도상 '반드시' 해야 되는 경우는 아닐 수 있는데(물론 채용 전환형 인턴을 하거나 취업할 때 '스펙'이 되기 때문에 여전히 많이 하는 것 같다), 말레이시아는 인턴 경력이 대학교 졸업 필수 요건 중 하나라고 한다. 조금 특이한 것은 국립 대학교는 보통 5~6개월의 경력을 요구하고, 사립 대학교는 2~4개월을 요구한다고 한다. 왜 국립과 사립 여부에 따라 인턴 기간이 달라지는지 직원들에게 물어봤던 적이 있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고 원래 그렇다고 한다(...)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한국은 보통 인턴을 3~4학년 때 많이 하는데, 말레이시아는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종종 지원서를 받아보면 1~2학년인 경우도 있고, 실제로 지금 팀에서 일하고 있는 인턴 Y도 1학년만 마치고 바로 지원했다. Y는 아직 전공을 정하지 않았지만 생물학을 전공해서 연구원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회사 생활을 경험해보지 못할 것 같아서 지원했다고 한다. 참고로 Y는 내게 Stray Kids가 얼마나 좋은 노래를 하는 보이그룹인지 알려준 고마운 친구지만, 중학교 때 가장 인기 있었던 가수는 Taylor Swift이고 Linkin Park는 누군지 전혀 모른다고 해서 나를 경악하게 했다. 2004년 생이다.



인턴은 우리 직원인가, 아닌가

나와 보람이는 대체로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친절하다고 느끼지만, 가끔 보수적이고 차가운 면을 느낄 때가 있다는 얘기를 종종 한다. 


내가 팀장이 된 직후인 9월과 10월에 회사에 이벤트가 많았는데, 9월에는 말레이시아의 유명 휴양지 중 하나인 르당에서 워크샵이 있었고, 연달아 10월에는 전사 직원들이 모이는 Annual Dinner가 있었다. 짐작하겠지만, '인턴은 정규 직원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당시 일하던 인턴 J는 두 행사에서 모두 배제되었다. 당시 인턴은 우리 팀에 한 명뿐이었고, 그 말인즉슨 내가 그 이야기를 전해야 할 사람인데 도무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아니, 한 명 더 추가된다고 회사가 망하나? 다 같이 고생하면서 일하는 사이인데 밥 한 끼 먹이는 게 큰 일인가? 이 친구는 최저 임금 (말레이시아 최저 임금은 한화로 약 45만 원이다)도 못 받고 일하는데...

난 진짜 안 버리고 싶었다.


착잡한 마음을 품은 채 주말에 로컬 친구들이랑 1박 2일로 여행을 갔고, 차 안에서 이 상황을 설명해 주면서 '도대체 이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는데 되려 친구들이 나를 이상하게 여겼다.


"윤호, 그건 말레이시아에서 당연한 거야. 한국에서는 비정규직도 모든 회사 행사에 참여해? 아마 그 인턴도 자기가 같이 못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을걸?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월요일에 J에게 이야기를 했다. 다행히 J는 (겉으로 보기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고, Annual Dinner 선물이라고 회사로부터 받은 제품들을 J에게 건네었는데 한사코 거절을 하며 살짝 눈시울을 붉혔다. 미안한 마음에 꼰대처럼 "J, 사회가 이렇게 차가워. 그러니까 너 인턴 끝나고 졸업 후에 꼭 좋은 직장 구했으면 좋겠어." 등의 말을 건넸다. 




PS. 정말 운 좋게도, 우리 팀에 갑작스럽게 TO가 생겨 그녀는 저번 달에 정직원으로 입사를 했다. 입사가 최종적으로 결정되었을 때, 작년에 못 간 워크샵과 Annual Dinner를 올해는 같이 참여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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