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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호 그리고 보람 Nov 19. 2024

[윤] 10일간의 침묵 명상 도전 후 탈주한 후기-02

feat. 위빠사나(Vipassanā)

Day 1

새벽 4시, 명상센터 전체를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잠에서 깨었다. 한국 남자들에게는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에 숲 속에서 종소리와 함께 잠에서 깨니 흡사 군대에 다시 돌아온 느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첫날이지 않은가. 위빠사나에 참여한 목적, 열반에 다다르기 위해 첫날 새벽 4시 반부터 명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나는 내가 엄청나게 다양한 망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첫날에는 대단한 명상 기법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그저 코로 숨을 들이켜고, 숨이 나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집중하는 것이 첫날 내가 한 명상의 전부였다. 어떠한 화두를 던져준다던가, 특정한 이미지에 집중하면서 무언가를 떠올리는 것이 명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오직 하루 종일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라는 지시가 명상 생초보자인 나에게는 매우 생경했다.


위 그림과는 약간 다르게, 날숨 또한 코로 내쉬라고 설명을 들었다.


사실 왜 호흡에 집중해야 하는지 나중에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전혀 그 의도를 알 수 없었어서 일단 가만히 앉아 명상에 집중하려고 했다. 하지만 명상 경력 전무 + 각종 콘텐츠로 도파민에 절여질 대로 절여진 일반적인 현대인 중 한 명인 나로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치 잠 못 이루는 늦은 밤처럼,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무는 통에 나는 명상은커녕 내 인생의 과거와 미래의 모든 시나리오를 깔아놓고 온종일 공상을 했다. 예를 들어,


나는 어쩌다 말레이시아까지 와서 지금 위빠사나에 참여하고 있는가 → 역시 어려워도 태국에 한 번 살아봤었어야 했나 → 그런데 나는 방콕보다는 치앙마이가 좋은데 → 치앙마이에서 먹었던 돼지갈비 지금 먹으면 맛있겠다 → 그런데 치앙마이 가려면 비행기 타야 되는데 에어아시아는 안전한가? →만약에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지? → 근데 보람이는 방콕에서 잘 왔으려나? → 어,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내가 위빠사나 연락처를 회사에만 말하고 왔는데? → 보람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한테 연락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건가?


같은, 평소라면 신경도 쓰지 않을 일들을 걱정하고 상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밀려오는 걱정. ‘내가 명상을 제대로 하고 있기는 한 것인가?’ 다행히 저녁에 어렴풋이 그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매일 저녁, 모든 수련자들은 한 시간 정도 되는 영상을 보게 된다. 지금은 고인이 된, 위빠사나 명상 센터의 설립자인 고엔카 선생님이 생전에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설파하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인데, 첫날의 영상은 대략 이런 문구로 시작된다.


“첫날이 끝났습니다. 아마 여러분에게 매우 힘든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 마음을 울렸던, 명상에서 오로지 호흡에만 집중하라고 지시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아마 하루 종일 명상을 하려고 했지만,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마치 원숭이가 이 가지에서 저 가지, 저 가지에서 이 가지로 넘어가는 것처럼 당신의 생각도 이리저리 움직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에는 과거와 미래, 2가지 phase밖에 없죠. 그렇다면 현재는 어디에 있나요?


마음은 늘 과거와 미래를 돌아다니고, 현재에 머무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현재를 살고 있죠.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현재를 잘 살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호흡은, 우리가 현재에 있음을 깨닫게 하는 매개체입니다.


비록 오늘 당신의 마음은 원숭이 같았겠지만, 호흡에 집중하면서 현재로 돌아오는 연습을 한 것으로 충분합니다. 여러분은 당신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과정의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 누구도 이를 대신해 줄 수 없어요. 오직 본인만이 할 수 있습니다.”


오… 와우…. 고엥카 선생님은 뻔하다면 뻔한 이야기를 정말 재미있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재주가 있는 분이었다.


그래, 오늘 겨우 첫날이고, 이렇게 한 발 한 발 나 가아면 내 인생에 큰 도움이 될만한 깨달음을 얻게 될 거니까 정진해 보자,라는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Day 2 

새벽~점심시간: 명상(을 빙자한 망상과 몸 배배 꼼)을 하고, 점심을 먹고 마스터(명상을 이끌어주고 수련자들과 담화를 하는 선생님)와의 담화를 신청해서 짧은 대화도 나누었다. 나는 내가 말레이시아 콴탄 센터에 발을 디딘 최초의 한국인인 줄 알았건만, 이전에 6개월(!) 동안 명상을 한 이후 한국 진안 센터에서 마스터로서 명상을 이끄시는 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후: ‘잠깐만… 현재를 살아야 하면 내가 지금 여기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보람이랑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지금 내가 하는 게 명상인지 생각의 쳇바퀴인지 좀 헷갈리기도 하는데?’ 


저녁시간: ‘어라… 옆 사람이 안 오는데? 식기도 완전히 치워져 있고…’ 


담화시간

- 고엔카 선생님:

“첫째 날보다는 나아졌겠지만, 여전히 여러분의 마음은 혼란스러웠을 겁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거친 야생동물을 길들이면 삶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여러분의 사나운 마음을 다스릴 수 있으면 당신의 삶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당신을 늘 평화롭게 머무를 수 있게 가만두나요?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연습해야 합니다. 위빠사나를 통해 호흡, 그리고 당신의 감각을 관찰하면서 현재에 마음이 머물게 하고, 그 마음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서 미래를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 박윤호:

‘음...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내일 나가야겠다.’




*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위빠사나 중도 탈주자이기도 한 데다가 이미 위빠사나에 참여한 이후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명확하지 않거나, 제가 곡해한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



영상으로 보는 후기! (*스포주의)

https://www.youtube.com/watch?v=1eB_JbgmT1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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