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환자들을 소개합니다.
오늘 80이 되신 할머니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폐렴이 동반된 코로나-19로 치료 중이신 분이다. 아직 컨디션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점차 회복을 하고 계신다. 신앙이 깊으신 분이시고, 자기 걱정보다는 남편 걱정이 더 크시다.
"내가 의사 선생님들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어요" 며칠 전에는 이런 감동을 주셨는데, 오늘은 이런 말씀을 하신다.
"처음에는 좀 위험했었는데, 이제 좋아지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유, 걱정 없어요. 내 영혼은 하나님께 맡기고, 내 몸뚱아리는 교수님께 맡겼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어요?"
(사실 교수는 아니지만) 빈말이라도 이런 신뢰를 받으면 힘이 솟는다. 이렇게 신뢰를 표현해주시는 분들은 의사들의 비타민이다.
코로나-19 병동에서 의사들에게 힘을 주시는 환자들이 계신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표현해주시면 너무 감사하다. 그렇지 않더라도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내는 모습만으로도 치료진에게는 에너지가 된다.
코로나-19 병동에서 첫 근무 날 저녁, 한 50대 남성분이 호흡곤란이 심해져 집중치료실로 옮겨졌다. 며칠 후 기관 삽관을 하고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아야 했다. 집중치료실은 내가 담당하는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계속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성인호흡곤란증후군(acute respiratory distress syndrome, ARDS)이 심해져 기관절개술도 받았다. 내가 담당했던 환자들이 이렇게 나빠지면 마음이 좋지 않다. 심지어 함께 입원한 가족이 내 담당이어서, 면담을 할 때마다 소식을 전해드려야 했다.
하지만 그분은 코로나를 이겨냈다. 호흡능력을 회복해서 인공호흡기를 이탈했고, 가래를 뱉는 능력을 회복해서 기관절개술 부위도 다시 막을 수 있었다. 좁은 병실이지만 보행기(walker)를 가져와서 서고 걷는 연습을 했고, 결국은 산소 보충 요법 없이 집으로 퇴원할 수 있었다.
퇴원하면서 한 장 짜리 편지를 두고 가셨는데, 거기에 내 이야기가 한 줄 적혀있었다. 나에게는 큰 위로와 힘이 되었고, 그 날 퇴근해서 아내에게 핸드폰 속의 편지 사진을 보여주면서 자랑할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확진되면 격리를 해야 한다. 가족이 함께 확진되면 같은 병실에서 지내게 되는데, 먼저 PCR 검사 음성이 확인되면 먼저 퇴원을 하게 된다. 그런데 PCR 검사 음성이 확인되어도 퇴원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임신한 아내가 아직 음성 전환이 되지 않아서 퇴원을 미룬 남편이 있었고, 아이를 혼자 둘 수 없어 함께 지내는 엄마와 아빠도 있었다. 자신이 아파도 손자 걱정이 더 크셨던 할머님들도 계셨다. 코로나-19는 잔인하게도 가족을 함께 공격하지만, 가족을 원망하는 사람은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모두 다 자신보다는 가족을 걱정하는 모습뿐이었다.
이제 3개월간의 근무를 마치고 다시 재활의학과로 돌아가게 된다. 지난 3개월 동안 "만약 내가 걸리면?"이라는 두려움이 없었다고 할 수 없다. 그럴 때마다 가장 힘이 되는 것은 아내의 격려, 아빠를 자랑스러워하는 아들의 한마디, 어머니의 기도였다. 그리고 바이러스를 이겨내는 환자들의 모습과 고맙다는 말들이었다. 나는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만, 계속 일하고 계신 감염내과, 호흡기내과, 입원의학과 선생님들과 새로 투입되는 다른 선생님들께 감사와 격려를 전하고 싶다. 또한 환자분들의 쾌유를 기원한다. 제발 이 여름이 지나가기 전에 코로나바이러스가 싹 사라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