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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규 Jul 04. 2020

코로나의 봄날은 갔다.(4)

코로나-19 전담병동에서 감염병 전담의 생활을 시작하다.

Level D PPE (다들 방호복이라고 부르니, 이제는 나도 방호복이라고 써야겠다)를 하면 덥고, 고글에 김이 서리고, 답답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옷을 벗을 때 감염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https://youtu.be/5nkuxX4mPHo?t=291

벗는 방법도 상당히 복잡하다. 원리를 이해하면 당연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입고 벗기 연습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아서 두려움이 있었다. 첫 출근 이틀 전에 의사 당직실에 방문했더니 연습용 한 벌이 있었다. 원래는 그곳에서 연습을 해야 하지만, 어차피 새로 투입되는 사람은 나 혼자이니, 그냥 들고 내 방으로 가서 조용히 연습을 했다. 사실 가격도 비싸고, 모자랄 수 있으니 아껴 쓰라는 지시도 내려와서 더 신경이 쓰였다.


근무 스케줄은 4조 2교대였다. 12시간 day, 24시간 휴식, 12시간 night, 36시간 휴식. 전공의 시절을 마치고 이런 야간 당직을 서 보지 않은 나로서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재활의학과 전문의가 온전한 밤 당직을 서는 일은 흔하지 않다.) 첫 근무를 마칠 때 담당 환자 한 분이 호흡곤란이 심해져서 집중치료실 역할을 담당하는 국가지정 격리병상으로 전동 되셨다. 나중에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고, 기관절개술을 받았다가 다 회복되어 퇴원하시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참으로 심란한 일이었다.


10년 만에 비위관(L-tube) 삽입을 해봤고 (심지어 실패했었다), 심전도도 직접 찍어야 했다. 사실 level D 방호복과 고글을 쓰고 하는 술기는 어렵다. 3월에는 추워서 방호복을 입으면 따뜻하다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5월이 되니 더위가 의료진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우리 인생에서 2020년의 봄이 통째로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주말이 따로 없는 교대근무에서 평일 오프가 주는 유익도 있었다. 첫 근무 며칠 뒤에 이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결혼 13년 차, 그동안 6번인가 이사를 하면서 한 번도 내가 있어본 적이 없었다. 모든 이사는 아내와 이삿짐센터에서 해결하고 나는 출근했다가, 다른 집으로 퇴근을 했었다. (아내에게 감사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이번에는 예정된 이사일이 평일 오프와 겹쳐서 결혼하고 처음으로 이사를 챙기고, 아이를 보살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어려움들도 있었다. 가족 중 한 분이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러야 했다. 아버지 기일에 아들 둘 다 참석하지 못했다. 아내가 아파서 응급실에 방문한 적도 있었다. (우리 병원 응급실은 코로나-19 환자만 진료하기 때문에 인근 다른 병원 응급실에 방문했었다) 당연히 결혼기념일도 대충 넘어갔다. 아이는 계속 등교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아내는 정상적으로 출근을 했기 때문에, 평일 오프 때에는 아이의 아침, 점심을 책임져야 했다. 아들과 좀 더 친해진 것 같으니 좋은 점이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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