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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규 Jul 04. 2020

코로나의 봄날은 갔다.(5)

5월의 황금연휴는 잔인했다.

3월 초 대구의 확진자 폭증은 금세 마무리가 되는 듯싶었다. 3월 28일이 되니 누적 확진자 수는 9,478명이었는데, 이 중 4,811명이 회복되어 격리 해제되었다. 확진자 수보다 회복된 환자 수가 더 많은 golden cross가 있던 날이었다.


격리된 환자보다 격리 해제된 환자가 더 많아진 Golden cross가 일어났다.


4월에 온라인 개학을 한 6학년 아들은 6월 1일 등교가 예정되었다. (6학년이 제일 늦었었다) 병원의 입원환자수도 160명을 돌파했다가 점차 감소하고 있었다. 콜센터 집단 발병이 어느 정도 잘 처리가 되었던 것 같았고, 환자분들도 퇴원하기 시작했다. 새로 개소한 서울시 생활치료센터도 한몫을 했다.


병원에서도 출구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환자가 감소하면 병원은 다시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한다. 환자수가 감소하고 있으니 전담 전문의 수를 점차적으로 줄여나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8명, 그다음 주는 4명, 이런 식으로 전담전문의 숫자를 줄여나가기로 했다. 나는 5월 12일까지 근무하고, 5월 13일부터 14일간의 자가 모니터링 및 휴식기간을 가진 후 5월 27일부터 재활의학과로 복귀하는 스케줄이 잡혔다.(복귀 3진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5월의 황금연휴를 맞이했다.


4월 말 5월 초의 황금연휴기간에 나는 근무 중이었다. 날씨는 따뜻해지기 시작했고, 동네에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4월 20일부터 시작된 '완화된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일 수도 있고, 다들 지쳐서일 수도 있었다. 따뜻한 날씨에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점점 더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5월 6일 이태원 발 첫 환자가 확진되었다. 5월 13일이 되면서 이태원 발 확진자는 120명에 육박했다. 당연히 병원에 입원하는 환자가 다시 폭증했다. 입원환자 폭증으로 나의 재활의학과 복귀는 보류되었다. 오히려 전담전문의를 다시 늘려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당시만 해도 이태원 발 확진자들을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다. 나도 일상으로 복귀하고 싶었고, 내가 계속 치료하던 환자들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 가족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있고, 혹시라도 병원에 폐를 끼칠까 봐서 집-병원만 왔다 갔다 하던 시절이었다. 어린아이가 있는 선생님들은 아예 집에 가지 않고 병원에서 준비해준 숙소에서 지냈다. 그리고 솔직히 두 달 정도 했으면 난 할 만큼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후 우리 병원에 입원한 이태원 관련 확진자 70명의 감염 동선을 조사해 보았더니, 이태원 클럽 방문은 5월 1일부터 6일까지 다양했었다. 식당이나 돌잔치 관련 확진자들도 많았었다. 이후 이태원과 무관한 종교모임, 방문판매, 주간보호시설에서 확진자가 계속 발생한 것을 볼 때, 이태원 클럽만 욕할 문제는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어쨌든 그때는 원망스러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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