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종규 Jul 04. 2020

코로나의 봄날은 갔다.(6)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어제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본부장님의 첫 언론 인터뷰가 화제가 되었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이 한 마디가 가슴에 남는다.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모든 이들이 바라는 일이다. 하지만, 결코 이전과 같지는 않으리라는 예상도 모든 이들이 이야기한다.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covid19-jung-eunkyung-interview_kr_5ef9a579c5b612083c4fe6c4


이태원 - 종교시설 - 방문판매 - 주간보호센터로 이어지는 집단 감염이 이어지면서 처음 생각했던 출구전략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4월 말에 시뮬레이션을 했을 때는, 6월이면 병원의 입원환자는 20명 이내여야 했고, 그럼 병원의 일부만 감염병을 전담하고, 나머지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장기전이 분명해 보였다. 게다가 언론에서는 계속 서울 지역의 병상 부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새로운 원칙이 생겼다. (1) 감염내과와 입원의학과 전문의는 계속 감염병 전문의로 일한다. (2) 나머지 의사들은 3개월을 넘도록 일하게 하지는 않겠다. (3) 새로 교대하는 전문의도 3개월이 되면 교체한다. 


또 병원이 100% 코로나-19 환자만 진료할 수는 없었다. 서울의료원은 취약계층이 경제적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공공병원 중 상급병원에 속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최후의 병원"인 셈이다. 외래 진료만으로는 이 분들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없었다. 또 서울의료원은 전공의 수련병원이다. 전공의(레지던트) 수련은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일정 수 이상의 환자를 진료해야 하고, 적절한 교육이 제공되어야 한다. 처음 두세 달은 다른 병원에서 파견 형식으로 부탁을 드렸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었다.


다행히도 서울에 두 번째 생활치료센터가 문을 열고, 질병관리본부 코로나바이러스-19 대응지침 제9판에서 확진자 격리 기준이 완화되면서 병상에 여유는 조금 생기게 되었다. 또 나 역시 3개월을 꼬박 채우고 나서 재활의학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사실 4개월 만에 복귀하신 선생님도 계신다)


나는 13주간의 근무를 마치고 2주간의 자가 모니터링 기간에 들어갔다. 좀 애매한 시간이다. 자가격리도 아닌데, 하루에 두 차례 체온을 재고 정해진 서식에 기록을 한다. 신경 쓰여서 어디 놀러 갈 수도 없는 휴가 아닌 휴가기간이었다. 아들은 1주일에 하루만 등교를 하고 있으니, 4일은 하루 종일 함께 지내게 된다. 4일간은 늘 점심 걱정을 해야 했다. 3개월간 수백 병의 코로나-19 환자들을 만나다 보니, 감염된 동선이 자꾸 생각나서 사람을 만나는 일도 심하게 꺼리게 된다. 제자의 결혼식에는 정말로 "돈만" 보냈다.


2주 동안 준비했던 점심 중에서 아들이 제일 좋아했던 메뉴다.


7월 1일이(감염병 전담의 종료 15일 차, 병원 지침에 이렇게 명시가 되어 있다) 첫 근무일로 결정이 되었고, 12일 차 전후로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음성 결과를 확인해야 했다. 세 번째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셈이다. 


이 메시지도 세 번째 받아보았다.


짧게 보면 3개월, 좀 길게 보면 5개월간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이다. 2020년 코로나-19 판데믹에서 모두들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데, 나만 힘들었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의사로서, 또 공공병원의 의료진으로, 좀 색다른 경험을 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처음 감염병 전담의가 되었을 때는 추위로 수술복 아래에 긴팔 티셔츠를 껴입어야 했는데,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6월에는 에어컨 바람이 잘 나오는 곳을 찾아다녀야 했다. 2020년의 봄날을 통째로 잃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만큼은 아니어도 2020년의 국난 극복에 조금은 일조한 것 같으니, 아들 앞에서 조금은 자랑할 만한 아빠가 된 것 같기도 하다. (끝)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특정한 사람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개인을 비난할 수 있는 글 거리도 많이 있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다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특정 집단을 언급하는 것을 매우 꺼렸다. 10개 넘는 꼭지를 쓰면서 한 번도 '신O지'를 언급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이O희 개객끼!"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의사 입장에서 글을 쓰면서 이런 말을 언급하고 싶지는 않았다.

또 의사로서 듣게 되는 환자들로부터 들은 감동적인 이야기, 슬픈 사정, 기묘한 이야기가 많이 있다. 하지만 나는 기자가 아니고 의사다. 이런 이야기를 쓰는 것은 그분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능한 표현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실 자가모니터링 2주간 아들이 아빠로부터 받은 것 중에서 제일 좋아했던 것은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다.

누구는 힐링게임이라고 하고, 누구는 경제게임이라고 하는 "모동숲"이다.


작가의 이전글 코로나의 봄날은 갔다.(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