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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Dec 29. 2021

2021 올해의 영화 10편(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의)

"처음이라 그래 며칠 뒤엔 괜찮아져.." 이런 생각으로 벌써 1년이 지났다. 작년 연말과 올해 초에 느꼈던 뒤숭숭함은 그대로. 괜찮아지지 않고 또다시 한해의 마지막에 당도했다. 분명 얻은 것도 많을 텐데, 왜 항상 한 해의 끝에는 잃어버린 것만 생각나는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억지로라도 감사해야 하는가 보다. 성경에서 얘기하듯 '평범한 일'에 감사하는 것이 결국 진리에 가까운 말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거두절미.



몇 년 전부터 연말마다 하는 일, 올해도 하려 한다. 한 해 동안 본 영화들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10편을 선정하는 일이다. 내가 무슨 영화 평론가도 아니요, 기자나 언론인도 아니요, 하다 못해 생업의 어느 부분도 영화와 관련이 하나도 없다. 이것은 오로지 나만을 위한, 자기만족의 '연말정산'인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의 이 리스트는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으로 선택된 영화들이다. 평론가와 대중, 씨네필과 일반 관객 사이의 어딘가를 자처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선택된 리스트다.


선택 기준은 2021년 1월 1일부터 2021년 12월 22일까지의 국내 극장 개봉작이다. 수년 전에 제작되었지만 국내에는 올해 처음 선보인 작품도 있고, 각종 영화제 상영을 통해 미리 선보인 작품도 있다. 나는 순수하게 올 한 해 국내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 중에서 골라봤다.


나열된 순서는 극장 개봉일 순서다.


1. 소울(Soul)

픽사의 애니메이션에는 무언가 특별함이 있다. 수많은 작품들을 통해 다른 듯 같은 주제를 전달한다. 인간이 아닌 캐릭터들을 통해 전해지는 인간 세계에 중요한 가치들을 픽사는 매번 놀라운 솜씨로 보여준다. 그런 특별함이 결국 엄청난 위로를 우리에게 주는데, <소울>은 그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이다. <코코>에서 죽음 이후의 삶을 통해 전해진 위로가 <소울>에서는 태어나기 이전의 삶으로 그 반경을 넓혔다.


픽사가 가지는 특유의 위로 방정식은 이제 하나의 '사조'로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2. 미나리(Minari)

영화 미나리는 윤여정 배우의 오스카상 수상(여우조연상)으로 우리에겐 더 유명하고 뜻깊은 작품이 되었다. 게다가 이 영화는 한국인 가정에 대한 이야기이고, 영화의 감독도 한국계 미국인(정이삭 감독)이다. 그렇기에 한국에서 더욱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감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 영화를 한국이라는 장벽 안에만 가두는 것은 영화에 대한 오해다. 이 영화는 인종과 국적을 초월하는 '가족의 원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주와 정착과 개척의 서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가족과 가정에 해당하는 주제이다.


그런 보편적인 주제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힘이다.


3. 스파이의 아내(Wife of a Spy)

2020년 베니스 영화제 은사자상(감독상) 수상작이다. 영화는 태평양 전쟁을 배경으로 개인의 가치관과 국가가 원하는 가치관 사이에서의 충돌을 그리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서스펜스의 결을 가진 드라마인데 동시에 꽤 낭만적이기도 하다. 서스펜스와 로맨스가 상호 존중하며 기품 있게 표현되고 있고, 영화 후반부에는 비장미까지 더해진다.


스파이의 아내를 연기한 아오이 유우의 거친 표정과 불안한 눈빛, 이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4. 노매드랜드(Nomadland)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 <노매드랜드>다. 경제위기 이후에 집 없이 떠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삶에 대한 높은 통찰력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제시하는 집에 대한 개념은 생경하면서도 도발적이고 한편으로는 매우 처연하다. 또한 미국의 대자연을 두루 살피는 카메라는 감상의 깊이를 더해준다.


그런데 어차피 우린 모두 인생이라는 길 위에 집 없이 떠도는 사람들 아니던가.


5. 프리 가이(Free Guy)

비슷한 영화들은 많이 있었다. 게임을 배경으로, 게임을 소재로 하는 영화들. <프리 가이>는 선배들보다 훨씬 더 주체적이다. 그저 배경에 지나지 않는 게임 속 NPC가 자아와 정체성을 찾고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이 매력적인 스토리는 라이언 레이놀즈만의 장기로 인해 올해 최고의 오락영화로 거듭났다. 하지만 마냥 가볍게 보기에만은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그저 가볍지만은 않다.


그리고 오락성이라는 영화의 미덕을 생각해볼 때, 이 영화는 그 미덕이 거의 최고 수준이다.


6. 그린 나이트(The Green Knight)

중세의 기사에 관해 다루는 이 영화는 오히려 그 기사도에 대한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면서 시작한다. 익숙한 질서를 해체하면서 시작한 영화는 새로운 질서를 세워가며 진행된다. 선명한 이미지와 반대로 친절하지 못한 서사는 오히려 이 영화를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곱씹을수록 대단한 작품.


생각하면 할수록 아주 속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영화다.


7. 바쿠라우(Bacurau)

'바쿠라우'라는 마을을 빼앗으려는 또는 없애려는 사람들과 마을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싸움을 그린 영화다.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2019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던 영화다. 영화는 최근에 보아왔던 영화들과는 다르게 아주 거칠고 투박하다. 매끄러운 촬영과 편집을 의도적으로 거스르는 듯한 느낌인데, 오히려 그런 부분이 장점으로 작용한다. 선이 아주 굵고 진한 검붉은 색깔의 영화다.


영화 <바쿠라우>는 가공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매력이 풍부한 작품이다.


8. 아네뜨(Annette)

2021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으로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첫 영어 영화이다. 첫 영어 영화인 동시에 처음으로 그가 페르소나인 드니 라방과 작업하지 않은 작품이기도 하다. 대신에 아담 드라이버와 마리옹 코티야르의 명연기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뮤지컬 형식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어떤 지점에서는 뮤지컬 형식에 반대하는 듯한 연출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연출'의 영역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는지 몸소 증명하는 작품. 한 남자의 흥망성쇠를 시종일관 독창적인 표현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야말로 표현에는 한계가 없으며,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이다.


9. 퍼스트 카우(First Cow)

<퍼스트 카우> 또한 <그린 나이트>처럼 익숙한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영화다. 서부극의 외피를 가진 이 영화는 기존의 서부극이 보여주지 못한 장면들을 보여준다. 거대한 이야기 뒤편에 있던 작고 소박한 이야기를 가져와 장르의 대안을 제시한다. 또한 그런 소박한 이야기를 통해 우정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생각하게 해 준다.


큰 그림이 아닌 작은 그림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진리를 전달하는 영화다.


10. 드라이브 마이 카(Drive My Car)

아마 최근에 예술영화라 불리는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는 작품일 것이다. 올해 칸 영화제 각본상 수상작으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작품이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아마 올 한 해 국제적으로 또 국내에서도 가장 주목받은 감독일 것이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왜 그가 현재 가장 뜨거운 감독인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 <여자 없는 남자들>의 한 단편을 각색해서 만든 이 영화는 이 연말에 아주 대단한 위로를 주는 작품이다. 삶을 삶으로 만들어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어야 한다는 그 위로의 메시지. 고인 눈물이 눈보다는 마음에서 흐르는, 인생에 대한 하나의 애가(哀歌)인 동시에 희망을 노래하는 영화다.


지금 슬퍼하는 모든 자들에게, 더없는 위로가 될만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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