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비를 함께 맞는 것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어느 가족>)에 빛나는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그가 한국인 배우들을 캐스팅해 한국어로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은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엄청난 화제가 됐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거장이며 국내에도 적잖은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 그가 한국어로 영화를 만든다는 사실이 적어도 국내에서만큼은 웬만한 블록버스터 못지않은 기대감을 갖게 했다.
그야말로 초호화 캐스팅이었다. 송강호, 강동원, 이지은, 배두나, 이주영의 라인업은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어떤 영화들보다도 화려했다. 칸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에 남우주연상 수상까지 이어지며 <브로커>는 졸지에 극장가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커리어 내내 가족의 해체와 결합에 대해 이야기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느 가족>에 이르러서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제시한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유사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심지어 그 가족의 구성원들은 범죄자와 고아, 접대부, 가출청소년, 독거노인 같은 사회의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가족에게 버림받은 자들이 서로 의지하며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이루어가는 이 이야기는 결국 2018년 칸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다. '진짜 가족의 의미는 무엇일까'라는 물음과 깊은 여운을 안겨준 작품이었다.
<브로커>는 마치 <어느 가족>의 한국어 버전처럼 보인다. 소영(이지은 배우)과 그의 아기 '우성'을 제외하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인연이고, <어느 가족>의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소외되고 버려진 인물들이다. 아마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유사가족에 대한 본인의 철학을 한번 더 개진하기로 마음먹은 모양이다.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이 영화는 한국 제작사에서 한국인 배우들을 캐스팅해 한국어로 만든 영화라 그런지 영락없는 한국영화의 느낌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색깔은 아주 연하고 흐릿하기만 하다. 감독의 팬을 자처하며 이 영화를 기다렸을 사람들에게는 당혹감과 실망감이 생겼을 것 같다.
영화는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한 아기를 팔려는, 아동 인신매매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상현(송강호 배우)과 동수(강동원 배우)는 교회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기들을 가로채 돈을 받고 파는 브로커다. 즉 범죄자다. 갑작스레 찾아온 아기의 엄마 소영(이지은 배우)이 그들과 함께하게 되고, 중간에 보육원에서 만난 해진(임승수 배우)까지 합류한다. 그리고 이들을 쫓는 두 명의 형사 수진(배두나 배우)과 그녀의 후배(이주영 배우)까지 이들의 여정에 함께한다.
아기를 팔기 위해 떠나는 이 범죄의 여정은 꽤나 낭만적으로 그려진다. 솔직히 말하자면 낭만적이라기보다는 작위적이다. 로드무비의 형식을 따르는 이 영화는 한국관광공사 못지않게 한국의 아름다운 풍광들을 비추며 이들의 여정에 힘을 보탠다. '선의'의 이름으로 행하는 범죄 행위는 이들을 하나로 묶는 매개체 같은 역할로 그려진다. 영화적 설정으로 이해하려고 해 보지만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낭만적이어서 쉬이 공감이 되지 않는다. 비슷한 상황의 <어느 가족>이 윤리적 딜레마의 경계를 훌륭하게 조율하며 깊은 여운을 준 것과 달리 <브로커>의 작법은 너무나도 거칠고 어색하다.
<브로커>는 선악의 딜레마가 담긴 메시지를 배우의 입을 통해 직접 전달하고 있다. 가령, 동수가 소영에게 하는 "버린 사람이 있으니까 파는 사람도 있는 거지"라는 대사라던가, 소영이 수진에게 얘기하는 "낳기 전에 지우는 죄와 낳은 후에 버리는 죄 중에 뭐가 더 가벼운데" 같은 대사는 이 영화의 메시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묵직한 화두를 던지지만, 너무 대놓고 얘기하는 통에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매우 낯선 기분이 들었다.
기대했던 결과물은 아니지만 인상적인 부분은 있다. 무엇보다 남우주연상 수상자인 송강호 배우 얘기를 안 할 수가 없겠다. 이 영화에서 그의 연기는 겉으로 도드라져 보이지는 않지만,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철학과 메시지를 미세한 표정의 변화나 눈빛의 흔들림 등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 내공이 역시 대단하다. 그리고 멀티 캐스팅을 자랑하는 이 영화에서 그는 마치 연기의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처럼 수많은 배우들을 시종일관 견인하고 있다. 화려한 꽃보다는 든든한 거목의 느낌이다. 그의 연기가 일견 평범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편하다. '송강호가 없었으면 이 영화는 어떻게 됐을까'라고 말이다.
영화의 시작은 소영이 혼자 비를 맞으며 걷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카메라가 멀리서 그녀를 비추니 더욱 쓸쓸하고 외롭게 느껴진다. 그러던 그녀가 보육원에서 빗방울을 보며 동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비는 아니지만 세차장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같이 맞고, 우산을 가져가라는 동수의 말에 "걱정되면 데리러 오든가" 라며 받아치며 말하기까지. 결국 소영이 마음을 열고 어설프지만 가족을 이루어가는 모습을 비와 물줄기의 이미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혼자 맞던 비를 같이 맞고 힘들 땐 우산을 씌워주면서 '그렇게 가족이 된다' 라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얘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