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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Mar 02. 2022

꿈꾸는 책들의 도시

발터 뫼어스 (글, 그림),플로리안 비게 (그림)/문학동네(2019년)

서랍 속에서 다시 꺼내 읽는 장르소설 이야기 No.3


    최근 그래픽 노블 2권을 읽었다. 아주 오래전, 대학교 동기가 여름방학에 읽을 소설로 

추천해줬던 <꿈꾸는 책들의 도시>가 몇 년 전에 그래픽 노블로 재탄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의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당시 동기의 추천사는 생생히 떠올랐다.


  “책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절대 그냥 지칠 수 없을 걸.”


그리고 동기의 말대로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책을 읽느라 꼬박 하룻밤을 다 지새웠던 기억도. 

꽤 두꺼운 책이었는데도, 굉장히 몰입해서 읽었다. 

그때의 감정을 되살려보고 싶긴 했지만, 

요즘처럼 무슨 일이든지 10분 이상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책을 다시 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그래픽 노블이었다. 

그림과 글이 같이 있는 책이라면, 조금 더 편안하게 그때의 감정을 

되살려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었고, 다행히 그 생각은 유효했다.     

 이 책의 기본 얼개는 공룡 화자인 미텐메츠가 부흐하임과 지하묘지를 여행하면서

 그림자 제왕을 만나 그의 비밀을 알게 되는 이야기이다. 

그 과정에서 미텐메츠는 출판업자인 스마이크의 음모를 알게 된다.  


1권 <부흐하임> 中에서     

p. 20

책,책,책들! 오래된 새 책, 새 책, 값비싼 책, 싸구려 책

진열 창과 선반에 놓인 책, 손수레나 통에 든 책, 가죽이나 아마포,

털이나 비단으로 제본한 책, 금테나 은테 장식을 두른 책.


 책 사냥꾼! 전투적인 외모와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갑옷과 투구, 무기로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들은 부흐하임 지하 묘지에서 약탈한 책을 뻔뻔하게도 훤한 대낮거리에서 팔았다. 

그런 그들을 위험을 무릅쓰고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p.21

부흐하임에는 육백 곳이 넘는 출판사와 인쇄소 쉰다섯 군데, 종이 공장 열두어 군데, 

그리고 책 관련 일을 하는 수많은 가게와 작업실과 수공장이 있었다. 


 자기 작품을 필사적으로 낭송하는 수척한 시인이 눈에 띄었다. 

새 고객을 기다리는 살찐 에이전트도 보였다.

허섭스레기를 파는 행상인도 있었다. 

책에 미친 온갖 미치광이가 행상인이 파는 책을 사납게 낚아챘다.

꿈꾸는 책들도 있었다!

원래 존재를 살아낸 뒤 꾸벅꾸벅 조는 고서를 여기서는 그렇게 불렀다. 

다시 팔려서 움직이게 되어야만 깨어나서 새 생명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들은 모두 그렇게 되길 꿈꾸었다     


p.64 

당신은 방금 독살되었습니다.      

예술가들! 당신네 예술가들은 목숨이 위태로워질 거예요!

내가 문학을 없앨 거니까! 음악도! 연극도! 회화도!

모든 예술은 책은 전부 불태울 겁니다. 

캔버스는 모조리 테레빈유로 씻어내리고, 악보는 모두 찢어버릴 거예요!

그러면 적막이 지배하겠죠! 질서도!          

이제 나는 이 음악을 통해 쓰레기 같은 책들을 사라고 명령했습니다. 

내일은 내게 무조건 복종하라고 명령할 겁니다. 

그러면 더 나은 세상이 오겠죠, 예술은 없고 현실만 존재하는 세상이!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되는 미텐메츠의 여정은 부차적인 것이고, 

나는 미텐메츠가 부흐링들과 그림자 제왕을 만나 자존감을 회복하고, 

성장해나가는 과정에 좀 더 초점을 맞추어 읽었다.      


2권 <지하묘지> 中에서     

p. 18     

나는 살아 있는 도서관에 에워싸여 있었다.

부흐링들은 자신이 외운 작품을 쉴새없이 낭송할 뿐 아니라 

철저히 작품 위주로 살았다!

어딜 가든 열정적인 문학 토론이 벌어졌다.     

내 주위에는 수백 명의 있었고, 이들은 단첼로트 대부님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지칠 줄 모르고 

조언을 건넸다. 부흐링 수 만큼이나 다양한 충고였다.      

술 취해서 쓴 글은 인쇄하기 전에 한번 더 읽어봐

두꺼운 책은 작가가 짧게 요약할 시간이 없어서 그런 거야!

주석은 책장 맨 아래 있는 책들이나 마찬가지야! 

몸을 숙여야 하니까 아무도 선뜻 보려고 하지 않아.     


p.62

그림자 제왕이 나와 함께 있는 일은 드물었지만 

함께할 때는 언제나 이유가 있는 듯 했다. 

단어들이 종이 위에서 자주 막히잖아.

넌 지금 엉뚱한 손으로 쓰고 있어!     


p.63

다른 이들보다 더 잘 쓰는 이를 작가라 하지.

작가들보다 더 잘 쓰는 이를 시인이라 하고.

그리고 시인보다 더 잘 쓰는 이는 오름으로 향하는 입구를 발견할 거다.      


p. 64 

호문콜로스의 괴물 같은 자존심!

그는 글쓰기 기술의 비밀을 전수하려고, 

오로지 그 이유 때문에 성으로 나를 유인했다.

그러나 허영심 때문에 내가 간청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p.66

하지만 모든 책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내 감정을 뒤흔들지 않는 책은 한 권도 없었다.

그래서 다 읽기 전에는 손에서 놓지 못했다. 

한 권씩 차례로 빠른 속도로 읽어나가는 동안 

나는 주변의 모든 것을 잊었다.

장소...시간.. 그리고 나 자신까지도. 

손가락 끝은 종이에 베이는 바람에 피가 났고, 

페이지를 넘기느라 상처를 입었다.

눈은 불처럼 타올라 깜빡일 때마다 아팠다. 하지만 그만두는 건 불가능했다!

모두 오름이 관통한 책이었다!     


p.96

이쪽은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야!

네 부흐링이지!

수줍음을 좀 많이 타는 편이야.

그는 네 작품 전부를 외우게 될 거야.

그게 그의 운명이니까!     


내 작품 전부?

난 의미있는 걸 아직 하나도 못썼어!     


쓰게 될 거야!

...우리가 가죽동굴에서 헉헉...자리잡고 살게 될 거라는 사실만큼이나 확실하지.     


p.97

우린 힐데군스트 널 믿어!

네 첫 작품을 엄청 기대하며 기다릴게!

오름이 그 작품을 관통하길 빈다!     


나는 부흐링이 아직 아무 것도 출간하지 않는 

시인의 이름을 따른다는 말을 

여태껏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니 넌 긍지를 느껴도 되겠다.    

  

 부흐링들과 그림자 제왕은 문학과 글쓰기에 관한 충고를 아낌없이 하고, 

(가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하는 웃음이 터져 나오는 

엉뚱한 충고도 있었지만. 문손잡이의 관점이 대체 뭐냐고.)     

아직 자신은 의미 있는 작품을 하나도 쓰지 못했다는 미텐메츠에게

너는 반드시 오름이 통과한 작품을 쓰게 될 거라는 격려를 해준다.      


여기서 오름이 통과한 작품이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분이 강림하신’ 작품쯤으로 이해하며 읽었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처음 읽었을 때,

그럼 이 작품도 오름이 통과한 작품이겠군, 라고 생각했다.

미텐메츠의 묘사대로 

책장을 넘기느라 종이에 손이 베이고, 눈은 불타오른 것처럼 아팠지만

도저히 멈출 수가 없어서 밤을 꼴딱 지새웠으니.     


오름, 쉽게 치환해서 말하면 영감. 

나에게도 언젠가는 이런 영감이 올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도 그때는 조금 있었던 같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나,

그때의 반짝이던 기대감이 옅은 물감처럼 퇴색되고, 

스마이크 말대로 예술의 자리를 현실이 차지하면서,

내 꿈도 지하묘지에 잠들어버린 꼴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그렇지만, 내게도 여전히 부흐링과 그림자 제왕 같은 동료들과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언젠가는 다시 힘차게 살아갈 날을 기대하고 있는,

꿈꾸는 책들처럼

나 역시 꿈꾸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그래픽 노블이란 장르의 책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실제로 읽어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당시 <꿈꾸는 책들의 도시>의 텍스트를 읽으면서 

내 머릿속으로 구현했던 이미지들을 그래픽 노블로 확인해 볼 수 있어 좋았다. 


원작 소설가가 그래픽 노블의 그림에 함께 참여했다고 하니, 

더 신뢰감을 갖고 읽을 수 있었다.

 당장 새로운 책을 읽기가 힘들다면, 이미 읽었던 책 중에서 

그래픽노블화된 책을 찾아 

비교하면서 읽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이야기가 여러 가지로 뻗어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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