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책을 읽은 뒤, 나를 실제로 만나 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대부분 비슷하다.
"책만 봤을 때는 조용하고 차분하실 줄 알았는데 실제론 밝은 분이셔서 놀랐어요."
그럴 때마다, 도대체 책에 비치는 나는 어떤 괴물인 거지? 정녕 '지킬 앤 하이드' 같은 인간이 되어버린 건가? 싶어 움찔거리곤 한다. 이건 농담이고, 다들 어떤 의미로 말씀하시는 건지 어렴풋이 짐작은 간다. 내가 쓰는 글은 '잘 다듬어진 진심'인 반면, 사람들을 만나고 대하는 일은 '일상적인 가식'이 대부분이니까. 그 괴리감이 느껴지신 거겠지 싶다.
세상은, 진심과 표현이 일치하면 종종 귀찮은 일이 발생했고, 그 결과 나는 진심을 감추고 적당히 가식적으로 살아가는 게 일상이 된 사람이 되어버렸다. 쌓여서 터질듯한 진심은 이따금 글로 잘 다듬어서 배출하면 되니까. 그리고 약간 변태 같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나는 '글과 실존 간의 거리'가 나름대로 잘 분리된 이런 성격이 마음에 든다. 사실, 내가 가진 몇 가지 특징 중 자랑하고 싶은 부분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가끔, 자신이 이중적인 사람이란 것을 자각할 때마다 알 수 없는 위로를 받곤 한다. 삶, 세상 그리고 집 앞 모텔촌과 다르지 않은 나에게 안도감을 느끼면서.
예전 집 근처에는 모텔촌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근처에 술집은 물론 나이트클럽과 주점들도 즐비했다. 그리고 별로 말하고 다니진 않았지만, 나는 모텔촌을 걷는 일을 그럭저럭 좋아했다. 그래서 매번 걷는 올림픽 공원이 질릴 때면 가끔씩 모텔촌을 돌았다. 출발점은 먹자골목을 가장한 술집거리부터였다. 남자들과 여자들의 눈치싸움으로 북적거리는 클럽과 포차들부터, 술 취한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손잡고 깔깔거리며 나오는 카바레까지 걷는다. 그리고 길의 끝자락 즈음에서 드디어 분주하고도 조용한, 그리고 은밀한 모텔촌 거리가 나왔다. 네온 사인들이 화려하고 다양한 색상으로 사방에서 번쩍거렸다. 주차장 커튼 속으로 허겁지겁 드나드는 수상한 느낌의 차들 사이로 할렘가를 거니는 잠입 수사관의 느낌처럼 걷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언제나 산책의 마지막에는 모텔촌의 끝에 있는 교회를 거쳐갔다. 유리(아마도)로 지어진 유럽 성당 같은 느낌의 큰 교회였다. 아직도 교회인지 성당인지가 헷갈린다. 주기적으로 종도 울렸으니까. 교회가 워낙 크고 넓어서 우리 집에서 바라보면 모텔촌이 완벽하게 가려졌다.
모텔촌이 있던 자리에 교회가 생긴 건지, 교회를 주변으로 모텔촌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 둘이 함께 붙어 있는 그 이중적인 모습이 너무나 좋았다. 그래서 친구들을 차에 태우고 그곳을 지날 때마다 교회(심지어 투명한 유리로 지어졌다)와 모텔촌이 같이 있는 풍경을 자랑스럽게 설명했지만, 유흥을 즐기는 친구들 혹은 신실한 종교인 친구들 모두에게 그다지 기대했던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시무룩해지곤 했다.
"책에선 이성적인 사람인 것 같았는데 이야기하다 보니 감성적이어서 놀랐다."
요즘들어 주변에서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때의 모텔촌과 교회가 떠오르곤 한다. 뭔가 소설 '큰 바위 얼굴'처럼 좋아하다 보니 닮아버린 걸까?라는 시답잖은 생각을 하면서. 아직까지도 내가 왜 그 거리와 풍경에 안도감과 아름다움을 느꼈는지 의아해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