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플랫폼 스토리코스모스의 ‘발굴과 보존’은 왜 새로움인가
단수의 발군에서 다수의 발굴로, 『스토리코스모스 소설선』 시리즈
문학 플랫폼 스토리코스모스의 ‘발굴과 보존’은 왜 새로움인가
2023년 7월 첫 선을 보인 『스토리코스모스 소설선』의 두 번째 시리즈가 2024년 11월 출간되었다. 제1권은 수록작 한 편을 표제작으로 삼아 『전두엽 브레이커』라는 제목으로 등장했고 이듬해 이어진 제2권은 『스토리코스모스 소설선 002』를 책제로 달았다. ‘스토리코스모스’라는 브랜드와 ‘스토리코스모스 소설선’이라는 자체 기획 콘텐츠를 전면에 부각한 것이다. 두 번째 소설선의 참여 작가로서 문학 플랫폼 스토리코스모스, 그리고 『스토리코스모스 소설선』 시리즈가 갖는 의의를 기록해 두고자 한다.
스토리 콘텐츠 플랫폼에서 ‘한국문학 브랜드’라는 코스모스로
스토리코스모스(storycosmos.com)는 2022년 1월 론칭한 문학 플랫폼이다. 단편·중편·장편 소설, 시, 에세이 등 유료 콘텐츠를 제공하고 매해 분기마다 단편 소설 신인상 공모전을 진행한다. 운영 측면과 사이트맵 구성만 따진다면 텍스트 콘텐츠 기반이면서 문학 장르를 위시한 기존 버티컬 플랫폼들과 눈에 띄게 차별화된 면모는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스토리코스모스에는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2023년 4분기 스토리코스모스 신인 소설상 당선 후 작가 겸 독자로서 해당 플랫폼을 이용 중인 입장에서 서술하자면, 이곳에는 ‘어떤 느낌들’이 존재한다. 이곳에 글을 발표하고, 이곳에 발표된 글을 읽는 일이 나로 하여금 어떤 느낌을 갖게 만든다. 뭔가에 동참한다는, 모종의 가치에 동의한다는, 그런 느낌. 트렌치 코트가 아니라 피 코트를 입을 때만 느껴지는 정서적 착용감 같은 것. 험프리 보가트나 알랭 드롱의 평이하고 점잖은 핏이 아니라 스티브 매퀸과 세르쥬 갱스부르의 ‘쿨’을 착장하는 듯한, 그런 느낌.
문학 플랫폼 스토리코스모스의 가장 큰 특징은 두 가지다. 첫째는 장르문학과 본격문학의 구분을 두지 않는 점이다. 공식 사이트의 어바웃 페이지는 “본격적 장르, 장르적 본격을 통해 문학의 외연을 확장하고 세계적 문학의 조류를 수용하는 새로운 문학의 생태우주가 되고자 합니다.”라고 설명한다.
둘째는 다수당선제 신인상 공모전이다. 앞서 언급했듯 스토리코스모스는 분기별로 단편 소설 공모전을 개최한다. 연간 총 4회다. 회당 2~3인의 당선자를 배출한다. 해마다 8~12인의 신인 작가를 발굴하는 셈이다. 김덕희, 김솔, 도재경 등 현역 소설가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다. “상금을 주기 위해 오직 한 명만 당선시키는 모순을 없애고 재능을 보이는 모든 작품을 뽑는 다수당선제를 원칙으로 합니다.”라는 것이 스토리코스모스의 방침이다.
스토리코스모스가 엄수하는 이 두 가지를 기존 유사 플랫폼들과의 최대 변별성으로 꼽고 싶다. 신인 작가인 나로서는 글을 발표할 수 있는 창구라면 어디든 다 구조선 같다. 피씨와 클라우드 안에서 표류하는 내 글들을 구명해 줄 그 배를 늘 부르고 기다린다. 1년에 네 번이나 오고, 게다가 두세 편씩이나 탑승을 허하는 구명선은 드물다. 이 희소성이, 그 배를 기다리거나 그 배에 탑승한 이로 하여금 어떤 ‘느낌’을 갖게 만든다. 함께하고 있다, 나 혼자만이 아니다, 당신에게도 곧 배가 도착한다, 포기하지 마라, 같이 이 배에 타자, ⋯⋯.
이런 느낌의 영향인지 스토리코스모스는 플랫폼 이상의 ‘움직임’으로 감각된다. 사용자(독자)에게 ‘느낌의 영역’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스토리코스모스는 플랫폼 이상의 브랜드로 확장될 요건을 갖추고 있다. 이런 격한 감상은 물론 나의 개인적 체험을 바탕에 두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이 플랫폼에 실리는 글들의 완성도에서 기인한 부분도 크다. 음악은 익숙하나 크게 관심 갖지는 않았던 래퍼, 또는 이름도 얼굴도 생소했던 힙합 그룹이 전설의 크루 ‘무브먼트’ 출신임을 알고 나면 갑자기 ‘오? 신곡 한번 들어 볼까?’ 하고 귀를 열게 되듯, 스토리코스모스라는 이름도 뭇 독자들의 눈과 마음을 열어 주리라 생각한다. 그 증표가 2023년부터 시작된 『스토리코스모스 소설선』 시리즈다.
스토리코스모스 대표 에디터 박상우의 ‘새로움’ 기획 — 발굴과 보존
스토리코스모스를 만들고 이끄는 이는 소설가 박상우다. 내가 2000년대 초 대학생일 때 몇몇 선배들의 자취방 책장에 박상우의 소설집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과 『독산동 천사의 시』가 꽂혀 있던 게 기억난다. 1990년대 한국문학을 이야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작품들이라고 선배들이 알려주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박상우의 작품은 2005년 소설집 『화성』의 수록작인 중편 「말무리반도」다.(시인이자 북 디자이너, 출판 기획자이면서 민음사 대표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던 박상순이 이 소설집의 편집인으로 참여했다.) “세월의 수레바퀴에 실려간 꿈은 이제 아쉬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필요한 것은 적멸이 아니라 소멸, 그리고 또 다른 길을 향한 준비이거나 출발일 뿐이었다.”라는 문장을 지금도 종종 찾아 읽는다.
박상우는 1988년 데뷔하여 1999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1990~2000년대 한국문학에 큰 족적을 남긴 그는 현재 창작과 더불어 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2006년부터 지금껏 ‘소행성 B612’라는 소설 창작 교실(소설 창작 커뮤니티 컬리지)을 운영 중이고 2022년에는 스토리코스모스를 시작했다.
스토리코스모스에서 박상우의 직함은 ‘대표 에디터’다. 편집인 겸 편집장이다. 공모전 응모작, 플랫폼 투고작은 모두 박상우의 눈과 손을 거친다. 『스토리코스모스 소설선』 시리즈의 출간 기획자 겸 총괄 편집자도 바로 박상우다. 『스토리코스모스 소설선』은 이름 그대로 스토리코스모스 발표작 및 신인상 당선작을 엮는 선집(anthology)이다.
출판 콘텐츠로서 선집은 참여 작가들의 역량, 수록작들의 완성도뿐 아니라 편집자의 기획력과 중량감을 요한다. 편집자의 노교(老巧)는 어느 책에서든 중한 요소일 텐데, 특히나 선집 또는 총서의 경우는 편집자의 기술적 노련미 외에도 ‘관점’의 매력도가 긴요하다. 이 작품들을 왜 한데 엮었으며, 그 엮음을 통해 독자들에게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인지, 또한 해당 기획물이 특정 분야와 시장에 왜 출현해야 하는지 등등.
작가 한 사람의 장편 소설이나 단편집, 여행 산문집, 전문 서적은 저자가 관찰·기록·연구·분석·창작·촬영한 세계를 일관되게 단행본 한 권 안에 담은 결과물들이다. 작가의 세계관이 이미 ‘확정적’으로 주어져 있고, 편집자는 그 세계관의 문법과 규칙을 준수하며 책을 제작해 나간다. 반면 선집은 각기 다른 저자들의 글을 하나의 세계관 안에 엮는 작업이다. 즉 편집자가 선행적으로 세계관을 기획한 뒤 그곳에 알맞은 콘텐츠를 사후적으로 엮어 채우는 셈이다. 그래서 선집이나 총서는 편집자나 출판사의 방향성을 드러낸다. 요컨대 선집과 총서는 편집자-출판사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기획물이다. ‘워크룸 프레스’라는 출판사의 한국 문학 총서 시리즈 ‘입장들’의 소개문을 잠깐 인용해 본다. 국내 소설가 5인을 ‘입장들’의 작가로 선정한 이유를 밝히는 내용이다.
“워크룸 프레스는 이들을 워크룸의 한국 문학 작가로 택했다. 우리는 다섯 작가를 오래 주목해왔고, 계속 지켜보기로 했다. 이들은 그동안 새롭고 탁월한 글들을 써왔고 어떤 식으로든 문학의 경계를 넓혀갈 이름들이다. 적어도 우리는 이들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고, 그렇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 한, 이들은 문학에서 새롭고 탁월한 자리를 계속 마련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택했다’, ‘오래 주목해왔다’, ‘계속 지켜보기로 했다’, ‘우리는 이들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 같은 표현의 주체는 당연히 편집자-출판사다. 그렇다면 선집 시리즈 『스토리코스모스 소설선』의 편집자 박상우는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을까. 선집 제1권과 제2권에 적힌 ‘에디터의 말’을 옮겨와 본다.
“이 책에 수록된 10편의 소설은 스토리코스모스의 지향성을 반영하여 다양한 장르가 한자리에 모여 있고 그것들은 21세기적 경계 해체와 융합을 반영한다. (⋯) 독자의 독후감에 제약을 주거나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해 ‘작가의 말’ 이외 여타의 평가적, 평론적 글은 일절 붙이지 않았다. 온전한 원물만으로 이루어진 한상차림을 고스란히 독자에게 제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 박상우, 「스토리코스모스 소설선: 21세기 소설 라이브러리를 시작하며」, 『전두엽 브레이커』, 스토리코스모스, 2023, 334쪽
“2023년에 『전두엽 브레이커』로 스토리코스모스 소설선 001을 처음 선보인 이후 지난 일 년 동안 스토리코스모스에서 발굴한 작품들을 선별해 두 번째 소설선을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총 11편을 선별하고 보니 장르형 소설이 6편, 사실주의 계열이 5편이다. 이와 같은 소설선을 기획하게 된 애초의 의도가 한국 소설문학의 지형도에서 장르문학과 본격문학의 경계가 더 이상 무의미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는데 이 두 번째 소설선에서 그것은 분명한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
(⋯)
장르와 본격의 경계가 무의미해졌다는 말은 장르적 기법을 차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문학성을 넉넉하게 확보한 빼어난 작품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장르이건 본격이건 문학성이 문학의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이것은 소설 영역에서 일어나는 중차대한 21세기적 융합 현상이라고 보여진다. 분명한 장르적 갈래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다종다양한 융합의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 박상우, 「새로운 융합형 소설들의 가능성」, 『스토리코스모스 소설선 002』, 스토리코스모스, 2024, 341쪽
편집자 박상우가 설정하고 독자들에게 제시한 세계란 다름 아닌 ‘융합’이다. 이 세계의 설계 근거는 “문학성이 문학의 생명이라는 관점”이다. 문학성을 담지했다면 장르문학이든 본격문학(이른바 ‘순문학’)이든 모두 동일한 카테고리로 엮인다. 이것이 『스토리코스모스 소설선』 시리즈의 세계관이며, 스토리 콘텐츠 플랫폼이자 한국 문학의 새로운 브랜드인 스토리코스모스의 동인일 것이다.
스토리코스모스 대표 에디터 박상우의 “21세기적 융합” 세계관에 동의하는 한편, 『스토리코스모스 소설선 002』 참여 작가로서 나는 또 다른 세계를 감각한다. 발굴과 보존으로 이루어지는 새로움의 세계 말이다. 『스토리코스모스 소설선』은 ‘새로움’ 기획이다. 수록 소설들을 2024년 11월 출간일 기준 한시적으로만 ‘새로운’ 작품들로 선별한 것이 아니라, 시의성을 초극하는 명사적 ‘새로움’으로 발굴 및 보존했다는 이야기다.
미디어 이론가이자 문예 비평가인 보리스 그로이스는 저서 『새로움에 대하여』(현실문화연구, 2017)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이전에 새로움을 추구했던 자들은 자신의 아이디어가 보편적 승인을 받고, 되도록 많은 사람이 자신을 따르며, 그 아이디어가 미래의 발전 방향을 규정하며 미래에도 변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이름이 미래의 상징이 되기를 추구”한 반면에 “오늘날 한 특정한 작가에 대한 역사적 기억은 그가 가진 아이디어의 총체적 승리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이나 미술관 같은 보편적 아카이브 시스템을 통해 그 작가에 대한 정보가 보존되고 확산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59쪽) 스토리코스모스를 비롯한 문학 플랫폼들 또한 “도서관이나 미술관 같은 보편적 아카이브 시스템”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새로움을 생성하는 오늘날의 매체.
단수의 발군이 영원불멸함을 추구하던 과거는 지나고, 다수의 발굴이 오랜 시간 보존됨으로써(또는 거꾸로 다수의 보존이 오랜 시간이 지나 발굴됨으로써) 새로움을 획득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설명이다. 이에 가장 적합한 실증이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와 소설가 루시아 벌린의 사례 아닐까. 두 사람 모두 평생 무명 작가로 살았고 사후에 ‘새로움’으로 거듭났다. 비비안 마이어의 네거티브 필름이 창고에 보관되어 있지 않았다면(그래서 경매 시장에 풀리지 않았다면), 루시아 벌린이 평생 쓴 77편의 단편소설이 어떤 매체에도 발표-인쇄된 적 없었다면(그래서 후대 출판인들의 눈에 띄지 못했다면) 사진계와 문학계에 ‘새로움’은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참여 작가 중 한 사람으로서 『스토리코스모스 소설선』 시리즈가 널리 알려지고 판매 부수도 높았으면 좋겠다. 그러나 설령 그렇지 못한다 해도 슬퍼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찍이 미디어 이론과 문예 비평의 석학이 선언한 발굴과 보존이라는 ‘21세기적 새로움’ 기획에 동참했고, 내가 쓴 작디작은 소설도 ‘새로움’으로 발굴·보존되었으니. 스토리코스모스라는 ‘새로움 생성 우주’가 우리 문학 시장 안에 실재함을 목격했으니.
글 임재훈
스토리코스모스
— 관련 기사 ➀ 「문예지 ‘등단’ 않고⋯ 내가 만든 플랫폼서 ‘데뷔’ 합니다」, 문화일보, 2023. 7. 25.
— 관련 기사 ➁ 「독자가 원하고 작가가 바라는 새로운 문학 생태계」, 아트모아, 2022. 3. 31.
스토리코스모스가 펴낸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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