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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재훈 NOWer Feb 06. 2024

단편소설 「노란 숲의 초요」 #2

“초요는 수많은 무명 화가들 중 한 명이었다.”


한마디로 초요는 여간해서 잘 보이지 않는 수많은 무명 화가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런 그가 유명 소설가의 저격을 받으면서 이슈의 중심으로 급부상했다. 표절자로 지목된 초요의 이름은 심지어 집권당 대표의 기자 회견장에도 등장했다. 전동열차 점거 시위대를 ‘반 질서 이익 집단’으로 못박으며 당대표는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다. “요즘 초요라는 한 장애 예술인의 표절 논란이 사회적 문제 아닌가. 디스어드밴티지를 어드밴티지로 오인·오용하는 세력은 누가 되었든 공정한 법의 잣대를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많아진 것으로 안다. 그래야 국민 정서와 시민 눈높이에도 맞지 않나 하는 이야기들을 나도 자주 듣는다. 우리 당내에서도 진지하게 이 문제가 고민돼야 하지 않나 해서, 당론 차원에서 깊이 검토해보자는 계획이 원내지도부에서 논의 중에 있는 것으로 듣고 있다.”


발언 주체로서의 자신을 수동태와 만연체, 전문(傳聞) 뒤에 꼭꼭 숨기는 정치인 특유의 이 발언은 공중파 저녁 뉴스, 라디오 시사 프로, 각종 정치 유튜브 채널에 공유되었다. 늘 그렇듯 일부 유튜버들은 자극적 제목을 뽑았다. ‘몸은 장애 표절은 비장애’, ‘욕먹을 각오 완료! 점거·표절 전문 장애인들 작심디스!’, ‘DIS is ADVANTAGE?’, ‘어느 듣보잡 장애 예술인의 역대급 어그로’, …….


표절 논란을 제기한 젊은 소설가는 페이스북에 장문을 올려 초요의 입장과 해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소설가를 옹호하는 다수의 댓글들 사이사이, 한쪽 말만 들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들이 듬성듬성 매달리며 갑론을박의 대댓글들을 늘어뜨렸다.


인터뷰를 먼저 제안한 쪽은 초요였다. 편집장 말로는 초요가 메일을 보내 인터뷰이를 자진했다고 한다. 창간한 지 오 년도 채 안 된 우리 매체로서는 큰 기회였다. 초요는 작은 매체여서 신뢰가 간다고 메일에 썼다. 이유가 궁금했지만 굳이 편집장에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왠지 나 자신을 (큰 매체들에서 줄줄이 불합격한) 작은 매체의 작은 기자로 자인하는 꼴 같아서였다.


인터뷰 조건은 두 가지였다. 텍스트가 아닌 영상물로서 우리 매체의 온라인판에만 게재할 것, 영상의 배경음으로 미셸 페트루치아니의 음악만은 깔지 말 것. 편집장은 수용했고 인맥을 동원해 프리랜스 촬영 기사를 급구했다. 초요는 인터뷰 제의를 수락할 경우 자신이 직접 시간과 장소를 정하겠다고 고지했다. 일정 조율은 편집장이 초요와 직접 했다. 인터뷰 이틀 전 편집장에게 전달 받은 위치는 혜화동 대학로의 한 소극장이었다. 초요의 지인이 운영하는 곳이고, 인터뷰 시간에는 공연이 없어 텅 비어 있을 거라고 했다. 평일 오전 열 시, 빈 객석과 무대를 배경으로 진행하는 신입 기자의 첫 번째 인터뷰라니. ‘식기 전에 떠먹여야 해.’ 내 머릿속은 편집장의 말로 가득 차 있었다.


초요는 오십 석 규모의 소극장 무대 중앙에 나무 한 그루와 함께 서 있었다. 나무는 〈노란 숲〉과 같은 암회색 성목이었다. 이파리는 단 한 잎도 없었다. 흉고(胸高)부터 우듬지까지 큰 호를 그리며 휜 형상에, 졸가리들은 되는대로 내뻗친 모습이었다. 천이 다 뜯겨 나간 장우산, 혹은 그림 리퍼(Grim Reaper)가 들고 다니는 거대한 낫 같았다. 공연을 위해 설치된 무대 장치인 모양이었다. 백삼십 센티미터의 중년 사내와 그보다 세 곱절은 큼직한 메마른 나무. 파(PAR) 라이트 불빛을 받고 선 무대 위의 두 물상은 그 자체로 기묘한 연극 포스터처럼 보였다. 초요는 나와 카메라 촬영 기사가 다가올 때까지 가만히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초요를 처음 보자마자 나는 미국의 한 배우를 떠올렸다. 〈왕좌의 게임〉이라는 인기 드라마에서 소인 캐릭터를 근사하게 소화해 냈던 작은 남자. 그는 컴퓨터 그래픽을 입고 일시적으로 작아진 게 아니라 실제로 작은 사내였다.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호빗족을 연기한 배우들과는 완전히 입장이 달랐던 것이다. 작게 태어나 평생 작은 몸집으로만 살아 온 배우였다. 집 안 벽에 해마다 자라나는 신장의 변화를 사인펜으로 적어 놓고, 훗날 그것을 부모와 함께 흐뭇하게 바라본다든지 하는 보편의 가족적 화목함은 그에겐 불허된 행복이었을 터. 식구들을 비롯한 그 누구도 그가 커지리라고, 즉 실체적 질량감을 지닌 성인 남성으로 발육되리라고 기대하지도 상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환경에 처해 보지 않은 나로서는 그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가정의 보육 아래 가만히 키만 자라도 칭찬을 받고 때로는 손에 용돈이 쥐어지기도 하는, 한마디로 맨들맨들하고 수월한 소년기를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의 정서를 나는 감히 공감할 수 없다. 그래서 다만 경탄할 따름이다. 저렇게나 작은데 저렇게도 커질 수 있구나, 하고 말이다.


그 배우의 경우 내가 매력을 느낀 지점은 음성이었다. 노천 극장에서 아무런 음향 장비 없이 대사를 읊어도, 마치 노련한 투창 선수처럼 맨 뒷줄의 무방비한 관객의 귓속을 정확히 꿰뚫고도 남을 성량과 발성.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구십 년대 야니(Yanni)의 전자음악 콘서트에 버금갈 초대형 무대가 세워지고, 거기서 셰익스피어의 사대 비극이 삼 개월 단위로 일 년간 공연된다, 겨울에 초연을 시작할 폐막작은 단연 맥베스, 주연은 물론 그 작은 배우. 나는 브이아이피석 중앙에 앉아 그가 분한 맥베스의 절규를 육성으로 들으며 감격하고……. 내가 그 배우를 알게 된 뒤로 이따금—그의 새 출연작이 개봉 또는 스트리밍 될 때마다—해 보는 공상이다.


초요의 첫인상에서 나만 〈왕좌의 게임〉 배우를 떠올린 건 아니었다. 인터뷰에 동행한 남자 촬영 기사—영화 연출 전공생이자 졸업 학기 학비를 벌고자 휴학 중인 프리랜서—도 내게 귓속말로 “기자님, 저분 왕좌겜 티리안 닮았죠. 와, 대박사건.” 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멀쩡한 다섯 글자짜리 고유 명사를 세 음절로 줄여 부르는 못된 습관은 화자가 누구든 결코 동화될 수 없는 말본이었다. 고명한 귀인(일테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대접 받았어도 절대로 손대지 않을 음식처럼. 예를 들면 두리안, 피단, 홍어 같은. 그리고 아무리 나와 동년배라도 엄연히 업무적 관계인이자 고용주 측 실무자인 사람에게 이렇듯 스스럼없이 귀엣말을 하는 태도가 심히 거슬렸다. 나는 촬영 기사 앞에서 웃지 않았다. 어쩌다 가끔 그의 농담이 내 취향과 맞아도 결코 새살거리는 일은 없었다. 그랬다가는 곧장 ‘누나’라는 호칭이 이어질 것 같아서였다. 함께 일하기 쉽지 않은 상대였다. 하지만 편집장이 직접 채용한 외주 인력이고, 오늘 인터뷰 촬영을 마치고 단 이틀 안에 편집본 영상을 우리 매체에 넘겨야 할 작업자다. 급하게 잡힌 인터뷰였고 릴리즈 일정도 촉박했다. 어르고 달래지는 못할망정 척을 둬서야 신입 기자인 내 신상에 좋을 일이 없을 것이었다. 게다가 초요와의 인터뷰는 수습 딱지를 떼고 맡게 된 첫 인터뷰 과업이었다. 보란듯이 잘 진행해 편집장의 눈에 들고 싶었다.


단편소설 「노란 숲의 초요」 #3으로 이어집니다






글쓴이. 임재훈

윤디자인그룹이 운영하는 온라인 디자인 매체 『타이포그래피 서울』의 에디터로 근무했다. 타입·타이포그래피 전문 계간지 『더 티(the T)』 9·10·11호의 편집진 일원으로 일했다. 경기도시공사, 한국언론진흥재단, 효성그룹 등 국내 기업 및 기관의 홍보 콘텐츠 제작에 참여했다. 저서로 『실무자를 위한 기업 홍보 콘텐츠 작법』과 『잘나가는 스토리의 디테일』, 공저로 『나답게 사는 건 가능합니까』와 『소셜 피플』(총 8부작)이 있다. 2023년 단편소설 「공동(空洞)」으로 스토리코스모스 신인 소설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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