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좀 작다 보니. 양해 바랍니다.”
초요의 외모가 ‘티리안’을 닮지 않았다면 아마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이미지는 그의 옷차림이었을 것이다. 머스터드 색 반소매 티셔츠의 전면부에 나는 본 적 없는 서양화가 직방형으로 프린팅 되어 있었다. 머리칼이 하얗고 가슴이 풍만한 무희의 상반신이었다. 그림 하단, 그러니까 직사각 프레임의 밑변 밑으로 ‘La Clownesse Cha-u-Kao’라는 필기체 타이포그래피가 보였다. 대학 시절 교양 프랑스어 과목을 수강한 덕에 의미를 읽을 수 있었다.
검정색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은 여자—‘광대 차우카오’의 옆모습. 얼굴 정면을 굳이 보지 않아도 그녀가 중년임을 알아볼 수 있다. 댄서로서 은퇴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마도 사십 대 후반쯤. 차우카오는 가슴 부분의 매무새를 양손으로 바로잡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춤추는 도중 유두가 비어져 나오는 참사를 대비해 미리 점검하는 중이리라. 어깨가 우람하고 팔뚝에는 근육을 묘사한 듯한 음영이 져 있다. 체구가 꽤 큰 여자다. 드레스가 아니라 가죽 재킷을 입혔다면 성별을 구분하기 힘들었을 듯하다.
그림 속 여성 광대를 무희라 단정한 첫 번째 이유는 드러낸 한쪽 어깨와 허리춤에 사선으로 두른 개나리색 숄 때문이다. 영화였는지 여행 다큐 프로였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캉캉 춤을 추는 댄서들의 윗옷 목둘레 옷단과 치맛단도 그림 속 여성의 리본 매듭이 진 숄과 흡사한 프릴이었다. 여자는 또 굵고 무성한 은발을 상투처럼 땋아 숄과 동일한 노란색 천으로 묶어 놓았다. 머리장식이라 하기에는 너무 컸고 강인해 보였다. 파업 노동자들의 머리띠 같은 이미지랄까.
두 번째, 가장 결정적(이라고 내가 판단한) 단서는 어딘지 모르게 퇴폐적인 그림의 전반적 정서다. 여성의 맨살에 거친 그레인 효과를 덧댄 투박한 채색 때문일까, 유두가 보일락 말락 노출된 커다란 젖가슴의 영향일까. 요소 하나를 딱 집어 단정하기는 어려웠으나 초요 가슴팍의 직방형 프레임 안 분위기는 고결한, 우아한, 티 없는 유의 형용사와는 확실히 거리가 멀어 보였다. 프릴 장식 숄, 그와 똑같은 옷감의 머리끈, 그리고 프레임 밖 상의 색상. 그래픽 티셔츠의 직방형 프레임 안팎은 노란색이라는 아이덴티티 컬러를 공유하고 있었다. 초요의 하의 또한 상의에서 내려보낸 색채를 시각적 저항 없이 받아 내는 (티셔츠보다 채도가 살짝 높은) 노란 빛깔이었다. 워싱 처리가 된 빈티지 스타일의 카고 바지에서 노랑이 아닌 부분은 양 허벅지께 사이드 포켓의 금속 스냅 단추 두 쌍뿐이었다. 패션 취향이라 해야 할는지, 옐로에 대한 초요 특유의 애착으로 보는 게 합당할는지. 인터뷰이로 만난 초면의 아티스트는 외형으로나 복장으로나 인터뷰어인 내 눈에 제법 강렬한 상(像)을 심어 주었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행여 안 오셨다고 해도 전혀 괘념치 않았을 겁니다. 워낙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제안이었으니까요.”
이렇게 말하는 초요의 음성에는 아쉽게도 배우다운 멋은 결여되어 있었다. 깡마른 남성 가수가 성대를 혹사시켰을 때 나올 법한 하이 톤의 쉰소리였다.
“월간 《아트오브》 미술팀 박초연 기자라고 합니다. 이쪽은 오늘 인터뷰 담아주실 카메라 감독님이고요.”
나는 편집장에게 교육 받은 대로 ‘안녕하세요’를 생략하고(왜 그래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속과 직함부터 밝혔다. 촬영 기사는 인사를 마치자 걸머멘 장비들을 무대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삼각대를 펼쳐 풀프레임 카메라를 결속했다. 손놀림이 제법 신속해 사람이 다시 보였다.
편집장은 인터뷰이한테 만만한 인상을 주면 안 된다, 인사할 때도 고개 빳빳이 들어라, 기자란 그래야 한다, 라고 조언했지만 초요 앞에서는 허리를 안 숙일 도리가 없었다. 명함을 건넬 때 양어깨 뒤의 머리칼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인터뷰는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했으면 하그든요. 나무 옆에 서서.”
내가 머리를 매만지는 동안 초요가 말했다. 객석에 앉아 문답하는 연출을 당연시했던 나로서는 곤란한 일이었다. 게다가 인터뷰 내내—아마도 한 시간 반쯤 서 있어야 한다는 게 고역일 듯했다. 무엇보다도 선뜻 그러자고 응낙하면 인터뷰이에게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을까 우려스러웠다. 편집장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여기엔 발 받침 달린 의자가 없어서 그렇그든요. 제가 좀 작다 보니. 양해 바랍니다.”
초요의 정중한 재청 덕에 나는 맘 편히 “그러시죠.” 하고 대답했다. 인터뷰이의 신체적 제약을 배려한 결정이니 인터뷰어로서 주도권을 내준 것은 아니리라. 편집장에게 책잡힐 일이 아니다. 마침 촬영 기사도 “객석보다 무대가 그림이 잘 나오겠어요. 빛도 안정적이고.” 하고 거들어 준 덕에 내 마음은 훨씬 편해졌다. 그렇게 나는 소극장 무대 위에 서서, 활처럼 휜 고사목 모형을 곁에 둔 채 초요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요새는 작은 공간을 찾기 힘들그든요. 뭐랄까, 저 같은 사람이 안락함을 느끼는 장소랄까요. 그래서 여기로 정한 거그든요. 아담하고 무엇보다도 텅 비어 있고.”
촬영 기사가 카메라 세팅을 하는 동안 초요가 입을 열었다. 그는 허스키한 음성으로 구십 년대 초 뉴스의 길거리 시민 인터뷰—시사지 취업 준비를 할 때 ‘옛날 뉴스 아카이브’라는 유튜브 채널을 자주 봤었다.—를 연상시키는 이른바 서울 사투리를 구사했다. 묘하게도 이 말투가 얼마간 내 긴장감을 풀어 주었다. 실례되는 말이겠으나 좀 웃겼기 때문이다. 현시대 희극인이 과거의 인물상을 흉내내는 것 같았다. 실제로 그런 코미디 프로가 있기도 했다. 나는 인터뷰이와 마주서서 여유 넘치는 프로 기자인 양 짐짓 신소를 지어 보였다. 약 삼십 센티미터쯤 아래에 위치한 상대의 눈을 시종일관 내려다봐야 한다는 게 못내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윽고 내 머릿속은 윈도 컴퓨터의 오류 화면처럼 파래졌다. 파일 자체가 유실된 듯 지난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외운 인터뷰 질문 목록을 불러오지 못했던 것이다. 블라우스 안에서 서늘한 곁땀이 흘렀다.
“편하게 진행하면 좋겠그든요. 어학 학원의 프리토킹 시간처럼. 현장 인터뷰는 질의응답 식이더라도 편집은 어차피 다이얼로그 느낌으로 가는 거죠? 아예 촬영도 자유 포맷으로 슛 하면 어떨까요? 괜찮으시다면.”
나는 등뒤의 촬영 기사를 돌아보았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팔자 눈썹을 만들어 보였다. 아무려나 상관없다, 어차피 이 현장의 총책임은 당신 아니냐, 알아서 해, 라는 뜻이었다.
“뭐 그게 편하시다면.” 하고 나는 말해 버리고 말았다. 편집장의 노기 띤 얼굴(아직은 본 적이 없지만)이 어른거렸다.
― 단편소설 「노란 숲의 초요」 #4로 이어집니다
글쓴이. 임재훈
윤디자인그룹이 운영하는 온라인 디자인 매체 『타이포그래피 서울』의 에디터로 근무했다. 타입·타이포그래피 전문 계간지 『더 티(the T)』 9·10·11호의 편집진 일원으로 일했다. 경기도시공사, 한국언론진흥재단, 효성그룹 등 국내 기업 및 기관의 홍보 콘텐츠 제작에 참여했다. 저서로 『실무자를 위한 기업 홍보 콘텐츠 작법』과 『잘나가는 스토리의 디테일』, 공저로 『나답게 사는 건 가능합니까』와 『소셜 피플』(총 8부작)이 있다. 2023년 단편소설 「공동(空洞)」으로 스토리코스모스 신인 소설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