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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재훈 NOWer Feb 06. 2024

단편소설 「노란 숲의 초요」 #4

“작가 님은 자작나무였군요.”


레디, 슛. 슬레이트를 대신해 촬영 기사가 손뼉을 쳤다. 초요는 메고 있던 크림색 러너백 안에서, 펼친 손수건 크기만 한 노트를 꺼냈다. 크라프트지로 앞뒤 표지가 장정된 미싱 제본이었다. 딜러가 카드 패를 돌리기 전 으레 현란한 셔플을 뽐내듯, 그는 책자의 배 부분을 엄지로 누르고 ‘촤라락’ 소리를 내며 페이지들을 넘겼다. 헌책방에서 날 법한 곰삭은 종이 냄새가 코앞까지 훅 끼쳐 왔다. 내지가 푸슬푸슬 울어 있어 낱장과 낱장 사이가 들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몹시 오래된 물건이었다. 나는 플립북을 감상하는 양으로 장장이 채워진 텍스트와 그림을 내려다보았다. 자기 나름의 페이지 셔플을 마친 초요는 그중 한 면을 펼쳤다.


“나는 몇 년째 주기적으로 노란 숲의 꿈을 꾼다. 사후적으로 되짚어 보니 한 달에 한 번꼴이다. 나는 이 꿈을, 이 노란 숲을……”


대뜸 시작된 낭독을 벙찐 얼굴로 끝까지 듣고 말았다. 원래 인터뷰라는 게 이렇듯 비예측적인 걸까. 초요가 읽은 글은 다름 아닌 〈노란 숲〉 작가 노트였다. 그의 개인 사이트에 게재된 원문과 차이점이라면,


“천구백팔십구 년 십일월 십사일 화요일, 오비 베어스 전설 박철순, 투수 코치에서 전격 현역 복귀.”


라는 작성일 표기였다. 낭독을 마친 초요가 노트를 내게 건넸다. 떠받든 두 손을 내 쪽으로 올린 초요의 자세에 나는 황망해져 급히 허리를 숙이고 노트를 받아들었다. 머리칼이 또다시 흘러내렸다.


“그 소설가 청년이 제가 알기로 구십일 년생이그든요.”


펼쳐진 좌우 지면에 각각 문제의 텍스트 전문과 〈노란 숲〉의 초기 스케치로 보이는 드로잉 몇 개가 기록되어 있었다.


“팔십구 년도에 작품 구상과 해당 글의 작성을 마치셨다는 말씀이시죠?”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지난해 개인전, 그러니까 삼십 년이 훨씬 넘어서야 공개하신 거죠?” 내가 재차 물었다.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그든요. 작년 봄부터.”


나는 잠자코 초요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아무래도 대화의 주도권은 진즉부터 그가 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인터뷰가 성사되기 전부터. 나는 낭패감을 감추기 위해 안면근육을 힘껏 붙들고 간신히 여유를 지었다.


“제가 젊었을 때 프로야구 팬이었그든요. 오비 광팬이었어요. 물론 경기장 가서 ‘직관’을 한 적은 없습니다. 스카이박스가 아닌 이상에야 그라운드가 보이질 않그든요. 응원하는 사람들의 등허리만 노려보다 올 테죠. 그래서 늘 라디오로, 테레비로 중계 방송을 듣고 보며 즐겼어요. 베어스 박철순의 현역 복귀 기사가 나온 날, 즉 제가 〈노란 숲〉 구상을 끝낸 바로 그날부로 노란 숲의 꿈이 멈췄습니다. 전날 밤 꿈이 마지막이었죠. 시즌오프랄까요. 구십오 년에 오비 베어스가 롯데 자이언츠를 꺾고 한국시리즈 통산 두 번째 우승을 거머쥐고, 이듬해 전설 박철순이 은퇴를 선언하고, 구십구 년 오비에서 두산으로 구단명이 바뀌고, 이천일 년 두산 베어스로서 첫 우승컵을 차지하고…… 그러고서는 이십여 년이 흐를 때까지, 단 한 번도 노란 숲의 꿈을 꾸지 않았습니다.”


“요컨대 팔십구 년 십일 월의 꿈이 삼십 년 이상 기나긴 ‘시즌오프’를 마침내 종료하고 이천이십이 년 봄 돌연 재개되었다, 이런 이야기네요?” 나는 펼쳐진 상태 그대로 노트를 돌려주며 말했다. 초요는 두 팔을 치뻗어 그것을 받고 가볍게 ‘탁’ 소리가 나도록 덮었다.


“네. 문자 그대로 불현듯. 오랜 정전 끝에 집 안의 모든 불빛이 일시에 켜지듯.”


저 잠시만 배터리 교체 좀 하겠습니다, 라는 촬영 기사의 말은 더없이 시의적절했다. 용기를 살살 흔들어 내용물을 고루 섞듯 내 의식도 정돈이 필요했다. 〈노란 숲〉 작가 노트의 내용이 자기 등단작과 유사하다는 젊은 소설가의 표절 논란 제기, 이에 대한 당사자 초요의 해명 또는 반박. 이것이 오늘 인터뷰가 마련된 이유다. 나는 이 기획 의도를 상기하며 안면근육을 더욱 바짝 죄었다. 그런데 힘주어 여유를 지을수록 머릿속에는 몹시 불경한 질문 하나가 단단히 고개를 세웠다. ‘다시 노란 숲의 꿈을 꾼다면, 정말로 그렇다면, 몽정도 다시 시작했다는 말인가.’


구체적 신상은 물론 본명마저 공공연히 밝히길 꺼리는—예명을 쓰는 작가들의 보편적 성향이랄까.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다.—초요는, 예의상 서너 살쯤 뺄셈을 하더라도 착오 없이 오십 줄로 보였다. 그런 중년의 사내가 밤새 꿈꾸며 사정을 한다? 남성 성기능과 노화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내가 배운 바로 몽정은 성장기 발육의 한 사례다. 오십 대 아저씨에게 일어나기에는 어느 모로 보나 매우 부자연스럽다. 원로 배우가 교복을 입고 고교 얄개를 연기하는 일 못잖게. 초요의 몽정과 그것의 진위 여부를 고민하는 사이 촬영 기사가 큰소리로 말했다. “배터리 교체 완료요, 십 초 뒤에 슛 들어갈게요. 십, 구, 팔, 칠, …” 그리고 두 번째 손뼉.


“그 소설가 청년에게는 아무런 악감정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 인터뷰가 표절 논란 당사자로서 나 초요의 힘 있는 일성으로 기능해 주리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그든요. 아까 기자님께 보여드린 페이지는 증거로 받아들여지기보다 또 다른 논란거리로 씹힐 공산이 크지요. 조작 가능성이 제기될지도 모르고요. 소설가 청년은 새 입장문을 낼 겁니다. 〈노란 숲〉 작가 노트는 팔십구 년도에 작성된 것이니, 이제는 거꾸로 본인 등단작이 표절작으로 의심받게 될 테니까요.”


“그 소설가가 작가 님의 노트를 도용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초요는 내 질문에 즉답을 하지 않고 모형 나무의 표면을 천천히, 반복적으로 쓸어내렸다. 영묘한 전설이 깃든 기암을 쓰다듬듯 그의 얼굴은 차분해 보였다. 적어도 분노나 억울함의 감정은 감지되지 않았다.


“아니오. 그럴 일은 없그든요. 저는 절대, 라는 부사를 잘 쓰지 않지만 이 경우만큼은 기꺼이 사용하겠습니다.”


“흠.”


나도 모르게 얕은 숨을 소리 내 뱉어 내고 말았다. 어째 대화가 점점… 이 무대 위의 나무처럼 구불구불 흘러가는 기분이 들었다. 편집장은 인터뷰 영상을 보고 어떤 피드백을 내놓을까.


“노란 숲의 꿈을 꾸는 자들은 저 말고도 또 있그든요. 꿈의 양태는 대동소이합니다. 노란 숲에 들어간다, 그곳을 거닌다, 등장인물은 오직 자신 한 명뿐이다, 이내 성적 절정감을 느낀다. 차이라면 삼림을 구성하는 수목의 종류일 겁니다. 누구는 느릅나무, 또 누군가는 참나무, 어떤 이는 메타세쿼이아, 같은 식으로요.”


“작가 님은 자작나무였군요.”


“맞습니다. 엄밀히 구분하면 〈노란 숲〉은 풍경화그든요. 꿈속의 자작나무 숲을 본 대로 그렸을 뿐이니.”


“나무의 종은 달라도 색은 동일하다. 이것이 꿈의 규칙인가 봐요.”


나는 반쯤 자포자기한 심경으로 초요의 말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대답 대신 그는 아까처럼 나무를 어루만졌다. 자기 키의 세 배는 더 큰 나무를 자꾸 쓰다듬는 남자. 〈왕좌의 게임〉 속 한 장면 같았다. 거대한 용 옆에 선 티리안, 결코 용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작은 사내.


“소설가 청년의 꿈속에선 어떤 나무였을지 궁금하네요.” 나무에서 신중히 손을 떼며 초요가 말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나무가 아니라 색이그든요. 왜 하필 노란 숲인가. 빨간 숲도 보라색 숲도 아닌. 어째서 노란색이어야 했는가. 노랑에 대한 옛 동서양의 관점은 완전히 극단적이었답니다. 동양에선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어요. 영락제, 누르하치 같은 황제의 어진(御眞)들은 대개 황금빛을 아이덴티티 컬러로 썼그든요. 반면 서양의 노랑은 멸시의 상징색이었지요. 매춘부와 미혼모는 노란색 두건이나 망토를 두르고 다녀야 했어요. 유대인의 머리 위에는 노랑 모자가 얹어졌고, 〈쉰들러 리스트〉 같은 영화에도 나오다시피 윗옷 가슴팍에는 노랗게 칠한 다윗의 별이 붙었죠. 모자는 악마의 뿔, 헥사그램은 안티 사타니즘을 의미합니다.


젊은 시절 프랑스 남부를 여행한 적이 있그든요. 당연히 툴루즈 로트레크 미술관도 들렀습니다. 거기서 이 티셔츠—그는 검지와 엄지로 상의 밑단을 살짝 잡아당겼다.—를 산 거예요. 노랑 머릿수건을 두른 뚱뚱한 무희, 차우카오. 로트레크는 한마디로 노란색의 화가였습니다. 적어도 제 눈에는 그렇게 보였그든요. 그 역시 저처럼 작은 사내였습니다. 열네 살 때 낙마 사고를 당한 뒤로 더이상 자라지 못했다고 해요. 귀족 가문 출신인 그는 ‘작아진’ 뒤부터 몽마르트르 뒷골목의 환락가를 전전했습니다. 거기서 본 것들을 가감 없이 그림으로 옮겼어요. 창부들이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덕에 몇 시간이고 집중해서 그들을 그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같이 노란색의 존재들이었지요. 노랑 머리끈, 노랑 숄, 노랑 치마. 어쩌면 로트레크는 노랗게 살아가는 그들을 노랗게 재현해 내는 작업을 통해 자기 안의 노란 숲을 극복하려던 게 아니었을까 싶그든요. 이열치열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서른일곱 짧은 생애 동안 과연 그 과업에 성공했는지는 오직 로트레크 자신만 알겠지요. 다만 제가 단언할 수 있는 건, 그 또한 노란 숲의 꿈을 꾸었으리라는 점이그든요. 나 초요처럼, 그 소설가 청년처럼, 그리고 다른 많은 이들처럼.”


여기까지 이야기한 초요는 한 손으로 등허리를 두드리며 척추를 곧추세웠다.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나는 나무를 만져 보았다. 딱히 의도를 갖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상대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동안의 무의미한 몸짓이었다. 그러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뭐가 들었는지 모르는 암상자에 무턱대고 손을 집어넣은 느낌이었다. 손끝에 감각된 나무 표면이 실물의 촉감과 무척 흡사했기 때문이다. 노크하듯 두드려 보니 텅 빈 소리가 났다. 아마도 모형 내부에 케이크 패키징처럼 지지대가 고정되어 있을 것이다. 나무 특유의 단단한 물성은 생략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 재연에 치중한 모형이었다.


나는 문득 리얼한 모형 나무들이 빽빽이 우거진 거대한 숲을 상상해 보았다. 너무나 리얼해서, 그 시각성만으로 보는 이를 압도하는 노랗고 커다란 숲. 그곳에선 누구나 초요(僬僥)다. 네덜란드도 그 숲에 거하는 한 세계 최장신국으로 불리지 못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곳으로 입장한다. 알고 보면 노크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디오라마의 꿈속으로. 그러고는 정성을 들여 몸 안의 생식 세포를 뽑아 낸다. 허울만 좋은 모형 고목들을 비웃듯, 작고 눅진한 액체를 숲의 대지에 스미도록 한다. 그러나 노란 숲은 아랑곳하지 않고 꿈으로 현현한다. 그것도 주기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과연 승부가 나는 게임일까.


“청소년 시기부터 저는 ‘여기서 더 작아지면 어떡하지’를 고민해 왔그든요.” 초요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커지리라는 기대를 한 적이 없어요. 아마도 그런 사고 틀이 지금껏 녹슬지도 않고 작동을 하는 모양입니다. 아직도 작아질 일을 걱정하그든요. 나도 이런데, 그 소설가는 오죽할까요. 이른 나이에 커버린 그 청년은.”


초요는 또 한 번 나무를 쓸어내렸다. 손을 움직일 때마다 직방형 프레임 속 무희의 노랑 머릿수건과 숄이 넘실거렸다. 더 작아질까 봐 걱정하는 작은 예술가와, 그의 가슴 위에 앉아 무대를 준비하는 차우카오를 나는 한동안 내려다보았다. 초요는 노란 숲의 꿈속에 있는 듯 하염없이 나무를 만지고 있었다. [끝]





글쓴이. 임재훈

윤디자인그룹이 운영하는 온라인 디자인 매체 『타이포그래피 서울』의 에디터로 근무했다. 타입·타이포그래피 전문 계간지 『더 티(the T)』 9·10·11호의 편집진 일원으로 일했다. 경기도시공사, 한국언론진흥재단, 효성그룹 등 국내 기업 및 기관의 홍보 콘텐츠 제작에 참여했다. 저서로 『실무자를 위한 기업 홍보 콘텐츠 작법』과 『잘나가는 스토리의 디테일』, 공저로 『나답게 사는 건 가능합니까』와 『소셜 피플』(총 8부작)이 있다. 2023년 단편소설 「공동(空洞)」으로 스토리코스모스 신인 소설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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