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디자인』 2024년 9월호(통권 555호) 기고 글
월간 『디자인』 2024년 9월호 [다능인을 위한 페르소나 탐구, 디자이너의 사이드 프로젝트] 특집 수록 기사의 ‘RT(raw text) 에디션’—매체 편집팀의 손을 거쳐 정식 게재되기 전 버전입니다.
썬트리‘오피스’ 아니고 썬트리‘하우스’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금종각의 ‘각(閣)’은 ‘집’을 의미하다. 하지만 일반적인 집이 아니다. 사전에서 ‘각’을 찾으면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문과 벽이 없이 다락처럼 높이 지은 집’이라는 뜻풀이가 나온다. 공유 오피스 썬트리하우스의 소개문으로 사용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은 문장이다.
2019년 네덜란드 체류 중 금종각을 시작한 이지현은 이후 귀국하여 2022년 초 이태원 녹사평역 인근 경리단길 골목의 아담한 삼층 건물을 썬트리하우스로 꾸몄다. 기획자, 디자이너, 에디터, 웹 개발자, 출판인 등이 층층마다 각자의 업을 영위하고 있다. 오가는 작업자들의 국적도 다양하다.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일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서로가 서로의 해(sun)와 나무(tree)로서 한 풍경을 이룬다.
이지현 스스로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영문 로고타입을 디자인해놓고 보니 ‘e’ 세 개가 꼭 와글와글 얘기하는 사람들의 옆모습 같았다. 벽 대신 ‘각’을 세운 썬트리하우스 특유의 공간성, 즉 교류와 영감이 현현하는 ‘크리에이터들의 집’이란 인상이 로고타입에도 묻어난다.
금종각과 썬트리하우스는 각각 이지현의 본업과 사이드 프로젝트이나 실은 둘이 아닌 하나의 유기체에 가깝다. 국내 독립 출판 페어의 대표격인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SPT)’을 최근까지 이끈 주체가 금종각과 썬트리하우스다. 독립 출판계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디자이너답게 이지현은 주도적으로 SPT를 꾸려 나갔다. 전심전력이라는 표현이 알맞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썬트리하우스라는 이름과 존재를 전면에 내세웠다.
지난 SPT의 이모저모를 기록한 공식 웹 사이트에는 주최사 정보 란에 썬트리하우스와 그 주소를 기재했다. 한자리에 고정된 사무 공간이 아닌, 출판 및 디자인 프로젝트에 적극 가담하는 ‘움직이는 성’으로서 썬트리하우스를 재정의한 것이다. 실제로 오피스 멤버들이 행사 스태프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렇듯 이지현은 한곳에 멈춰진 공간을 시장과 현장이라는 영역으로 끊임없이 이동시키고, 제자리의 개별 주체들을 움직이는 집단으로 조성하는 일에 열심이다. 그 상징이 바로 썬트리하우스다. 이렇다 보니 부작용(?)도 생겼다. 금종각을 디자이너 이름으로, 썬트리하우스를 스튜디오명으로 이해한 사람들이 왕왕 나타난다는 것. 이지현이 ‘종각 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게 된 배경이기도 할 것이다.
24시간 개방형 공유 오피스인 썬트리하우스는 20세기 예술가 앤디 워홀의 작업실 ‘팩토리’와도 그 나아감과 지향점이 유사해 보인다. 모여들어 교류하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런 나날의 지속은 집단을 내포한 공감형 자아, 그리고 개별자들의 알찬 총합을 구현한다. 궁극적으로 그들이 소속된 영역을 비옥하게 만든다.
공간 하나가 전방위적으로 외연을 확장한 사례는 미국의 팩토리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있다. 연극인과 음악인 들의 ‘학전’이 있고, 문인들의 ‘학림다방’이 있다. 경리단길 주택가 ‘정 미용실’ 윗골목에 3년째 자리하고 있는 썬트리하우스에서 옛 대학로의 환한 붐빔과 같은 에너지를 기대해 본다면 어떨까.
썬트리하우스
― 메인 사이트
― @suntree.house / @golden.bell.temple
글 임재훈
― 시각 디자인 및 영화 분야 자유기고가
월간 『디자인』
― 발행사 디자인하우스 / 콘텐츠 플랫폼 디자인플러스 / 온라인 숍
― @designhouse_1976 / @monthlydesig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