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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희 May 06. 2024

엄마아빠에게 어른이 무엇인지 묻다

기획 인터뷰 '어른'

아이를 낳고 키우며 '좋은 어른'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나도 아직 어른이라기엔 부족한 것들 투성이라, 나의 모습을 무서운 속도로 따라하며 배우는 아이에게 어른으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게 맞는지 자신 없어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번 기획 주제를 ‘어른’으로 정한 후, 나라는 사람을 어른으로 키워낸 엄마와 아빠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나에게 기꺼이 ‘어른’이 되어 준 부모님과의 솔직한 대화를 함께 나누고 싶다.




안녕하세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어른인 엄마아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인터뷰 자리에 모셨어요. 먼저 <사소한인터뷰> 독자들에게 간단한 소개 부탁드려요.


혜숙: 안녕하세요. 저는 유아교육 영업 일을 하고 있는 천혜숙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육아와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중에 우연히 시작하게 된 일인데 벌써 30년 가까이 되었네요.


건식: 안녕하세요, 김건식입니다. 통신회사에서 30년 넘게 일하다 지금은 전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새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영원한 나의 엄마아빠 (feat. 우리 집 보물)




Part 1. 어른을 키워낸 어른의 이야기


제 기억 속 엄마아빠는 아직도 40대인 것만 같은데, 어느새 두 분의 나이가 환갑을 넘었어요. 사회적으로 진짜 어른으로 보는 나이인데, 환갑이 넘었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건식: 갈수록 집안에서 어른이 되어 가는 게 느껴져. 이제 윗대는 다 돌아가시고 하니까 어느새 가장 어른이 되어 있더라. 책임감도 더 생기고 그래.


혜숙: 엄마는 젊을 때 오히려 뭔가를 엄청나게 책임져야 된다는 부담감이 더 컸어. 자녀들에게 깊은 사랑을 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어마어마했었거든. 자녀들이 크고 성인이 되니 이제야 ‘나를 좀 챙겨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젊을 때 못 해봤던 ‘나는 누구지?’라는 고민을 이제야 다시 하며 나를 돌아보곤 해.


엄마는 이제야 자신을 챙길 수 있게 되었군요..!


혜숙: 한 어른으로서 한 번 더 독립을 한다고나 할까. 자식을 독립시키는 게 아니라, 어른인 내가 독립을 해야 하는 거더라고. “이제 독립하자”라는 말을 나 자신에게 참 자주 했어. 자녀들에게 의존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갖기 위해 정말 노력했지. 특히 자녀를 많이 케어한 사람일수록 독립이 더 어려운 것 같아. 자녀들과 긴 시간 동안 같이 살다 보니까 내 속에 차있던 무언가가 훅 빠져나가는 것 같고 엄청 허전하거든.


엄마가 아닌 다시 한 개인으로서 독립을 하려니, 내가 나를 다시 찾아야 되잖아. 내가 온전히 잘 살기 위해 건강도 챙기고, 이것저것 경험해 보기도 하는 것 같아.


근데 나이가 드니까 할 줄 아는 게 자꾸 줄어. 젊을 때는 배우면 되는데, 나이 드니까 배워도 안 되는 게 너무 많더라. 그러다 보니 지금 내 그릇에 맞게, 역량에 맞게 내가 나를 케어할 수 있는 방법을 다시 배우고 있어. 좁혀야 되는 욕심은 좁히면서, 가급적이면 내가 스스로 해내고 책임질 수 있는 것을 많이 만드는 중이야. 


그러면서도 자식들이 도와줬으면 하는 마음도 한구석에 있어. 옛날에 자식이 부모에게 무언가를 갈구했듯이 거꾸로 나이가 드니까 부모가 자식에게 배워야 될 게 너무 많은 거야. 아무리 해도 안 될 때, 답답할 때는 생각이 나. 그런 마음을 잘 컨트롤해야 되겠구나 싶어.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독립했다면, 자녀를 다 키운 후에는 진짜 나 혼자로 독립하는 거네요. 


혜숙: 그치. 가끔은 의존할 데가 없어서 속도 상하고 ‘나는 여태까지 뭐 했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런 시간을 치열하게 보내야 다시 나로서 오롯이 설 수 있는 것 같아.


오래된 앨범 속, 우리를 사랑으로 안고 이고 다니던 초보 엄마. 처음 보는 서른 즈음의 엄마 얼굴이 많았다.


이제 자녀들이 모두 어른이 되었는데, 어떤 어른으로 살아가면 좋겠어요? ‘좋은 어른’으로 키우기 위해 꼭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게 있었어요?


혜숙: 엄마가 육아할 때 “물고기를 잡아주기보다, 잡는 법을 가르쳐 줘라”가 트렌드였는데, 그래서인지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많은 어른으로 성장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사회에 나가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도록, 어렸을 때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배우게 해주고 싶었지.


그리고 아빠의 가족들이 일찍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서 마음 한 켠에 불안함이 늘 있었던 것 같아. 혹시나 지원을 못 할 상황이 닥친다면, 그때까지 배운 걸로 아이들이 살아야 되잖아. 그러니까 ‘해줄 수 있을 때 하자’는 마음으로, 먹고 살기도 빠듯한 형편이었지만 최선을 다해 아이들에게 투자한 것 같아.


건식: 아빠는 어렸을 때부터 경제적으로 쪼들리며 살아서, 자식들은 돈으로부터 자유로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 농담 식으로 “크면 10억 모으기를 목표로 달려보라”는 말을 종종 했었잖아. 그만큼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는 이유가 움직이면 작게라도 쓸 돈이 생기잖아. 늘 경제 활동을 하는 어른이고 싶어.


아빠는 아버지가 젊은 나이에 돌아가셔서, 어렸을 때부터 어른의 역할을 많이 해왔을 것 같아요. 어린 아빠가 했던 ‘어른’의 역할은 어떤 거였어요?


건식: 아무래도 어렸을 때부터 생활비를 벌어야 했지. 중학생 때부터 본격적으로 벌었던 것 같은데, 당시는 요즘처럼 알바 같은 게 없었어. 그때 시골에서는 토끼 가죽을 말려 놓으면 그걸 사 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걸 보고 토끼 파는 일을 시작했어. 어른들한테 토끼 사달라고 해서 토끼를 키웠지. 토끼는 추운 곳에 있으면 죽어서 따뜻한 방 안에서 키우다 보니 늘 집에 냄새가 가득했던 기억이 나.


또 생생한 기억이, 옛날에 초가지붕이 있는 집에 살았는데 가을마다 이엉을 엮어 가지고 지붕을 뒤집어 씌워야 해. 근데 가을마다 할머니는 애가 타는 거야. 이엉을 엮어줄 힘 센 어른이 없어서. 엮는 방법이 어렵고 힘이 필요해서 보통 남자 어른들이 하거든. 아빠는 그때 어려서 할 줄도 모르고 도와줄 수가 없어서 도와줄 사람을 구할 때까지 같이 마음만 졸였지.


어릴 땐 그냥 뛰어놀고 장난도 치면서 개구쟁이처럼 커야 되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제가 아빠면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을 것 같아요. 그럼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니까.




Part 2. 좋은 어른에 대하여


이번 기획 주제가 어른인 만큼, 두 분이 생각하는 ‘좋은 어른’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요.


혜숙: 누군가 보기에는 내가 진짜 ‘어른’이라는 나이로 올라와 있잖아. 그러니까 말하기가 더 조심스럽고 어려워. 옛날에는 다른 사람을 보며 ‘이 사람은 어른 같다, 아니다’ 생각하는 입장이었다면, 이제는 누가 나를 그렇게 보는 것 같은 거야. 근데 정말 내가 어른일까? 엄마는 아직 완전 어른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그래도 하나 꼽자면, 절제력. 선을 넘지 않고 선을 지키며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 어른다워 보이는 것 같아.


건식: 집안의 어른들 밑에서 크잖아. ‘어른’을 떠올리면 외할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 외할아버지께서 말씀을 많이 안 하시는데, 하시는 말씀마다 무게감이 있었어. 반말도 쓰지 않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위엄 있으셨지. 자녀들에게 “무언가를 하라 마라” 하는 잔소리가 없었고, 아이들이 놀고 있으면 웃음 지어 주시던 모습이 기억 나. 예를 들어 “살 좀 빼라”와 같이 흔한 잔소리도 절대 안 하시고, 뚱뚱하면 뚱뚱한 대로 홀쭉하면 홀쭉한 대로 다 골고루 인격 대우를 해주셨어.


각자 말씀하신 모습이 엄마아빠 본인과 닮았어요.


살면서 만났던 어른들 중에 지금도 생각나는 ‘좋은 어른’이 있어요?


건식: 어려울 때 도움 준 어른들은 아직도 생각 나.


한 분은 고등학교 선배인데, 풍에 걸린 할머니가 이사를 해야 되는데 직접 전화국 트럭을 몰고 도와주러 왔어. 우리 집 사정을 아니까 충주에서 대전까지 오는 이사 비용 아끼라고 마음을 써준 거지. 할머니 사는 집에 가서 짐도 실어 주고..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누가 있어. 너무 고맙더라고. 덕분에 공짜로 편하게 왔지.


또 한 분은, 스물 두살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경황이 없더라고. 그때 살던 집 주인 아저씨가 장례는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 등을 다 알려줬어. 당시 못된 집주인들은 자기 집에서 사람이 죽었다고 짜증 내고 그랬는데 짜증은 커녕 정말 많이 도와줬지. 이전에 살던 곳들에서는 할머니가 환자인 걸 알고는 나가라고 한 적도 많았어. 월세 낼 돈이 없어서가 아니고, 가족 중 환자가 있다는 이유로 1년에 3번이나 이사를 한 적도 있어.


그것도 궁금했어요. 두 분은 오랜 기간 일을 해오셨는데, 일터에서는 어떤 사람이 좋은 어른의 모습에 가까울까요?


건식: 나이 먹을수록 나서서 도와주거나 베푸는 것보다 ‘남들에게 피해는 끼치지 말고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더 갖게 되는 것 같아.


가끔 자기 것만 챙기려는 속내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사람이 있는데, 나만 생각하지 말고 함께 고생하는 사람들을 볼 줄 알아야 해. 아빠가 지금 일하는 곳에 있는 칠판에 크게 써 붙여놓은 말이 있어.

“내가 편하면 동료가 고생한다.” (웃음)


혜숙: 각자 안에 원석처럼 숨어 있는 재능이나 장점이 있는데 정작 본인은 모르는 경우가 많잖아. 그걸 알아봐 주고 응원해 주는 어른을 엄청 좋아해.


그리고 한번 해보라고 격려해 주는 어른도 좋아. 엄마에게도 그런 고마운 리더가 있었어. 엄마가 은연 중에 낯가림도 심하고 용기가 없었거든. 영업하려고 남의 집을 문 두드렸는데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거야. 두려워서, 문을 열지 않기를 바랄 때도 있었어. 일단 해보라고, 괜찮다고 용기를 주었던 상사 덕분에 지금은 그 두려움을 깨는 재미로 일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동료들과 함께 있을 때 엄마의 표정들




마지막으로, 100세 인생이라고 치면 이제는 어른으로서의 삶이 40년 가량 남았어요. 앞으로 어떤 어른으로 살고 싶어요?


혜숙: 100세 시대라고들 하지만, 사실 100세까지 지금과 같은 컨디션으로 사는 게 아니니까 그 시간이 와닿지 않는 것 같아. 오히려 ‘건강한 삶이 앞으로 몇 년 더 있을까’, ‘건강이 보장되는 선까지 열심히 살아보자’라는 생각이 좀 더 들어. 이제 내가 건강을 어떻게 챙기느냐에 따라 남은 시간이 정해지는 것 같거든.


‘내가 할 수 있는 한 사회의 일원이 되기는 해야 될 텐데’, ‘그냥 안주하며 집에만 있는 사람이 되지 않아야 될 텐데’라는 생각도 많이 하지. 그래서 보수가 있든 없든 꼭 움직이기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그리고 그동안 일하며 많은 사람들이 거쳐갔잖아. 항상 염두에 두는 한 가지는 나쁘게 헤어지지 말자는 거야. 헤어짐이 나쁘면 아무리 좋은 시간을 많이 보냈어도 그 시간이 다 무산되어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야. 기억의 마침표가 나쁘게 찍혀 버리는 거잖아. 그래서 늘 선을 지키려 조심해, 언제 헤어질지 모르니까. 긴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최근에 와닿은 얘기가 하나 있어. “인생은 소풍과 같다. 풍경이 좋은 데 돗자리 깔고 맛있는 거 먹으며 즐겼으면, 갈 때는 잘 접고 마무리하고 가자.” 내가 펼쳐놓은 것들은 내가 잘 마무리하고 가야지.


마지막 질문이 나를 이런 찡한 답으로 이끌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문득 영원히 살 것 같은 마음이 아이의 것이고, 끝이 있다는 걸 아는 마음이 어른의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혜숙: 아픔과 상처, 그런 것들을 주지 않고 가야지. 엄청 힘든 일이야. 그래도 떠났을 때 누군가에게 마음에 남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에 노력하는 거지. 


살면서 그런 기억이 없는 게 너무 힘들었어. 어릴 때 나를 직접적으로 케어하며 애착을 형성해 준 어른이 없었던 것 같아. 할머니가 너무 일만 했거든. 다들 가슴 한 켠에 애틋한 추억이 있던데, 나는 그런 게 생각나지 않는 게 이상하고 답답했어.


나는 누군가에게 ‘살다 보면 언뜻 떠오르는 사람’이 되고 싶어. 같이 있지 않아도 늘 같이 있는 사람처럼 말이야. 자녀에게만큼은 더욱 그래. 그게 진짜 같이 살고 있는 거거든. 꼭 밥을 같이 먹고 이런 것만 같이 사는 게 아니야. 엄마를 생각하면 그게 음식이든 말이든 무언가가 마음에 떠오르는 게 있으면 돼. 원래 말수가 없는 편이었는데, 아이들에게 뭐라도 남았으면 하는 마음에 엄청 많은 이야기를 해준 것 같아. 어떤 말이 남았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무언가 남았을 거야, 그치?


건식: 욕심인데, 죽음에 갈 때까지 자식들한테 신세 안 지는 어른. “현명한 부모는 장례식장 비용까지 통장에 남기고 생을 마감한다"라는 말도 있잖아. 인생이 늘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자식들에게 짐을 안 지워주고 싶어.



누군가에게 어른이 되어주기로 마음먹는 순간, 되는 것이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와 아빠는, 자녀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주기로 마음먹었기에 그 시기에 맞는 어른이 되었다.
아이인 우리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성인이 된 우리에게는 독립된 한 개인으로 말이다.

나 또한 나의 아이에게,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부족한 것보다 줄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좋은 어른'이 되어 주기로 마음먹어 본다.

지난 30여 년간 우리 엄마와 아빠가 나에게 그래 주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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