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롱 Dec 27. 2018

시대의 공존이 주는 안심

이강백 작가, 이수인 연출, 극단 떼아뜨르 봄날, 연극<어둠상자>

출처 : 예술의 전당


예술의 전당 개관 30주년을 기념하여 이강백 작가의 신작 <어둠상자>가 지난 11월부터 한 달간(11/7~12/2) 자유소극장 무대에 올랐다.


대한제국 말기, 고종황제는 황실 화가 김규진을 일본에 보내 사진을 배우게 한다. 사진을 배우고 돌아온 김규진은 조선황실의 사진사가 된다. 1905년 미국사절단의 방문이 잡히고, 고종은 조미수호통상조약(1882)을 상기시키고자 미 대통령의 딸인 앨리스 루즈벨트에게 자신의 어진을 선물하고자 한다. 황제는 김규진을 불러 덕수궁 석조전에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는다. 조선은 앨리스와 함께 도착한 사절단을 극진히 환영하고 선물을 전하나, 그녀의 반응은 차갑다. 타국의 대사들 앞에서 어진에 대해 ‘황제다운 존재감이 없고 애처롭고 둔감하다’며 조롱한 것. 이 사실을 알게 된 황제는 자신과 나라가 더 위태롭게 된 이후에 남아서 조롱감이 될 사진의 존재를 견딜 수 가 없다. 그는 김규진을 불러 반드시 그 사진을 없앨 것을 명한다.


고종의 승하 후 자신의 사진이 황제에게 누가 된 것을 견디지 못한 김규진은 그의 아들 김석연을 불러 황제의 밀지를 이을 것을 명한다. 이후 연극은 황제의 밀지를 지키기 위해 4대 걸쳐 고군분투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김규진의 아들 김석연, 김석연의 아들 김만우, 김만우의 아들 김기태는 각기 일제강점기, 6.25전쟁, 개발독재와 민주화시대 속에서 황제의 유언이자 아비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감내한다. 그들은 결국 사진을 없애는데 성공했을까.


출처 : 예술의 전당



황제와 아비의 유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 관대, 그들 각자는 자신들의 행복을 저버리면서 까지 그 유지를 지키려 한 것인가. 그것이 그저 허망한 명분인지 아니면 결코 잃어서는 안 되는 명예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지금을 사는 우리 세대에게 과연 이런 선택들이 이해될지 궁금했고, 남성 중심적인 서사 속에서 여성들이 읽히는 방식에도 의문이 생겼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들의 고난과 간절함이 그냥 흩어지지 않고 어딘가에 가 닿았으면 하고 마음 한편으로 응원하기도 했다. 어떻게 이들 가족은 이토록 하나의 사진에 자신들의 삶을 걸 수 있었던 걸까.


극 중의 서구의 대사大使들이 조롱하며 말했다. 실제 인물과 사진은 같은 것이 아니고 각기 주체와 객체일 뿐이므로 객체를 조롱한다 한들 주체가 상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말처럼 현실의 삶에서 주체와 객체가 명확히 구분되는 일은 좀처럼 없다. 사진은 더욱 그러하다. 그 당시의 시간과 주체에 빛을 부여하여 순간을 포착한다. 그것은 객체를 통해 주체를 보존하려는 것이지 분리하려는 것이 아니다. 주체와 객체를 분리하지 못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라는 그들의 지적은 틀렸다. 우리는 객체로서 주체를 표현하고 기록하므로 기억되고 존재한다.


이강백 작가는 김규진 이라는 사진사가 110년 전에 찍었다는 고종황제의 사진과 미사절단의 방문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고종황제가 그 사진을 없애길 원했을 것이라 상상한다. 황제의 사진이 식민지 시대의 민족적 경험을 상징하는 객체로서, 그 사진이 사라질 때 비로소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임을 기대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진을 없앤다 한들 그 사건이 사라지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나 주체의 뜻과 마음을 담은 객체로서의 사진은 그것으로 존재의 의미가 부여된다. 그들은 그래서 그토록 사진에 그들의 삶을 담아내려 한 것일지 모르겠다.


출처 : 예술의 전당


연극의 무대 자체도 하나의 어둠상자로 형상화 되어 있다. 그 상자에 갇힌 이들이 주체이자 객체로서 그들의 의지를 인화하여 관객에게 전달한다. 프로그램 북의 연출일기도 인상적이었다. 연출과 배우들이 작가의 뜻을 무대에 오롯이 전달하기 위해, 그들의 발성과 말투는 물론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가장 연극적인 방법에 대하여, 장면전환과 그 연결성에 대하여, 공간, 음향과 영상, 배우들이 만드는 긴장감과 리듬감, 침묵과 정지의 의미, 무엇보다 극이 자아내는 의심과 그것을 해소하는 방식이 관객이 이해될 만한 것인지, 이 모든 것을 무대 위에 어떻게 납득할만하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들을 읽자니 연극이 더 새롭게 다가왔다.


하나의 뜻을 품고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아온 가족의 이야기를,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온 작가와 연출, 배우와 스텝, 그리고 관객이 각자의 눈으로 읽어낸다. 같은 시대에 얼마나 다양한 시간과 공기가 존재하는지, 누군가에게는 깊은 공감과 울림을, 누군가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선택으로 기억된다. 때로 이해가 되지 않을지라도 그 이해되지 않음 자체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에 안심하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