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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Nov 22. 2018

더 나은 삶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윤미현 작, 최용훈 연출, 연극<텍사스 고모>

식민지 시절과 전쟁은 한국을 가난에 몰아넣었다. 그 시절을 통과하는 동안 많은 이들이 가난으로, 그리고 가난이 낳은 슬픔과 고통으로 몸부림쳤다.


괴산의 춘미도 그러했다. 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학교는커녕 먹고사는 일이 급했던 가족들은 춘미를 마을의 식육점으로 보낸다. 춘미를 먹이고 재우고 학교 보내준다는 명목이었지만 실상은 식육점 일을 돕고 가사를 돌보는 식모에 다름 아니었다. 월급은 당연히 없었고 몇 년이 지나고 학교 이야기를 꺼낼 때는 뺨을 얻어맞았다. 그때 그녀에게 미군인 리처드가 다가온다. 텍사스로 같이 가자는 그의 달콤하고 상냥한 말에, 그녀는 어쩌면 자기의 삶이 조금 더 나아질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텍사스에는 수영장이 딸린 집이 있고, 자신은 거기서 물놀이 하며 우아하게 모닝커피를 마시는 상상을. 춘미는 진숙이 건 낸 고추장을 들고 텍사스로 떠난다.


@국립극단


텍사스. 꿈의 땅일 줄 알았던 그곳에서 만난 건 끝도 없이 이어진 옥수수밭과 목화밭. 그녀는 몸의 수분을 다 빼앗아갈 것 같은 텍사스의 땡볕과 마른 공기를 참아가며 옥수수를 꺽고 목화를 딴다. 리처드는 가끔 들를 뿐, 함께 일하는 멕시코 아주머니는 그가 멕시코인일지 모른다 한다. 일하는 동안 받는 삯도 모두 리처드가 가져갔다. 더 나은 삶을 쫓아온 땅은 그저 이억만리 이국으로 장소만 바뀌었을 뿐 그녀의 삶은 변함이 없다. 운 좋게 다시 한국에 돌아온 그녀는 양말 공장에 다니며 생계를 이어간다. 한국에 온지 30년이 넘었건만 그녀는 오빠와 조카, 진숙에게 여전히 텍사스에 있는 체 하며, 미국 캔디와 말린 과일을 보낸다. 오빠와 진숙은 짐짓 모른 체 하며 고향에 돌아온 춘미를 맞이한다.


세월이 흐르니 마치 춘미가 괴산을 떠나 텍사스에 갔던 것처럼, 고향땅을 떠나 멀리 괴산으로 시집온 이국의 여성들이 생겨난다. 그들은 캄보디아에서, 부탄에서, 키르키스탄으로부터 왔다. 자신을 식육점에 보낸 오빠는 부인과 이혼한지 오래다. 그는 자신과의 부부생활은 물론이고 쌓여있는 농사일과 집안일, 그리고 늙어 병들 자신을 돌보게 할 요량으로 키르키스탄의 19세 소녀를 2천만 원을 들여 데려온다. 한국으로 유학간다는 마음으로 그를 따라온 소녀는 그녀에게 주어진 현실이 괴롭다. 춘미의 조카는 더 곤란하다. 겨우 3살 많은 이국의 여인을 엄마라고 해야 하는 것도, 그저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도 이런 일이 가능한지 의아하다. 동네의 아이들, 이국의 여인을 엄마로 둔 친구들, 그들의 엄마가 겪는 모질고 거친 대우는 그들을 혼란스럽고 외롭게 만든다. 이국의 엄마들은 더러는 도망하고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또는 어떻게든 버텨간다. 연극은 텍사스의 한국인 고모와 괴산의 키르키스탄인 소녀를 병치하며 막을 내린다.


@국립극단


주위를 둘러보면 대개 미국에 한두 명 즈음의 친척은 살고 있는 듯 보인다. 꼭 춘미가 아니더라도 더 나은 삶을 꿈꾸고 건너간 먼 친척들. 또는 우리의 가족들이 있다. 삶의 터전을 새로 선택하게 된 배경은 각기 다르지만 모두가 바라는 것은 더 나은 삶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더 나은 삶이란 무얼까. 가난으로 부터의 탈출. 그리고 좀 더 인간다운 삶. 극 중 춘미 씨는 일찍이 텍사스에서 돌아왔으나 그 사실을 30년 넘게 숨긴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그 역시 인간다운 삶과 관계하는 것 같다. 미국을 선택한 것에 대한 보상과 결과를 스스로 납득하기 힘든 중년의 춘미는 미국에서의 삶을 종결지어 버리는 것이 두려웠을지 모른다.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 만난 이국의 여인들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발견하고, 그들에게 모질기만 한 가족과 이웃들이 야속하게 여겨진다. 가난으로 모질어진 이들은 타인의 고생에 무감각하다. 먹고 사는 일이 주는 고통은 그저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가난은 인간을 지우고 그저 가난으로 자리하게 할 뿐이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더 나은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미국행을 선택한 자신이 혹 허영을 부린 건 아닌지 자문하는 춘미의 모습이다. 행복을 꿈꾸는 일은 검열될 수 없다. 더 나은 삶에 대한 갈망은 판단 받을 수 없다. 자신의 형편과 자격을 따라 스스로가 타협을 할 수 밖에 없지만 그 소망이 허영이 되는 일은 너무도 슬프다.


연극에서처럼 모든 이주여성들이 고통 속에 사는 것은 아닐 테고 모든 이주여성의 가족이 모진 것도 아닐 테지만, 적어도 더 나은 삶을 위한 이들의 선택이 그저 더 존중받았으면, 적어도 이 땅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는 우리는 조금 더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연극을 보며 생각했다.




* 윤미현 작, 최용훈 연출, 연극<텍사스 고모>는 18.11.2-25 동안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만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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