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롱 Oct 21. 2018

누군가를 알지 못한다는 공포에 대하여

아가사 크리스티 원작, 정세호 연출, 연극<쥐덫>

세상에 두려운 일은 많고 많지만, 한 공간에 있는 사람이, 혹은 가장 친밀하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 사실은 내가 전혀 모르는 이력과 경험,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만큼 공포스러운 순간은 없을 것 같다.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의 51번째 작품으로, 런던에서 1952년부터 단 한번도 쉬지 않고 공연되었다는 연극<쥐덫>이, 충무로의 오래된 극장 중의 하나인 명보극장 무대에 올랐다.     


@극단 제3무대


몽크스웰 게스트 하우스. 적막한 가운데, 라디오에서는 괴한에 의해 살해당한 여인 모린 라이언과 그녀를 죽인 살인범을 찾고 있다는 런던 경시청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결혼한 지 갓 1년이 된 신혼부부 자일즈와 몰리는 숙모로부터 고택을 물려받고 게스트하우스를 연다. 게스트 하우스 오픈 첫 날, 폭설이 쏟아지고 첫 예약 손님들이 하나둘 도착한다. 정신이 조금 이상한 듯 보이는 젊은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 성질이 보통은 아닐 것 같은 깐깐한 중년의 보일 부인, 속을 알 수 없는 메카프 소령, 해외에 거주하며 런던의 교외를 보고 싶어 왔다는 중성적인 외모의 미스 케이스웰이 그들이다. 한밤중에 느닷없이 찾아온 여행객 파라비치니는 이상한 화장과 기괴한 행동을 보인다.     


눈 폭풍으로 게스트 하우스에 고립된 그들은 저마다 비밀이 있어 보인다. 자일즈와 몰리는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해하다가 금 새 방값만 잘 지불하면 그만이라며 의심을 거둔다. 그리고 갑자기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런던 경시청에서 사건 조사차 파견한 트로터 형사가 스키를 타고 곧 도착한다는 사실을 알린다. 라디오에서 알리던 살인사건의 범인이 실은 2건의 살인사건을 더 예고하고 있으며, 그 장소로 이곳 몽크스웰 하우스를 지적했다고 전하는 트로터 형사의 말에 투숙객들은 몹시 예민해진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을 조사하는 트로터 형사는 모린 라이언이 실은 이 동네에서 벌어진 아동학대와 살인으로 복역하다 풀려난 여인임을 밝히며 투숙객들과 그 사건의 상관관계를 밝히고자 한다. 단서로 제시된 음산하고 비극적인 영국 전래동요 ‘눈먼 생쥐 세 마리’의 남은 두 마리 생쥐가 곧 죽을 거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벌어진 첫 번째 살인사건.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게 되고, 저택의 주인인 신혼부부마저도 서로를 속이고 런던에 다녀온 것이 밝혀지며 의심은 더욱 커져간다. 그렇게 하나씩 드러나는 진실.     


고립된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한 공간에 같이 있는 자들이 도대체 어떤 이들인지 알 수 없다는 것, 게다가 그 중에 살인범이 있고, 이중 누군가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 주는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슬픈 이야기.     


@극단 제3무대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누군가와 오래오래 시간을 함께 했다면 그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혹은 상대와 혈연, 학연, 지연으로 얽혀있으면 그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 사람에 대한 모든 정보를 파악하고 있다면 상대를 안다고 할 수 있으며 나는 안전한 것인가.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물어본다. 나는 그럼 타인에게 어떤 이름으로 읽힐까. 노동자의 딸, 가정사들, 무슨 공부를 했고, 어떤 아픔이 있는지, 그 모든 것이 나를 말하는 이름일까. 그래서 나는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나는 안전한 사람인가.      


누군가가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것, 그런 순간들이 늘어나서, 그럼 삶이, 그런 사람이 되는 것 같다. 모두가 복수를 용인하는 그런 순간마저도 복수를 멈추는 그런 선택들,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하는 이들이 많이 모인 사회,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해를 거듭할수록 깊이 느낀다.     


우리는 누구도 제대로 알 수 없다, 무엇도 누군가를 아는 일에 완전한 담보가 되지 못한다. 그 알지 못함이 우리가 서 있는 공간을 공포로 물들이고 우리의 삶을 집어삼킨다면, 그것은 안전이라기보다는 고통일 것이다. 온라인과 지면을 떠도는 적대감의 말들, 알지 못하기 때문에, 거짓된 이야기들로, 혹은 너무도 치우친 사실들로 인해 확산된 공포와 공격적인 모습들이, 내게는 그 알지 못한다는 사실 자체보다 더 공포스러워서, 오늘의 이 연극을 그런 공포로 읽게 되고 말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