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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Aug 06. 2019

디스토피아에서 우리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 <칠드런 오브 맨(2006)>

※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2027년. 더 이상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지 않는 미래, 세계에서 가장 어린 생명으로 모두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청년이 사망했다는 보도에 시선이 사로잡힌 사람들, 이들 사이로 테오가 비집고 들어온다, 한동안 망연하게 뉴스를 지켜보다 커피를 사들고 나온 테오는 너무나 익숙하게 품속에서 술을 꺼내어 커피에 들이붓는다. 굉음과 함께 상점은 폭발하고 떨어져 나간 자신의 한쪽 팔을 들고 고함치며 나오는 사람.


영화는 이렇게 압축적으로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설명하며 시작한다. 테러와 폭력이 일상이 된 세계, 정부의 기능을 상실한 국가들, 유일하게 군대를 유지하고 있는 영국에는 불법 이민자들이 넘쳐난다. 마치 동물을 다루듯 커다란 철창에 갇혀 강제 이주되는 이민자들.


20년 만에 찾아온 전 부인 줄리언은 테오에게 불법 이민자 소녀 키가 무사히 휴먼 프로젝트에 당도할 수 있도록 그의 인맥을 통해 통행권을 확보해 달라 부탁한다. 망설이던 테오는 이를 수락하고 그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적과 마주한다, 그들은 무사히 휴먼 프로젝트에 도달했을까.


출처 : Daum 영화

     




테오도르는 고대 그리스어로 신θεός의 선물δώρον로 해석된다. 줄리언은 키에게 테오만을 의지하라 한다. 키를 배웅하며 테오는 장난스레 줄리언으로부터 공을 넘겨받는데, 키의 가디언이 줄리언에서 테오로 넘어감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장면 같다. 테오는 극에서 줄곧 발을 찔리고 피 흘리며 맨발인 채로 뛰어다닌다. 마치 연출자가 일부러 그의 신을 벗겨두는 것 같다. 그의 수난은 그 자신을 위해 겪는 것이 아니다. 그는 키의 아이를 보호하는 일을 자신이 해야만 할 것 같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일로 받아들인다.


극 중에서 테오도르의 말하기 태도가 꽤나 흥미롭다. 테오가 통행권을 얻으러 친척의 집을 방문할 때, 또는 줄리언의 무리에게서 겁박을 당할 때에 만난 이들은 그에게 강압적으로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소리를 치는데, 그때마다 테오는 그들에게, 이런 식으로 응대한다.


알겠는데, 입 냄새 좀...


재미있는 것은 그런 그의 공격 앞에, 사람들은 속수무책이다. 위협하다 말고 무안해하거나 자기 입냄새를 맡아보는 식이다. 결국에 그들의 모든 태도는 인간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어떤 위협도 그 위협을 가하는 인간을 넘지는 못할거라는 연출의 유머로 읽힌다. 그것은 이를 보고 있는 신의 관점을 테오를 통해 암시하는 것 같다. 때문에 그런 위협에서 테오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 물론 위트를 접어두어야 할 위험한 상황에서는 피해야 하는 방법(후훗)


 

출처 : Daum 영화

    

영화 속에서 종교적 코드는 계속해서 등장한다. 테오는 키에게 아이의 아빠가 누구냐고 묻는데, 키의 대답이 재미있다. 자신은 성령으로 잉태된 건데, 몰랐느냐는 반문. 잠깐의 정적, 농담이라고 말했지만, 그 순간, 믿지 못하겠는 의심과 믿고 싶은 마음이 같이 움튼다. 키는 이 아이가 실은 누구의 아이인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오로지 혼자 살아가는 키에게 아무도 엄마의 일을, 출산의 일에 대해 알려준 적이 없다. 혼자인 여성이 성적으로 착취되기는 또 얼마나 쉬운가. 처음엔 임신인지 조차 알지 못해, 죽을병에 걸린 줄 알고 두려웠다는 고백. 영화는 아이의 아버지를 상정하지 않는다. 이는 앞으로 희망이 될 아이에 대해 자신의 지분을 요구할 남성성을 잘라내고 오로지 모태를 빌려 태어난 사람의 아이로서 세상에 나게 한다. 키의 아이가 태어나는 곳은 마치 예수가 태어났던 마구간과 같이 누추하다. 나사렛의 목수의 아이로 태어난 예수처럼, 난민으로, 흑인으로 마구간에서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 채 태어난 아이. 키는 아이의 이름을 프롤리에서 바주카로, 바주카에서 딜런으로 바꾼다. 마치 노동자의 계급에서 전쟁의 이름을 가졌다가 신념으로 이동한 우리의 역사를 함축한 것 같이.(딜런은 이미 목숨을 잃은 줄리언과 테오의 아이, 신념의 아이라 불렸다는 그들 아이의 이름이다)


휴먼 프로젝트의 정체는 모호하다. 휴먼 프로젝트라는 것이 정말 존재할까 라고 사람들은 묻는다. 줄리언은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프로젝트의 미러(mirror)로서 키에게 그 방향을 안내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가야 하는 것.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먼저 보고 우리를 이끄는 이들이 언제나 있어 왔다. 먼저 본 자들. 우리는 때때로 내게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아서 믿을 수 있기도 하고, 슬프게도 그 외에는 희망이 없으므로 믿지 않을 수 없을 때도 있는 것 같다. 키와 아이는 테오와 생각지 못한 크고 작은 도움들로 미래(tomorrow)호를 만난다. 미래호는 마치 끝장나버린 세상에서 정착하지 못해 표류할 수밖에 없는 노아의 방주를 떠올리게 한다. 그들이 정말 그 배에 올랐을지 우리는 알수 없다. 다만 감독은 우리 각자에게 그 엔딩을 맡긴다.

 

    

출처 : Daum 영화

     

테오 이외에도, 어쩌면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아이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애쓴 많은 조력자들이 있었다. 조산원인 미리암(모세를 구했던 누이의 이름)은 키가 위기를 모면하도록 자신이 스스로 위험에 처했고, 테오의 오랜 친구 만평가 제스퍼와 그의 기자 아내도 그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다. 그리고 마리카. 그녀가 온 힘을 다해서 그들을 돕지 않았더라면 키와 그녀의 아이는 휴먼 프로젝트에 닿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중얼거리던 에스파뇰이 궁금하다. 아무래도 기도를 하고 있는 듯,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그녀의 절박함이, 인류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끌어와 간절해하는 그 마음이 마음을 울린다.  

     

내내 우리를 불편하게 했던 것은 국가가 난민들을 대하는 태도 때문. 국가의 개념이라는 것이 이민자들에게 불법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구실인 건 아닌지, 국가에게 있어 균형이란 무엇인지. 2006년의 영화이지만, 난민의 문제가 바로 현안이 된, 지금, 자국민이란 무엇을 지칭하는지. 누군가를 난민으로 둘지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과연 우리에게 있는 것인지. 다음 세대를 잃은 영화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가 지금 우리에게 도래한다면, 다음 세대 없이 미래를 구할 수는 없는 건지. 현재의 디스토피아적 조건이, 전쟁의 빌미가 되고, 기득권을 유지하는 방식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알지 못하는 두려움으로 인해 내 안에 뿌리내린 적대감의 정체를 아직도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야 할 미래를 우리가 선택해야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해야 함만은 명확하다.


출처 : Daum 영화


칸트는 무조건적인 환대를 요구했다. 우리는 친절함을 통해 그들의 타자성을 인정하고 환영할 수 있다고, 그때에 온전히 우리도 자유로워진다고 말이다. 물론 그들이 손님으로 머무를 권리와 정착하고 한 공동체가 되는 일에는 더 많은 에너지와 그 낯섦과의 고단하고 지난한 과정이 요구될 것이다. 그리고 그 끝 역시 예측할 수 없다. 그럼에도. 니체의 말처럼, 낯선 것에 대한 우리의 선의와 인내심과 공평함과 온유함이 받게 될, 타자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만나기를 위해 우리의 이성을 작동해야 하지 않느냐고,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두려워하는 건 하나뿐이다. 미지의 세계로 뛰어드는 것.
그러나 그것이 두려움을 벗어나는 진짜 방법이다.

                                                                                                                                

헤르만 헤세, <밤의 사색> 중






* 이상은 '봉씨네'의 멤버들이 14번째 함께 만나 영화를 보고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것입니다. 자원봉사 이음의 소모임 봉씨네는 자원봉사Bongsa와 영화cine의 합성어로, 자원봉사 현장의 실무자들이 영화를 함께 보고 깊이 읽어보는 영화 해석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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