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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Apr 30. 2023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아니 에르노 장편소설, 김선희 옮김, 도서출판 열림원, 2021

책 표지를 덮고서


읽는 내내 이렇게 솔직하고 여과 없는 글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움과 안도를 느낀다. 이토록 솔직하고 투명한 감정의 기록이라니.

책의 첫 장에 이런 글이 적혀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뒤바뀌였다. 어머니가 나의 어린 딸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어머니가 될 수는 없다.


내가 태어나던 해인 1983년에 시작한 일기 형식의 글은 3년 뒤인 1986년 4월 28일에 마친다. 공교롭게도 내 생일에 글이 끝난 것과 생일을 막 지난 오늘, 소설의 남은 부분을 마저 읽고 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선물 같다. 아니 에르노의 두 아들도 그녀의 어머니의 도움으로 키웠다는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하는 엄마들의 육아는 그들 자신의 엄마에게 빚져있다. 육아를 도와주는 나의 엄마가 주말 외출을 나가고, 신랑이 아기를 재우는 사이에 나는 부랴부랴 책을 읽고 노트북을 켠다. 모처럼 평안한 시간, 어른으로서의 시간을 사는 순간.


어제 생일엔 가족들과 모여 맛있는 식사도 하고 친구들의 축하메시지와 선물도 가득 받았지만, 정작 무심한 신랑의 태도가 못내 섭섭해서 밤잠을 설칠 지경이었다.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하긴 하는지, 내 수고를 알아주긴 하는지, 가장 나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이가 나를 모른 척할 때의 외로움이 나를 감싸서 눈물이 찔끔 났다. 자고 일어나니 마음이 좀 누그러들었고, 신랑에게 다가가 꼭 안기며, 나를 더 사랑해줘 라고 말했다. 그러자 조금은 당황한 신랑은 우리 집 보물, 나는 자기 없으면 안돼 하며 다시 꼭 안아주는데, 어제의 섭섭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화내고 다그치기보다, 서로를 안고 사랑을 구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구나 싶었다. 살아있다는 건 어루만지는 손길을 받는다는 것, 접촉한다는 것이라고 했던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사설은 이쯤에서 마치고. ㅋ


치매에 걸려 자신의 딸인 양 돌봄과 사랑이 필요한 어머니를 대하는 딸 아니 에르노의 문병일기인 이 글 속에는, 그저 내가 사랑을 갈구하는 대상이었던 엄마의 존재가 나로부터 사랑과 돌봄을 구할 때의 그 복잡 미묘한 감정이 솔직하게 파편처럼 툭툭 존재한다.


어머니가 가끔 제정신이 돌아올 때 하는 말들과 태도로부터 가장 엄마다운 모습을 다시 읽어낼 때의 기쁨과  전혀 그녀 자신 같지 않아 진,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어린아이가 된 엄마를 대할 때, 자기 욕구도 없이 스스로를 방어할 공격성마저 잃어버린 어머니를 미워하는 그런 자신의 소름 끼치는 폭력성 앞에, 작가의 표현대로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고 애써 외면하려는 자신의 잔인성 앞에 느끼는 고통과 죄책감이 글 곳곳에 그대로 드러난다.


"난 네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다했다. 때문에 너는 한층 더 불행했을 거다."

라는 어머니의 독백이, 그녀가 온전한 정신으로 한 것일지, 머릿속의 흩어진 상념들을 내뱉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그녀의 독백이 몹시도 와닿는다. 모든 부모들이 그들 자녀를 위해서 내린 그 수많은 판단과 실행이 모두 그들 자녀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니니까. 오히려 그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하는 애정이 아이들을 괴롭게 하기도 하니까.


나 자신이 엄마가 되었지만 40년을 자식으로만 살아온 나는 여전히 딸의 롤이 내 삶에 더 깊이 박혀있다. 엄마가 내게 가르친 모든 것들, 그 당시의 관습대로, 엄마가 배운 대로 내게 알게 하고자 노력했던 그 모든 것들, 그렇게 습관을 들인 것들이 나의 일부를 이루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기도 하다. 삶의 순간순간 엄마가 내게 했던 말들이 불현듯 떠오른다. 엄마만의 어투로 엄마가 사용하던 그 관용의 문장들이 부웅 떠오르곤 한다. 그저 잔소리라 여겼던 반복된 말들이 어느새 나의 선택을 지탱하는 기준이 되었다는 게 신기하다.


학교에서, 미디어에서 엄마라면 응당 이래야 한다고, 여자라면 응당 이래야 한다고 내게 스며든 그런 불합리한 이상들이 어린 시절의 나로 하여금 때때로, 엄마가 여자로서, 한 사람으로서 기쁨에 대하여, 행복에 대하여 욕망하는 것을, 자식의 삶 보다 때때로 자신의 삶을 우선하고 싶어 하는 순간이 있을 수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게 했던 것 같다. 이전에 미처 감히 떠올려보지도 못했던 엄마의 욕망에 대한 생각을 요사이 하게 되며, 엄마에 대한 순수한 동정-소설의 표현이기도-이 생긴다. 때때로 나 보다 나이가 훌쩍 많은 엄마가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어린아이가 될 때-꼭 치매가 아니더라도-그 감정을 감당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나는 그저 나의 엄마를 좀 더 온전히 이해하고 싶다고 느끼지만 그것은 영영 불가능한 일인 것 만 같다.


아니 에르노의 글은 나로 하여금, 조금 더 솔직하게 내 감정을 글로 옮기도록 독려한다. 내가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그저 들춰보지 않으려 먼지가 쌓이기만을 기다려온 그 감정들에 대해서. 이를테면, 내가 사랑을 갈구하는 대상이 사랑에 목말라 있다면,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자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어젯밤의 그 작은 섭섭함에도 눈물이 삐져나온 나로선, 사랑에 목마른 엄마가 그토록 자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게 새삼 고맙고 또 마음이 아프다. 충분하게 사랑받고 사는 이가 이 세계에 얼마나 될까 궁금하기도 하다. 다들 충분한 사랑 속에 살고 있는지.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기록함으로써 고통을 끌어내고 고갈시켜 지쳐버린 고통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하고 싶어 글을 쓴다는 작가의 말이 가슴 아프다. 그? 시절, 엄마는 내 책상 정리를 다신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여기저기 나 스스로 조차도 알 수 없어서 신음하던 나의 감정을 적어놓은 메모들을, 딸의 책상을 정리하다 우연히 발견해 버린 엄마는 그 감정에 혹여 자신이 기여했을까 봐, 자신이 어찌해 줄 수 없는 딸의 감정을 마주하는 일에 겁을 냈다.


아니 어머니의 마지막 메모처럼, 이 책의 제목처럼,

우린 각자 스스로의 밤을 홀로 헤치고 나와야 한다. 그 한 밤 중의 어둠과 고독을,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는 것, 나에게만 꼭 맞는 자신의 십자가, 그 여정은 사는 동안 절대 끝나지 않는, 엔딩이 없는 연속극이다.


아키비스트의 정체성을 가진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 중 하나는


그리고 전 생애란 한갓 인생의 다양한 정경이 첩첩이 포개진 하나의 축적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과, 생의 노래가 축적된 것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도 그 여정은 다양한 정경들로, 때로는 익숙하고 포근하게, 때때로 찬란하게, 또 예리하고 차갑게 포개어진다. 기록이란 어떤 정경을 들여다보고 싶은지를 아는 것이자 그 정경을 다시 들여다볼 용기이기도 하다.  그 정경들로 우리는 어떤 노래를 부를 것인가. 꼭 서사적 아카이빙의 비유 같다.


아니의 어머니는 그렇게 어느 날 죽음을 맞이한다. 이 문병의 기록을 작가는 다시 들여다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리고 그 감정을 다시 쓰는 일이 불가능해서 고쳐 쓰지 않았다고 했다. 고통의 잔재로서 보아주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다. 이것이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인 것은, 오히려 그녀를 더 자유하게, 더 솔직하게 하는 장치이지 않을까 싶은데, 그 날것의 감정을 제삼자로서 들여다보게 되는 장치로서, 소설은 좀 더 솔직해져도 좋은 공간이 되어 주는 것 같다.


무엇보다 번역이 섬세해서 좋았고 표지 뒷면의 편혜영 소설가의 추천의 글도 너무 적확해서 마음에 들어왔다.


작가는 어머니와 화해하려 했지만 끝내 화해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어떠한 상황에서도, 어떠한 노력을 한다 해도 내가 나의 어머니의 어머니가 될 수 없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숙명 같다. 그것은 끝내 화해할 수 없는 마음이 아린 십자가. 그저 우리 각자에게는 모두 각자의 엄마가 필요할 뿐이다.


아침에 시작한 글을 자정이 지나서야 마무리하게 된다. 아가의 밥을 먹이고, 나의 허기를 채우고, 쓸고 닦고 하다 보니 하루가 간다. 모두가 잠든 밤, 글을 마무리하고 싶어 나는 잠들지 못하고 있다.


표지 뒷면에 실린 편혜영 소설가의 추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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