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큰 어른의 어디에도 못 꺼내는 이야기_두 번째: 계속 일만 하고
“휴가를 내도, 할 게 없어요.”
너도 좀 쉬라는 선배의 말에 대한 답이었다.
‘허허…’ 선배는 몸을 뒤로 젖히며 웃었다. 그리고는
“삶이 건조해서 그래.”
‘그럴지도’ 고개만 몇 번 주억거리는데 말이 이어졌다.
“취미든, 사람이든 정 붙일 데를 만들어.”
바람이 새듯, 난 웃었다. “기력이 없어요, 선배.”
정 붙이는 건 어떻게 하는 것이었더라.
예전에는 척척,
(‘척척’은 좀 안 어울리는 표현인가.)
잘도 정을 붙였더랬다.
음식이 맛있다 싶으면 단골집이 되어 버렸고,
다정한 책이나 영화를 만나면 눈물을 펑펑 쏟았고,
처음 서핑을 했을 때는 갓 태어난 듯 심장이 뛰는 게 느껴졌다.
새로운 여행지에 가면 그냥 사랑에 빠져 버렸으며,
(에펠 꼭대기에서 본 파리 야경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다.
삿포로의 하얀 눈 더미도, 아기자기한 지붕도. 지붕의 눈이 녹아 햇빛에 닿으면 그렇게 눈이 부셨다.
어느 바에서 내려다본 도쿄역의 석양도. 기차역 아래 사람이 북적이던 작은 선술집도, 비에 젖은 밤거리도.
엄마의 얼굴에서 ‘행복’의 정의를 읽었던 방콕의 땡볕도.)
맘속에 누군가 들어오면,
그 화학적 현상의 원리조차 헤아리지 못하면서
덥석, 겁도 없이 맘을 잘도 내줬다.
그래서 그런 거야? 내가 가진 정의 총량을 이미 다 써버린 건가?
요즘은 도통 새로운 것을, 새로운 일을, 새로운 사람을 좇기가 어렵다. 생각만으로도 ‘일요일 저녁’ 같은 기분이랄까.
괜스레 힘이 빠지고 서운해지고 쓸쓸해진다.
잠깐, 뭐야, 그럼.
내 삶은 계속 건조하고, 휴가를 써도 할 게 없어서 계속 일만 하고, 계속 건조하고, 계속 일만 하고 …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