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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힐 Oct 07. 2024

다 큰 줄 알았지

덜 큰 어른의 어디에도 못 꺼내는 이야기_첫 번째: 서른다섯 살의 외로움

고작 월요일이다. 주말 이틀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아내겠다는 듯, 일터는 날 몰아세웠다. 내내 정수리까지 날이 선 채, 날 집어삼키겠다고 달려드는 업무를‥ 업무들을 처리했다. 몸 전체가 하나의 건전지라면 말이야. 남은 전력이 불과 발목 언저리쯤이라 느껴졌을 때, 도망치듯 사무실에서 빠져나왔어. 어느새 저녁 8시를 넘겼더라.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날 제외한 다른 일행은 다 모여있다고 했다. 언제 오냐고.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서 10분. 버스를 타고 30분. 버스에서 내려 약속 장소인 고깃집까지 다시 걸어서 10분. 9시나 돼야 도착할 것 같았다. 조금 늦는다고 말은 해두었지만. 문제는 내게 더 남은 힘이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 남은 힘으로, 그들을 만나 반가운 듯 인사하고, 늦어서 미안하다 사과하고, 너스레를 떨고, 그들이 나누던 이야기가 무척이나 궁금하다는 듯 눈을 반짝이고, 술잔을 부딪치고, 이야기에 집중하고, 적절히 반응하고. 


‘할 수 있을까?’


아니.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들을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아니었지만. 성심껏 둘러대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오늘은 이만 집으로 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있잖아, 내가, 너무, 미안해’


결국 집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 택시는 15분쯤 부지런히 달려 나를 집 앞에 내려놨다. 터덜터덜. ‘터덜터덜’이라는 말은 누가 만들었을까. 이렇게 찰떡같다니. 터덜터덜 집으로 들어왔다. 암흑이었다.


‘왜… 왜 이런 기분이 들지?’


음, 그러니까 오늘 이러저러했다고, 얼마나 고단했다고, 힘이 들었다고, 잠깐은 견딜 수 없을 것도 같았다고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누구에게? 누구에게 할 수 있는데.’

 “할 수 없다.”     


없다. 누구도.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니까 연애를 해. 오 이런, 친구들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연애를…     


‘있잖아, 내가, 오늘, 이러저러해서, 얼마나 고단했는지. 힘들었어. 견딜 수 없을 것 같기도. 있잖아, 내 말 듣고 있어? 공감돼? 안 돼? 너 T야?’     


음. 이러려고 연애할 수는 없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그런 나는, 보채는 나는, 칭얼거리는 나는 나부터도 싫을 것 같아서. 나의 연인은 살풀이 대상이 아니다.


‘성숙하게 연애할 수 있을 때, 다시 해야지.’


그런데, 그렇게 하긴 할 텐데. 그때까지는 어떡해?


다정한 친구 몇의 연락처를 뒤적이다가 폐가 될까, 결국 전화기를 내려놓는 일을 몇 번이나 더 되풀이해야 해?

     

오늘 밤에는 SG워너비나 듣다 잠들어야겠다. (청승에는 그만한 게 없거든.)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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