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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azing Grace YJ Nov 20. 2023

뉴욕은 잘못이 없다


 

20대의 나에게 뉴욕은 꿈의 도시였다.

기회가 닿는다면 언젠가 뉴욕에서 꼭 한번 살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스물아홉이 되던 해 나는 뉴욕으로 어학연수를 갔다.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 도착해 출국장을 나섰을 때는 내가 뉴욕에 온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확인한 건 택시를 타고 허드슨강 너머로 보이는 맨해튼을 마주했을 때였다.


‘나는 지금 뉴욕에 있구나!’


나는 뉴욕과 사랑에 빠졌다. 내가 알고 있던 뉴욕은 뉴욕주, 뉴욕시 맨해튼이었다. 하지만 내가 지내던 곳은 맨해튼이 아닌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얼마쯤 올라가야 하는 먼 거리였지만 사랑에 빠진 이에게 거리 따윈 상관없었다. 맨해튼으로 가는 메트로 노스 열차는 설렘이 가득한 날 싣고 42번가 그랜드센트럴로 데려갔다. 맨해튼의 마천루, 빠르게 걸어 다니는 뉴요커, 곳곳을 뛰는 조거들, 빅애플 속에 수많은 관광객 그리고 나! 활기찬 도시의 에너지가 내게 다가왔다. 지나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하고 그들과 일상을 나누고 보니 나도 뉴욕의 일부분이 된 것 같았다. 하루하루가 너무 즐겁고 신났다. 지치지 않는 젊음과 넘치는 사랑 때문에 가능했던 일인 것 같았다. 그 때문에 나는 단단히 착각했다.


‘그래, 뉴욕도 날 사랑하는 게 틀림없어!’

20대의 호기로운 자신감이었다.


‘내 사랑이 짝사랑이구나’

깨달은 건 30대 중반쯤이다. 30대의 어느 겨울, 출장으로 뉴욕을 다시 찾게 되었다. 20대 때 뉴욕에서 만난 친구들은 뉴욕이 꿈의 도시가 아니라고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유학 시절이 지나고 진짜 삶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했다. 그때는 친구들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들과 말이 통한 다고 생각했는데 통하지 않았고, 그들이 나를 향해 미소 짓고 있는 줄 알았지만, 자세히 보게 되었을 때 ‘너 내 말 알아듣겠니?’ 하는 냉소에 가까웠다. 자신감도 잃어버린 그때 업무 일정마저 꼬여버렸다. 하룻밤 머물 호텔조차 구하지 못해 사무실 앞 대로 한복판에 멍하니 서 있었다. 나에게만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제각기 그들 갈 길을 재촉하여 바삐 움직였다.


‘나는 이방인이구나. 다들 이 도시에 돌아갈 곳이 있는데, 나는 돌아갈 곳이 없구나.’


날카로운 바람처럼 사람들의 눈빛이 차갑게 바뀌었다. 화려하게 반짝이던 도시가 잿빛 도시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콩깍지가 벗겨지는 순간, 활기차고 당당해 보였던 뉴요커들의 발걸음에 고단함이 묻어있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치열한 삶을 살아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걸음이 빨라졌다는 걸, 커피 앤 도넛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멋짐은 시간에 쫓겨 여유롭게 식사할 시간조차 없어서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동경했던 삶의 현장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 지나가는 멋쟁이 뉴요커의 구두 굽이 유난히 닳아 보였다.


난 이곳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 이 도시엔 내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아프고 허전했다. 늘 돌아가기 아쉬워하며 다음 일정을 기약했던 나였지만 그때만큼은 뒤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그저 빨리 떠나고 싶었다.


기억이 희미해져 갈 무렵, 올해 초 미국에 갈 기회가 생겨 다시 뉴욕을 찾았다. 20대의 그 감성을 느끼고 싶어서 자주 다니던 길을 걸었다. 그때는 생생했던 그 길이 이제는 지도 없이는 다니기 힘들게 되었다. 추운 날씨만큼이나 차가운 사람들과 차가운 도시. 코로나 때문이었을까? 나를 바라보는 눈길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20대 때보다는 경제적 여유가 생겨서 보고 싶고, 먹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지만, 그때의 기분이 나지 않았다. 활기가 넘치던 나, 들뜨고 가슴 설레던 나는 거기 없었다.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했다.


“뉴욕에 갔다 왔어. 그런데 설레지 않았어.”


“뉴욕은 잘못이 없어. 네가 변한 거야”


그녀의 말이 맞다. 내가 변했다. 외로움과 고단함, 이방인의 감정을 느끼고 나니 그곳이 더 이상 사랑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뉴욕을 뜨겁게 사랑하는 게 나았을까? 아직 잘 모르겠다. 언젠가 다시 여행할 수 있게 되면 나는 또다시 뉴욕행 티켓을 알아볼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그때도 뉴욕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그곳을 가게 될 때면 난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그리고 그때는 어떤 마음으로 뉴욕을 마주하게 될까?




*이 글은 2w 매거진 7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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