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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azing Grace YJ Dec 01. 2023

괜찮지 않을 때에는 청소를 합니다.


나는 ‘괜찮다’는 표현을 많이 하는 편이다. 상대의 선택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고, 특별히 상대가 선택한 것이 나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괜찮다고 한다. 그러나 괜찮다고 하는 이면에는 진짜 괜찮은 것이 아니라 상대와 충돌을 피하고자 할 때도 있고, 복잡하게 생각하기 싫을 경우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라는 표현이 반복되다 보면 상대는 나에 대하여 취향도 의견도 없는 무색무취의 사람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생긴다. 나의 ‘괜찮아’라는 소극적인 배려는 상대가 나에게 무례하게 대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다. 상대의 탓을 하고 싶지만 그동안 쌓아온 나의 과오도 한몫이기 때문에 누구를 탓하기 어렵다. 이때 나는 괜찮지가 않다.

나이가 들어가며 괜찮지 않은 것들 천지다. 세상은 급박하게 돌아가는데 내가 배운 것들에는 한계가 있다. 나와 세상과의 간격이 점점 넓어진다. 무작정 따라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가만히 서서 뒤처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인간관계에도 변화가 생긴다. 폭넓었던 관계들이 점점 좁아지기 시작한다. 모든 관계들을 붙잡고 갈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왠지 모르게 아쉽다. 나의 세계가 내가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만큼으로 줄어들어 버리는 것 같아서 괜찮지가 않다.

사실 내가 괜찮지 않음을 인식하게 된 것도 30대 중반이 넘어선 때부터다. 20대의 나는 에너지가 넘쳤기 때문에 괜찮지 않은 것들에 대하여 괜찮다고 넘길 수 있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30대에 들어서다 보니 내가 가진 에너지의 총량이 줄어들면서 괜찮지 않은 것을 괜찮다고 하면 병이 났다. 억지로 하는 것엔 에너지를 더 많이 쓰게 되는 법이다. 그래서 괜찮지 않다고 하는 용기가 필요했다.

상대에게 괜찮다고 한 적은 많았으나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준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외향형의 인간이라 에너지를 외부로만 사용하다 보니 내면을 들여다보고 보듬어 주는 일들이 적었던 것이다. 나의 내면을 잘 돌아보고 돌봐줘야 나도 괜찮고 남에게도 괜찮다고 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하지만 내가 괜찮아지기 위해서는 괜찮지 않음을 해소할 만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괜찮아지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가만히 있다고 해서 괜찮아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괜찮지 않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괜찮지 않을 때에 나는 청소를 한다. 장롱과 서랍을 뒤져 버리지 못했던 물건들을 꺼내어 과감하게 쓰레기봉투에 담아내고, 냉장고를 열어 욕심을 부려 꾸역꾸역 사 모았던 오래된 음식들을 꺼낸다. 잘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움켜쥐고 있던,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나에게 소중했던 것만 같은 물건들을 버리고 나니 내 안에 담아두었던 괜찮지 않았던 마음들이 떨어져 나오는 것 같아 후련해진다. 청소로 시원해진 공간들을 바라보며 내 마음속 시끄러운 소리들이 잠잠해져 간다. 고요해진 공간 사이로 마음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괜찮아?’

‘응 괜찮아.’

* 2W 매거진 40호 23년 11월호에 투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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