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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azing Grace YJ Nov 02. 2023

안녕! 내 작은 친구

  케냐 나이로비의 조모 케냐타 국제공항(Jomo Kenyatta International Airport)에 도착했을 때 공항 옆에 펼쳐진 나이로비 국립공원의 기린을 보면 케냐에 다시 오게 된다는 속설이 있다. 그래서일까? 2012년 공항을 나서며 본 기린 덕분인지 2013년까지 두 번 케냐를 방문하게 되었다.


  케냐에 방문하게 된 이유는 전에 다니던 회사와 굿네이버스, SBS 희망 TV에서 진행하는 사회공헌 활동으로 아프리카에 학교를 세워주는 프로젝트 때문이었다. 사내공모를 통해서 뽑힌 지원자들과 사회공헌실 직원들, 굿네이버스 직원들로 구성된 팀이 꾸려졌다.


  나는 아프리카라는 말만 들어도 두근두근하다. 봉사활동으로 세 번의 아프리카 대륙을 밟아봤지만 늘 다시 가고 싶고 설레는 곳이다. 그런데 아프리카가 나에게 이전보다 더 특별해지게 된 계기가 생겼다. 바로 결연아동을 만나는 것이었다.


  케냐에 가기 전 굿네이버스와의 워크숍 기간에 결연을 신청했다. TV에서 유명인들이 아프리카에 가서 결연아동을 만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는데 나에게도 과연 그런 기회가 있을까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상상했던 일이 현실로 일어났다. 다른 어떤 행사보다도 기쁘고 기대가 되었다. 케냐로 출발하기 전 아동에 대한 정보를 먼저 받았다. 나의 결연아동은 키사루 메요키, 8세 소년이었다. 사진에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입 꼬리가 올라갔다.


  13시간이 넘는 비행과 5시간이 넘게 차로 이동하는 것에 지쳤지만 키사루 메요키를 만날 생각에 피로가 느껴지지 않았다. 여러 가지 분주한 일정들이 지나가고 드디어 학교 착공식 날이 다가왔다. 우리가 학교를 짓게 된 곳은 케냐의 수도인 나이로비에서 자동차로 5시간 정도 떨어진 메구아라 지역이었다. 지역에서 큰 행사가 되어버려서 관공서 직원들 및 추장님까지 오시게 되었다.


  바쁜 와중에도 나의 눈은 키사루 메요키를 찾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빨리 만나면 좋겠다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던 그때 현지 직원의 손을 잡고 사진 속에서 웃고 있던 모습 그대로 키사루 메요키가 다가왔다.


“Jambo!” (안녕?)
“Habari?” (잘 지냈어?)
“Mzuri sana.” (잘 지냈어요.)


  아는 스와힐리어를 총동원해서 인사를 건넸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었지만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갈 수가 없었다. 그때 행사가 시작되어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원래부터 서로 알았던 것처럼 말없이 손을 잡고 있었다. 착공식이 진행되는 내내 서로의 손을 잡고 마주 볼 때마다 씩 웃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헤어졌지만 나는 일 년 뒤 다시 케냐, 메구아라로 향하게 되었다. 학교가 다 지어져서 완공식에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키사루 메요키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혹시 나를 잊어버렸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러나 그건 나의 기우였다. 키사루 메요키는 예전처럼 활짝 웃으며 내게 다가와 인사했다. 1년 전보다 키가 좀 더 크고 통통해졌다. 우리는 여전히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서로를 향해 미소 지으며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눈으로 나눴다.

케냐 공항에서 기린을 본 행운으로 한 번 더 방문하게 된 케냐였지만 이번에는 신기하게도 기린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학교도 완공되었으니 다시 올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어린 소년의 맑은 눈을 바라보니 괜히 더 아쉬워 눈물이 났다. 내가 왜 눈물을 흘리는지 잘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키사루 메요키가 날 바라봤다. 그때 갑자기 생각난 스와힐리어.


“Hakuna matata!” (문제없어!)


  소년이 그 말을 듣더니 활짝 웃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웃으며 헤어졌다.


  2022년, 2012년으로부터 10년이라는 세월이 소리도 없이 휙 하고 지나가버렸다. 2013년 이후 나는 다시 케냐에 가보지 못했고, 그 사이 8세의 작고 귀여운 소년은 어느덧 멋진 청년이 되어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축구하는 모습을 그려서 보낸 편지, 열심히 공부해서 경찰이 되고 싶다고 했던 편지, 내가 보낸 생일 축하 편지에 고맙다고 한 편지 등 이후 소식들은 굿네이버스를 통해서 전해 듣고 있었다. 코로나 시기에는 혹시라도 아프거나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다행히 가족들과 모두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는 소식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10년의 세월 동안에 나도 결혼을 하고 출산도 하게 되었다. 나의 소식을 편지와 사진으로 키사루 메요키에게 전하면서 서로에게 큰 의미가 되었던 우리인데, 2022년 12월부로 우리는 이별하게 되었다. 18세가 되면 자립하게 되어 후원이 종료되기 때문이다. 10년의 세월을 함께 자라온 지구 반대편의 작은 친구와 안녕을 고할 시간이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편지도 더 많이 보내고, 생일금도 더 보내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흘러 보낼 수밖에 없다. 다만 키사루 메요키의 앞날을 위해 기도할 뿐이다. 키도 나보다 크고, 말쑥해진 청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수줍게 웃는 얼굴은 예전 그대로였다. 동영상으로 보내온 마지막 메시지를 보니 마음이 더 뭉클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지만, 영상 속의 너의 얼굴을 보니 키사루 메요키가 어떤 마음인지는 충분히 전달받았다. 앞으로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케냐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다. 꼭 그렇게 되기를 힘써 기도할 것이다.


  10년의 세월 동안 케냐의 작은 친구로부터 받은 것은 사진과 편지에 담긴 위로와 격려였다. 긴 시간 동안 내가 나눈 것보다 더 큰 선물을 받았다. 그래서 소년이 내게 고마워했던 것보다 내가 더 고마웠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꼭 다시 한번 만나기를 소망한다.     


“Asante sana! Mungu akubariki!”
(정말 고마워! 축복해!)




너와 꼭 잡았던 그 손의 온기를 아직도 기억해



*이 글은 2w 매거진 39호(23년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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