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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azing Grace YJ Dec 23. 2023

아! 절절한 아버지의 사랑이여

영화 <인어공주 > 리뷰


  1990년의 어느 날.


  엄마가 나에게 비디오테이프를 하나 건네주었다. 디즈니 판 인어공주라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밖에 안 된 꼬맹이였지만, 이미 인어공주 같은 건 다 뗐는데 유치하게 그런 걸 왜 나한테 보라고 하지? 생각했다. 비디오테이프를 틀어볼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무도 없는 집에서 심심함을 이기지 못하고 여기저기 뒤적거리다가 인어공주 테이프를 발견했다.


‘심심한데 이거나 한 번 볼까?’


  나는 어쩔 수 없이 한 번 봐주는 거야 하며 선심 쓰듯 인어공주 테이프를 틀었다. 90년대 초반 비디오가게에서 빌려온 테이프에는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것이 불법 복제 영상이라고 선전했지만 실제로는 불법이 넘쳐나던 시절이었다. 디즈니가 알면 깜짝 놀랄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인어공주, 라이언 킹, 미녀와 야수 캡션 비디오테이프는 없는 집이 없었을 것이다.


  보나 마나 유치하겠지만 그래도 디즈니니까 하는 마음으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서는 충격에 휩싸였다. 내가 알고 있던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슬픈 엔딩이었는데, 디즈니 인어공주는 왕자와 결혼하는 해피엔딩의 스토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귀에 꽂히는 아름다운 음악들은 내 마음을 온전히 사로잡아버렸다.

디즈니의 인어공주는 내 최애 만화영화가 되었다.


  나의 최애 인어공주가 실사화 영화가 된다고 해서 많은 기대를 했다. 이런저런 논란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어떻게 만들었을까 한 번 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청했다.

  역시나 구관이 명관이라고 애니메이션을 따라올 수는 없었다. 'Under the sea'의 화려함, 'Kiss the girl'의 로맨틱함이 부족했고, 유머가 넘치는 'Les Poissons'이 빠진 것이 아쉬웠다.


  그리고 다른 것보다 철부지 딸을 향한 아버지의 분노, 사랑, 애타는 절절한 마음이 드러나는 표정을 애니메이션이 더 잘 표현했다.

  

  애리얼의 비밀창고에서의 장면이 압권인데, 트라이튼 대왕이 불같이 화내며 왕자의 동상을 부술 때의 얼굴에서 애리얼이 울면서 뛰쳐나가는 것을 보며,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시무룩하게 변하는 표정을 정말 잘 표현했다. 이건 실사판이 애니메이션을 못 따라오는 것 같다. 복잡 미묘한 그의 표정에서 철부지 막내딸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느꼈다.


  어른이 되어 본 인어공주는 애리얼의 사랑 찾기에 포커스가 맞춰지기보다는 딸을 향한 아버지의 절절한 사랑이 넘치도록 그려진 영화로 보게 된다.


  철없는 딸내미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왕자에게 첫눈에 반했다며 아버지의 품을 기어코 떠나겠단다. 게다가 특별히 아버지의 자랑거리인 아름다운 목소리를 팔아서까지 인간이 되겠다는 딸을 보며 얼마나 마음이 아렸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을 쫓아서 저 멀리 가겠다는 철부지 딸내미를 혼내도 보고, 달래도 보지만 그 의지를 꺾을 수 없기에 자신의 지위까지 포기하며, 초라한 식물인간(?)까지 되면서까지 딸을 살리려 한다. 마녀의 죽음 이후 뭍의 왕자를 그리워하는 딸에게 다리를 선물하며 멀리 떠나보내는 그 아버지의 절절한 사랑이여! 그래서 나의 눈물 포인트는 애리얼과 트라이튼 대왕이 마지막으로 포옹하는 그 장면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보니 부모의 마음을 조금은 읽게 된다. 그래서 다시 본 인어공주는 오색찬란하고 반짝거리는 봄날의 살랑거림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가을의 쓸쓸함으로 다가온다. 나도 언젠간 저렇게 떠나보내게 되겠지?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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