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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히랑 Feb 25. 2024

마르셀 뒤샹, 최초로 변기를 예술품으로 내놓은

현대 미술의 아버지

마르셀 뒤샹, 최초로 변기를 예술품으로 내놓은

현대 미술의 아버지    


"궤도를 조금 벗어난 것 같아."

주변인들은 말했다. 사실 모든 화가들, 모든 예술가들에게 가장 어렵지만 원하는 일이기도 하다.  '독특하다. 독보적이다. 인정받기에 오래 걸린다.'로 대변할 수 있다.  25세에 회화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전시회에 남성용 소변기를 그대로 갖다 놓은 화가가 있다. 프랑스 출신 미국 작가로 반 전통, 반 예술사상 창안한 앙리 로베르 마르셀 뒤샹(Henri Robert Marcel Duchamp, 1887-1968)이다.

 미술의 형태를 변화시키기보다는 미술에 대한 개념 자체를 변혁시켰고 미술에서의 ‘재현’ 행위를 전면 부정하고 레디메이드(Readymade, 기성품을 새로운 측면으로 보아 만든 미술작품의 한 장르)를 창안했다.     

 ”회화는 끝났어. 누가 이 프로펠러보다 더 나은 것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

1912년 콘스탄틴 브란쿠시, 레제와 함께 항공기 전시장에 갔다 온 뒤샹이 말했다.

“시각적인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으로 변화해야 한다.”

이 발언 이후 뒤샹은 현대 미술사를 흔든다. 뒤샹은 예술가가 의지만 있으면 진부한 물건이나 대량 생산된 일상용품, 즉 레디메이드도 얼마든지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뒤샹의 초기 작품은 어떤 지 궁금했다.  뒤샹은 15세부터 그림 시작했고 17세에 미술학교 입학했다(성장기(출생-17세/1904). 17세에 화가로의 삶(17세~27세 1904-1914)을 시작했고 세잔, 피카소가 전성기를 이룬 입체파(큐비즘) 미술 사조가 지배하던 때로 입체파, 미래파에 영향을 받았다. 


블렐빌의 풍경(뒤샹, 1902, 모네 화풍)                            창가에 앉은 남자(뒤샹, 1907)


여자 마차꾼(뒤샹, 1907)                         체스게임(뒤샹, 1910)               약국 레디메이드 판화 위 과슈(뒤샹, 1914)

               

뒤샹이 입체주의를 알게 된 것은 1911년 가을이다. 퓌토그룹(Groupe de Puteaux)에서 ‘미술이 마음으로 행위를 한다는 것과 4차원’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퓌토그룹은 1910년 앙데팡당전*에서 모여 1911년 결성한 그룹이다. 퓌토에 있는 뒤샹 Marcel Duchamp(1887~1968)의 아틀리에*에서 입체주의 계열 예술가들, 비용, 뒤샹, 쿠프카, 들로네, 아폴리네르 등이 참여하였으며, 입체주의의 장단점을 분석하는 일을 중시했다.

뒤샹은 입체파에 대해 양면적인 입장. 전통적인 회화 기법을 파괴하고 공간을 여러 차원으로 분할하는 입체파에 매료되었지만, 입체파가 문화를 점령하고 체계화되는 것을 경계했다. 당시 수학과 철학 토론에 열광. ’리만 기하학‘에 빠져있었다. 

뒤샹은 리만 기하학에서 나오는 4차원의 개념을 수학적인 의미가 아닌 현재 3차원 세계를 ‘보충하는 차원’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때로는 색채를, 때로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4차원으로 여겼다.

4차원 초정육면체(4차원 이상의 기하학의 창시자인 천재 수학자 리만에 의한)

  

<소나타, 뒤샹, 1911>,     <해체된 이본과 마들렌, 뒤샹, 1911>

<소나타, 1911> 새해를 맞을 때 그린 것으로 세 누이가 어머니 앞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장면을 묘사했고 각 인물이 상호 무관하게 존재하는 모습이다. 이본은 피아노를 치고, 마들렌은 바이올린을 연주, 쉬잔은 동생들 앞에 앉아있고 귀가 먼 어머니는 연주를 들을 수는 없지만 중앙에 장승처럼 우뚝 서 있다. “처음으로 그림에 유머를 도입함으로써 어떤 의미에서 그녀들의 옆모습을 해체하고 화면에 우연을 좇아 배열했다.”                

 <해체된 이본과 마들렌, 1911> 입체주의 양식으로 두 여동생의 모습을 해체한 뒤 재구성. 그만의 방식으로 입체주의를 변용하고 활용하고 있다.

            

1910년 2월 ‘르 피가로’ 일면에 미래주의가 크게 보도되었다. 뒤샹은 운동 현상에 관해 관심을 두었고 그 시작은 뒬시네아이다.

              

<뒬시네아, 1911,10>                   <기차를 탄 슬픈 청년, 1911>

<뒬시네아>는 키가 큰 다섯 여인이 걸어가는 모습으로 세 여인은 의상을 제대로 갖춘 데 반해 두 여인은 몸을 부분적으로 노출한 모습이다.                           

<기차를 탄 슬픈 청년>은 1911년 겨울 뒤샹은 입체파 모임인 퓌토그룹과 어울리지 않고 누구와도 만나지 않은 채 혼자 작업에 전념했다. “나임을 확인 해주는 파이프가 그림 안에 있다.” 입체파 화가들의 회화 양식에 약간 다른 방법을 도입. 자전적인 그림으로 뒤샹이 혼자 기차를 타고 파리에서 루앙으로 간 것을 암시한다.

트리스트 triste(슬픈)과 트랭train(기차)라는 단어를 통해 말장난의 유머를 도입. “청년이 슬픈 것(트리스트)은 기차(트랭)라는 단어가 뒤이어 오기 때문이다. tr는 대단히 중요하다. 연속된 낱말에서 첫 자음 또는 중간 자음을 되풀이하는 두운법이 필연적으로 작품 일부를 구성한 것이다.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 No1, 1911>,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 no2, 1912>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 No1>은 어린 시절을 보낸 블랭빌의 저택 계단을 배경이다. 스물네 살 때, 마르셀 뒤샹을 유명하게 한 첫 작품이다. 이후 그의 그림은 이때의 경향에서 수정되고 발전되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 no2는 이듬해 1월 중순. 인체의 모습이 더 생략. 입체주의를 극단으로 몰고 간 결과물이다. 입체파 화가들의 작품과 전혀 다른 양상이며 계단을 내려오는 사람의 다리가 여러 개의 정지 화면은 겹쳐 놓은 것처럼 표현했다. 4차원의 시간을 2차원 평면 위에 보여준다.         

              

인간육체 이동에 관한 연속 촬영 연구(1886, 본느 마레 박물관)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는 프랑스 생리학자 ‘에티엔 주리 마레의 인간이나 동물의 운동에 관한 실험을 참조했다. 누드 형상을 마치 움직이는 기계로 묘사, 공간을 기하학적으로 구성하고 한 공간에서 여러 시간을 재현해 내는 기법이다. 입체파 영향을 받았으나 입체파와 다른 점은 움직임을 표현이다.

당시 신기술인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뒤샹은 움직이고 있는 신체의 연속 이미지를 한 번에 표현하는 방법을 고민. 현대의 3D 모델링처럼 사람에게 딱 붙은 옷을 입힌 뒤 관절을 표시해 사진을 찍어서 신체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기하학과 차원이라는 수학 개념과 운동을 재현하는 과학적인 발상을 결합해 작품을 만들었다. 스스로 개방적이라 여겼던 화가들의 폐쇄적인 모습에 실망한 마르셀 뒤샹은 말없이 자신의 작품을 회수함으로써 입체파로부터 분리되어 나왔다.




뒤샹의 그림에 누드, 운동, 그가 좋아한 체스가 주제로 등장한다.  

빠른 누드들에 에워싸인 킹과 퀸(뒤샹, 1912)    신부(뒤샹, 1912)>

뒤샹의 그림에 누드, 운동, 그가 좋아한 체스가 주제로 등장한다.  <빠른 누드들에 에워싸인 킹과 퀸>은 1912,5월 연필 드로잉으로 세 번에 걸친 습작 끝에 완성했고 킹과 퀸을 대각선으로 움직이면서 교합하도록 구성했다.  관람자가 적극적으로 회화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신부>는 맥주를 마시고 취해서 자다 꿈을 꾸었는데 “신부가 딱정벌레처럼 나타나 날개로 나를 지독하게 괴롭혔다”라고 했다. 꿈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transfiguration,1916)을 상기시킨다. 이런 꿈을 꾼 후 그린 <신부>는 매우 신비스러운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입체주의 방식으로 운동을 묘사하고 있다.          

자전거 바퀴(뒤샹, 1912)

 <자전거 바퀴>는 자전거 바퀴가 의자에 꽂혀있는 형태의 작품으로 Readymade이다. '화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 생각 등을 담은 visual image(시각적 이미지)이고 그림이 아니어도 이러한 감정과 생각은 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레디메이드는 다다이즘 배경에서 만들어졌다. 다다이즘은 세계 대전 후 예술가들에게 이성, 사회, 도덕 등에 회의감을 느꼈고 기존의 전통에 반하는 움직임. 반이성, 반 예술, 반도덕적인 운동이다. 기존에 작품에 사용하지 않은 기성품들을 작품으로 가져왔다. 다다이즘이란 말은 예술가들이 모여 사전을 펴 나온 말 중하나를 골랐다. 어린아이들이 옹알이할 때 하는 말이며 아이들이 타는 목마라는 의미도 있다.    


마르셀 뒤샹은 1915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미국 뉴욕으로 간다. 

뉴욕 시기(28세~36세, 1915-1923)에 작품집 출판하고 1946년부터 20년 진행된 ‘명제’ 작품을 제작한다.

부러진 팔에 앞서서(위샹, 1915, 눈치우는 삽)     샘(Fountain, 1917)


샘은 남자 소변기를 떼다가 가져온 작품이다.

뉴욕의 1917년 독립미술가협회전(society pf Independent Artists)에 출품. 주최 측의 거부로 전시되지 못하고 칸막이 뒤에 방치된다. 나중에 ’ 알렌스버그‘라는 사람이 구입했으나 분실했고, 직접 17개의 복제품을 만들어 전시했다.  미술책 도판에 나오는 것들은 나중에 복제한 것들이다. R.MuTT라고 쓰여 있는 것은 당시 위생 시설 업체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도 하고 유명했던 위생 시설 제작자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도 전해진다. 뒤샹의 Readymade 작품들은 ’가장 예술적이지 않은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뒤샹의 이러한 작품들은 당시 미술계에 큰 충격을 준다.   

L.H.O.O.Q(뒤샹, 1919)                                        

<L.H.O.O.Q>는 이를 프랑스어 연음으로 발음하면 그녀의 엉덩이는 뜨거웠다. 언어놀이를 통해 전통적 미학의 통념에 젖어있는 대중을 조롱한다.  반복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에 대한 관심이 공통적으로 드러나며 몇몇은 성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Rrose Selavy>는 에로스 그것은 인생 erose cest la vie와 동음 R 뒤에 r도 뒤샹의 언어적 유희이다.   


  

주어진 것 1. 폭포, 2.조명용 가스등(뒤샹, 1946-1966)     정면 모습

 <주어진 것 1. 폭포, 2.조명용 가스등 1946-1966>은뒤샹이 죽고 거의 9개월이 흐른 뒤 1969년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처음 대중에 공개되었다. 설치 지침서에 따르면 그는 1946년 ~ 1966년 동안 뉴욕에서 이 아상블라주를 제작했다. 육중한 나무문에 난 두 개의 작은 구멍을 통해 큰 구멍이 뚫린 벽돌로 된 벽과 그 뒤편의 마른 나뭇가지와 낙엽 위에 팔다리를 벌리고 누워있는 여성의 나체 토르소가 보인다.    


에땅도네(뒤샹, 1946-1966)

에땅도네는 인간의 에로티시즘을 내포하고 있다. 기존의 격조 높았던 예술의 파괴를 추구한다. 


 마르셀 뒤샹은 20세기 초 서양 미술에 큰 영향을 준다. 일상적인 것들을 가져와 미술 작품으로 만드는 팝아트나 개념미술, 그리고 설치 미술 등에 영향을 끼침. 미술가가 만들지 않아도 거기에 미술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예술적인 의미를 담게 되면 그 자체로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만들어낸다.  <샘>은 20세기 현대 미술의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히며, 뒤샹은 20세기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린다.

#마르셀 뒤샹, #샘 남성용 소변기, #변기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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