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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해야지 뭐 어떡하겠어...

49세 문과출신 N잡러 이야기

by Kay

처음 해고를 당하고 3개월 정도까지는 강의로 매우 바빴기 때문에 저에 대해서 차분히 생각해 볼 여유와 시간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강의는 끊기고 프리랜서의 삶에 접어들게 되니 혼자 생각할 시간이 너무 많았습니다. 처음의 다급함, 절실함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흩어졌습니다. 물론 상황은 심각했지만, 심각한 상황이 매일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적응을 한 것 같았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모두들 원하는 대학을 가기 위해서 노력하던 시기였습니다. 친구들 중에 공부를 참 잘하는 녀석들도 있었는데요, 그들의 투지를 보면 놀랍기만 했습니다. 시험 하나하나에 정말 정성을 들였습니다. 저는 그들의 투지를 흉내를 낼 수도 없었습니다. 몇 번 따라 해 보기는 했지만, 아무리 의지를 불살라도 며칠이면 사그라들곤 했습니다.



제가 선택한 방법은 ‘그냥’이었습니다. 적당히 제가 좋아하는 소설을 보면서도 하루하루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 공부의 양은 차이가 있을지언정 하루라도 빼먹지는 않았습니다. 불안감이나 절실함, 투지도 며칠이 지나면 적응이 됩니다. 그저 일상이 됩니다. 그러다가 사그라진 열정에 나 자신이 싫어서 하루라도 공부를 건너뛰게 되면 그게 시작이 되어 공부가 하기 싫어집니다.



지금 저의 반복된 제안과 설득, 거절도 이들을 어떻게 해서든 이겨보겠다고 투지를 불살라 보았자 며칠 가기는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를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오늘 하루 안절부절 해보았자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 그냥 하루하루 반복만 꾸준히 지켜보자란 생각이었지요.



아래의 그림은 제가 좋아하는 이상아 작가님의 그림입니다. 인스타그램에서 ‘냥식당’이라는 에세이툰을 연재하시고 계시는 데요, 저도 고양이를 키우고 있어서 그런지 공감이 많이 갑니다. 그중에서도 이 그림은 저의 그런 마음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모든 컴퓨터의 바탕화면의 배경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좌절과 안절부절,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는 투지로부터 벗어나 일단 꾸준함으로 승부하기 위해서는 약간은 체념한 듯 하지만 멈추지 않은 ‘그냥’ 마인드가 저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해야지뭐어떡하겠어.jpg



분노도, 좌절도, 투지도, 간절함도 매일 반복되다 보면 일상이 됩니다. 일상이 되면 오늘 하루쯤이야 하고 넘기는 날이 생기고, 그 하루가 긴 슬럼프의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컴퓨터를 켜면서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해야지 뭐 어떡하겠어…



(덧글) 이상아 작가님의 에세이툰을 소개합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0547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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