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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작 Mar 16. 2024

기다려줘, 내가 갈게

뮤지컬 하데스타운 Hades Town

뮤지컬 하데스타운 Hadestown은 신화 속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두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교차시켜 독특한 음악과 안무로 만든 뮤지컬이다. 지하세계에서 어렵게 사랑하는 이를 구해 나오지만, 절대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조건을 지키지 못한 유명한 오르페우스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각색했다.

 

하데스타운은 '지금까지 봐왔던 뮤지컬과 다르다'는 The I 리뷰에 동의한다. '유니크하다'라는 단어가 어울릴 것이다. 처음 봤을 때는 노래가 특이하고 안무도 낯설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들을수록, 공연을 볼수록 매혹적이다. 공연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추천하기에는 좀 고민된다. 뮤지컬 중에서도 자기만의 색깔이 분명하고 조금 어둡달까. 하데스타운 산업화와 빈부 격차, 난민수용문제, 자본주의의 폐해, 기후변화까지 여러 사회경제 문제들을 시사한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하데스타운은 사랑 이야기다.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 넘어서는 사랑을 음악으로 증명하는 사랑 이야기.

뮤지컬 [하데스타운] 웨스트엔드 초연에 대해 타임아웃은 '길고 이상한 여정이었다'라는 말로 리뷰를 시작한다. 싱어송 라이터 아나이스 미첼은 미국에서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노래를 만들어 2010년 포크 앨범을 발매했다. 2011년 어느 프로듀서가 뮤지컬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했고 미국 뉴욕과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워크숍을 가지며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2018년 영국 국립극장에서 3개월 간 공연됐고, 브로드웨이로 가 2019년 토니상을 휩쓸었다. 그리고 2024년 2월,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하게 된 것이다.


2021년에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브로드웨이에 이은 전 세계 첫 번째 라이선스 공연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초연작이니 공연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어 볼까 말까 망설이다가 뒤늦게 발동이 걸린 탓에 1층 맨 뒷자리에서 관람했다. 그럼에도 무려 13만 원이어서 허리를 바르게 세우고 집중했던 기억이 난다. 런던 웨스트엔드 리릭 시어터 Lyric Theatre에서 토요일 낮 공연을 89.50파운드, 약 15만 2천 원 정도에 관람했다. 티켓 가격은 요일에 따라, 크리스마스나 휴가 기간 등에 따라 차이가 난다. 공연을 예매할 때는 공식 웹사이트와 Today Tix 등 가격을 비교해 보고 할인율이 높은 곳에서 예매한다. 하데스타운극장 웹사이트에서 예매했다.


리릭 시어터 객석은 단차가 전혀 없는 평지였고 무대는 높은 편이었다. 좌석은 앞에서 다섯 번째 줄 가운데에서 약간 우측이었는데 무대 바닥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당히 올려다봐야 하는 위치였다. 그래서인지 하데스가 드나드는 문은 더 높게 보였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무대를 올려다보며 조명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어서 좋았다. 길게 늘어진 갓등을 흔드는 장면도 빛의 움직임이 잘 보였다.


무대는 그리스 원형 극장을 닮았다. 무대 벽채가 갈라지면서 드라이아이스가 뿜어 나오고 음향 효과가 더해지며 지하세계로 들어가는 모습을 표현한다. 3중으로 돌아가고 가운데가 상승 하강하는 무대는 하데스타운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공연에서 회전무대를 사용할 때 시간이 지체되거나, 배우들 움직임에 불안한 느낌이 들 때가 있어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하데스타운이 그 편견을 깼다.


이들은 3중으로 된 회전무대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데 가운데 원은 상승 하강한다. 가장 바깥쪽 턴테이블과 그 안쪽 턴테이블이 동시에 한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하고 반대로 움직이기도 한다. 이것은 배우들의 걸음을 더 빠르게 혹은 느리게 만들어 음악과 함께 장면을 극적으로 만든다. 인물들이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두 커플을 대조적으로 배치하기도 하고 나란히 놓기도 하며 전체적인 극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회전무대는 오르페우스에우리디케와 함께 지하세계에서 빠져나오는 장면을 표현할 때 빛을 발한다. 어렵게 돌아 돌아 현실세계에 도착한 장면에서 오르페우스는 회전무대 밖에 위치한다. 무심코 돌아봤을 때 무대 가운데 있던 에우리디케가 무대 아래로 내려가며, 지하세계로 사라져 버리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 프로덕션을 봤던 날 캐스트는 오르페우스는 박강현,  헤르메스 최재림, 페르세포네 김선영, 에우리디케 김환희, 하데스 지현준이었다. 영국식 발음은 하데스타운이 헤이디스타운으로 들렸다. 인물들 이름은 올피우스, 허미스, 펄세포니, 유리디씨, 헤이디스로 들렸다. 헤르메스가 극 전체 내레이터 역할을 한다. 한국 프로덕션에서는 최재림과 강홍석이 맡았고 2018 영국 초연시에도 남자 배우가 맡았었다. 2024년 런던 프로덕션에서는 멜라니 라 배리 Melanie La Barrie라는 여자배우가 연기한다.

다른 역할들도 그렇지만 특히 오르페우스에우리디케 캐스팅이 작품 분위기를 달라지게 만든다. 런던 공연에서는 비교적 신인 배우들을 주연으로 캐스팅했다. 오르페우스 도날 핀 Dónal Finn은 황홀한 가성으로 엄청난 힘을 지닌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에우리디케 그레이스 호젯 영 Grace Hodgett Young은 지하세계로 내려가기를 결심한다. 이번 프로덕션 에우리디케는 지하세계를 혼자서도 헤쳐 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데스페르세포네는 카리스마가 엄청났다. 키가 크고 무시무시한 하데스 역은 재커리 제임스 Zachary James, 술로 사는 페르세포네 역은 글로리아 오니티리 Gloria Onitiri가 맡았다. 운명의 여신들은 각각 개성 넘치고 존재감을 드러냈다.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이라는 듯, 오르페우스에우리디케 둘은 갑작스럽게 사랑에 빠지고 금방 헤어진다. 볼 때마다 등짝 스매싱감인 오르페우스에우리디케가 애타게 부를 때는 못 듣다가 뒤늦게 외양간 고치는 거 정말 속 터진다. 게다가 그렇게 어렵게 에우리디케를 구해 내고는 마지막에 왜 그랬을까. 허무하기 짝이 없는 결말이다. 한국 공연에서 카피로 내세웠던 "결말을 알면서도 다시 노래를 시작하는 것. 이번엔 다를 거라 믿는 것"을 강조하듯 에우리디케가 희망의 불씨를 찾는, 전반부 장면이 다시 반복된다.


나는 이번 관람에서 페르세포네하데스 장면이 새롭게 느껴졌다.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서 페르세포네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본 탓인지 하데스와 사랑을 확인하며 춤추는 장면이 유난히 인상적이었다. 납치됐지만 상황을 받아들이고 사는, 무수한 갈등을 지나 타협하고 포기하며 절충하고 사는 중년 부부의 모습을 보았다.


하데스타운은 음악이 가진 힘을 음악으로 증명해 낸다. 트롬본 연주로 시작되어 출연자들이 박수를 치는 첫 장면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각각의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화음이 절묘하다. 무대에 함께 출연해 연주하는 밴드의 연주를 감상하는 것도 즐겁다.  Wait for me에 나오는 부분 연주를 듣기만 하다가 실제로 보니 피아니스트 손가락이 어찌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경이로운 지경이었다.


음악 때문인지, 공연을 보면서 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이 궁금해졌다. 영국 일부 매체에서는 하데스타운 웨스트엔드 초연에 형편없는 별점을 줬다. 더 스탠더드는 겨우 별 두 개를 주며 가사가 유치하고 가식적이며 무의미하다고 혹평을 했다. 아마 영국 기자들도 공연을 보면서 이건 미국 뮤지컬이라고 생각해서 더 그러지 않았을까? 2024년 2월, 이해찬 배우가 뮤지컬 하데스타운 투어에서 아시안 최초로 오르페우스 역으로 공연했다는 기사를 봤다. 그가 표현하는 오르페우스는 어떨지도 궁금하고, 다른 전체적인 분위기도 영국이랑은 어떻게 다를지도 궁금하다.


2024년 12월 22월까지 런던 리릭 시어터 Lyric Theatre에서 공연 중이다. 아래 영상에서 공연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다.

https://youtu.be/0m33DZYAS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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