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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작 Mar 30. 2024

오페라의 재미에 눈뜨다

오페라 마술 피리 The Magic Flute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오페라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이제껏 그렇게 많은 공연을 봤는데 정말 한 편도 없었던 것인지 기억에 남는 작품이 없는 것인지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 연극을 중심으로 뮤지컬과 무용, 콘서트도 여러 편  봤는데 오페라는 왠지 어렵게 느껴졌었다.


오페라 [마술 피리 The Magic Flute]를 보게 된 것은 영국 극단 ‘컴플리시테 Complicité’ 덕이다. 지난 2023년 3월, 바비칸에서 이들의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Drive your plow over the bones of the Dead] 공연을 인상 깊게 봤고 '컴플리시테'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했다. 극단 인스타그램에 뜬 [마술 피리] 사진(타이틀 이미지)을 보고 공연을 보기로 결심했다. 이 연극 같은 장면이 뭔지 궁금했다. 


컴플리시테는 2015년 3월 한국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 [라이온 보이]라는 작품으로 내한한 바 있다. 2020 팬데믹 시기에 LG아트센터를 통해 [인카운터]라는 작품이 온라인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컴플리시테의 공동 창립자이자 예술감독인 사이먼 맥버니 Simon McBurney는 영국에서 훈장(OBE-Order of the British Empire)을 받은 배우이자 작가 겸 연출가이다. 영국 국립극장에서 6월부터 [니모닉 Mnemonic]이라는 작품이 올라갈 예정이어서 기대하고 있다. 


[마술 피리]는 비엔나에서 1791년 9월 처음 공연됐고 영국 런던에서는 1811년 6월 초연했다. 잉글리시 내셔널 오페라의 첫 공연은 2013년 11월이었다. 

공연장 안에 있는 바에서 프로세코(가장 무난한 샴페인)를 한 잔 시켰다. 유리잔처럼 보이는 플라스틱 샴페인 잔이 예뻤다. English National Opera는 CI도 심플하면서 모던했다. 블랙과 골드 컬러로 만든 관련 상품들도 매력적이었다. 공연의 이해를 도울 프로그램북도 샀다. 런던 콜로세움은 처음이었는데 높은 돔형 천장이 근사했다. 2,539석으로 웨스트엔드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극장 내부를 구경하면서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데 한 스태프가 마이크를 들고 나왔다. 불길했다. 암전에서부터 서곡이 시작되어야 하는데 갑자기 스태프라니!!! 아니나 다를까 무대 장치에 이상이 생겼는데 오후 내내 애썼음에도 복구를 못했단다. 그렇지만 공연은 진행할 것이고 우리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했다. 온라인에서 광고를 보면서 기대했던 장면들이 있었는데 무척 아쉬웠다.


공연이 시작되고 나서는 아쉬워할 틈이 없었다. 공연은 다양한 볼거리 들을 거리가 가득했다. 자막이 있어서 가사를 알아듣기가 수월했다. 등장인물 외에도 오케스트라 연주자들, 사운드 아티스트 Foley artist와 영상 아티스트 Video Artist, 액터, 어디셔널 코러스 등 하나의 공연을 위해 족히 100명은 애쓰고 있었다. 1막 65분, 2막 90분 동안 연극, 뮤지컬, 클래식 콘서트, 오페라를 동시에 보는 느낌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무대 양 쪽에 설치된 영상과 사운드 부스였다. 영상 부스에서 칠판에 쓰는 글씨가 무대에 실시간으로 확대되어 무대에 투사된다. 메인 이미지에서 보이는 이어진 원형도 실시간으로 그린 동그라미들이 무대 배경에 비친 것이다. The Magic Flute이라는 타이틀과 Act 1, Act 2 같은 글씨를 쓰기도 하고 카메라 앞에 책을 펼쳐 무대 배경을 만들기도 한다. 사운드 부스에서는 아티스트가 다양한 도구들을 활용해 소리를 만들어낸다. 새가 날아가는 소리와 빗소리, 바람 소리 등을 만들어내는 모습만으로도 하나의 공연이 된다. 여러 가지 재료로 무대와 협응 하며 열정적으로 소리를 내는 모습이 돋보였다. 


성악가들 외에도 여러 배우들이 출연했다. 악보를 반으로 접어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표현한다든지 단순하지만 임팩트 있게 소품을 사용했다. 실제 플루트 연주자 등 오케스트라 단원도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연기하며 연주하는 모습이 멋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악가들이 엄청난 성량으로 안정되게 노래를 하면서 열연하는 것이 놀라웠다. 파파게노는 특히 객석을 헤집고 다녀야 하는 장면도 있었는데 흔들림 없이 노래를 했다. 게다가 성량이 너무 커서 나는 당연히 마이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뮤지컬에서 보던 작은 마이크가 당연히 이마나 귀 옆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없었다. 오페라 전용 극장의 위력인지, 보이지 않는 마이크의 성능이 좋은 것인지 내내 감탄했다. 


뮤지컬은 오케스트라가 함께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뮤지컬은 극의 내용을 보여주기 위해 무대에 집중한다면 오페라 [마술 피리]에서는 성악가에게도 연주자에게도 고루 눈길을 줄 수 있었다. 연주자들이 아래로 가라앉은 오케스트라 피트가 아닌, 무대에서 조금 아래에 위치해 오케스트라 연주와 지휘자의 연주까지 볼 수 있었다. 연주자부터 성악가들, 배우들과 영상, 사운드 아티스트까지 전체를 살피며 온몸으로, 다양한 표정으로 지휘한 에리나 야시마 Erina Yashima도 멋졌다. 


내가 본 날은 아쉽게도 이 장면이 평지에서 진행됐지만 악보 종이 한 장으로 표현한 새들은 너무 멋졌다!


공연이 너무 좋았기에 무대 장치가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 더 아쉬웠다. 그것까지 더해졌다면 얼마나 더 멋졌을지! 공연을 보고 돌아와서 오페라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고객응대팀을 연락처를 찾아 메일을 보냈다. "어제 공연에서 무대 장치가 움직이지 않아서 나는 다른 공연을 봤다. 고대하며 기다렸는데 너무 아쉽다. 저에게 보상해 주실 수 있다면 알려주세요." 하고 최대한 정중하게 메일을 보냈다. 그들의 대응이 궁금하기도 했다.


당신의 경험에 대해 시간을 내어 편지를 써준 것에 감사한다. 네가 실망했다는 것을 들으니 정말 유감이다. 기술적 결함이 공연에 영향을 미칠 때 항상 매우 실망스럽다. 우리 제작팀은 청중을 위해 최고의 공연을 보장하기 위해 이러한 결함을 묵과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안타깝게도 이 경우에 공연이 취소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당신에게 어떠한 재정적 보상도 제공할 수 없다. 당신이 기대했던 답변이 아니라 미안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연락하고 피드백을 제공해 준 것에 감사한다.


정중히 사과는 하지만 단호하게 보상은 안된다고 선을 그었다. 기준은 공연이 진행됐다는 것. 사실 광고에서 사진과 영상을 봤기 때문에 무대 장치가 움직일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일 뿐, 공연은 어느 장면에서 장치가 움직였어야 하는지 추측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매끄럽게 진행됐다. 오페라단에서 분명히 공연이 진행됐기 때문에 보상할 수 없다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했고, 나도 공연 전체를 즐겼기 때문에 이의는 없었다.


잉글리시 내셔널 오페라단의 오페라 [마술 피리]는 '컴플리시테'와 '사이먼 맥버니'의 이름답게 아이디어의 향연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낸 황홀한 작품이었다. 컴플리시테, 사이먼 맥버니의 이름이 보인다면 다음 작품도 어떤 장르이든 주저없이 예매할 것이다.


무대 세트나 도구, 소품 없이 출연자들의 동작과 영상으로 화합과 화해를 상징적으로 연출했다. 


밤의 여왕이 부르는 아리아를 실제로 들은 것은 처음이었는데 그저 놀라웠다. 밤의 여왕은 주름이 가득한 얼굴에 휠체어를 타고 등장하는데 노래는 어찌나 강렬했는지! 유튜브에 연습 영상이 있는데 무대에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이 놀라운 노래는 꼭 들어보시길. 

https://youtu.be/jvtGRfI9Eok?si=jqxUdoKM6Ayg65Jp



이미지 출처:

https://www.eno.org/whats-on/the-magic-flute/

ENO's The Magic Flute 2024 © Manuel Har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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