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박사 코스워크 2년이 끝났다. 즉, 박사 과정에 더 이상 들어야 하는 수업이 없다는 말. 이제는 논문을 쓰고 졸업할 일만 남았다.
정말 자격 없는 내가 하버드라는 감사한 공간에서 2년간 수업을 들으며 배운 몇 가지. 지식을 넘어 지혜를 배운듯한 지난 2년을 돌이켜본다.
1)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라 (Know the unknown)
하버드에 왔으니 모든 것을 다 배우고 싶었다. 스시 뷔페의 컨베이어 벨트를 바라보는 느낌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지식을 다 먹어치우고 싶었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라는 결과론적인 자세로 임했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역설적으로 내가 배운 것은 나보다 훨씬 큰 지식이라는 공간을, 그 역사를, 그 현재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내가 모를 수도 있고, 내가 모르는 것이 당연하고, 아마도 평생 다 알 수 없을 것 같다는 해방감이다.
지난 2년 수업을 들으며 초반에는 내가 바보인가, 왜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지, 왜 나는 이거를 모르는 건지, 봐도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누구도 속 시원하게 설명해 주지 않아서 답답했던 기억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이게 영어의 문제인지, 내 나이의 문제인지, 지능의 문제인지 풀리지 않는 질문을 가지고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매번 때려 맞는 기분으로 수업을 끝나고 서둘러 짐을 싸가지고 나와서 그 우울감을 찬양으로 기도로 풀며 집에 돌아간 날이 부지기수였다.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 불안감과의 싸움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가 배운 것은 수많은 모름의 순간들이 만들어낸 굳은살 같은 편안함이었다. 졸업을 하고 업계에 돌아가서 언젠가는 리더의 자리에서 크고 작은 조직들을 대표할 때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리더로서 균형적으로 듣고, 의사결정을 하는 힘. 내가 모르는 것 (the unknown)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수없는 모름의 순간에서 깨달은 교훈이다.
2) 항상 한 사이즈 크게 입어라 (Step out of the comfort zone)
하버드에서 2년간 매 학기 어떤 수업을 들을지 고민했다. 필수과목을 제외하고는 선택과목에서 항상 마주치는 고민거리. 내가 편한 주제와 해볼 만한 레벨의 수업 들을 택해서 학업 부담을 현실적으로 운영할 것인가 vs 내가 잘 모르는 주제와 어려워 보이는 레벨의 수업을 들어서 빡세지만 성취감을 맛볼 것인가. 대부분의 순간에 나는 내 사이즈보다 한 사이즈 큰 수업들을 선택했다.
모두가 소프트 스킬의 수업으로 향할 때 나는 하드 스킬의 방법론 수업 들을 들었고, 사회/조직 심리학을 전공하는 경영대 수업에 앉아있었고, 경제학을 베이스로 한 보건대 박사 수업에 유일한 DrPH 학생으로 앉아있었다. 백신 관련 수업에는 면역학을 공부하는 박사생들, MD/PhD 하는 이과생(?) 들과 수업을 들으며 백신 뒤에 있는 과학을 (모르면서 아는척하며) 배웠다.
기말 과제가 페이퍼를 마구 써야 하는 수업을 골라 들었고, 논문 쓰기를 미리 준비한다는 생각으로 항상 버거운 수업들만 골라들었다. 처음에는 숨이 막히고 이걸 어떻게 안 쪽팔리고 잘 마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한 학기 두 학기 지나면서 나름의 노하우가 생기면서 그럭저럭 수업 들을 마무리 짓고 놀랍게도 수업 시간에 직접 써서 보는 시험들도, 수십 장의 페이퍼를 쓰는 수업들도 하나씩 해낼 수 있었다. 성적도 처음에는 실망스럽기도 했는데 끝판왕이었던 마지막 학기에는 그 어려운 수업에서 모두 A를 맞으면서 코스워크를 마무리 졌다.
성장의 핵심은 comfort zone을 벗어나는 것이다. 내 편함의 구역을 벗어나면 panic zone이 있고, 그 시기를 견디면 learning zone이 나오고 시간이 지나면 growth zone에 서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매 학기가 지나가며 그 가설을 몸으로 때우며 실험했고, 2년이 지난 지금, 나라는 사람은 항상 한 사이즈를 크게 입어야 결국에는 내가 커서 딱 맞게 된다고 알게 되었다. 그게 내가 서 있는 조직일수도 있고, 자리일 수도 있고, 역할일 수도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나의 역량보다 조금 더 큰 그곳에 계속 불편하더라도 발을 내디기를 바라본다.
3) 모르면 물어봐라 (Ask questions)
미국 생활의 가장 도움 되는 조언을 하나 달라면 "모르면 물어봐라"라고 이야기한다. 한국에선 모르면 조용히 있어라가 정답에 가깝다면 미국에선 모르면 물어봐야 하고, 필요한 게 있으면 물어봐야 한다. 그래야 떡 하나라도 더 얻게 된다.
수업 시간에도 모르는 게 있으면 주저 않고 물어봤고, 조교가 하는 세션에도 따라가서 조교에게 물어보고, 모르면 밤이라도 조교에게 이메일로 또 물어보았다. 수업 시간에 손을 들고 질문을 하는 게 부끄러워 책상 밑에서 손을 덜덜 떨던 시기가 있었다. 10년도 넘은 석사 시절 침묵을 깨고 손을 들어 (영어로 그럴듯하게) 질문하는 게 그렇게 힘든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시간이 흐르고 경험도 늘어서 떨지 않고, 눈치 안 보고,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통계 수업들을 듣다가 조교 세션으로 부족해서 물어보니 하버드 통계학 박사생들에게 개인 과외를 받을 수 있게 비용도 지원해준다고 해서 받았다. 학교 돈으로 시간당 5-6만 원짜리 과외를 한 학기를 받으면서 무사히 넘어갔던 시기가 있던 것도 다 물어봤기 때문이다. 논문 주제가 제대로 잡히지 않아서 큰 질문 하나 들고 여기저기 헤맬 때 지치지 않고 하버드 교수님들이나 관련 논문 쓴 사람들을 찾아내서 콜드 이메일로 끊임없이 연락해서 내 아이디어를 피칭하면서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들이 나에게 준 조언은 기억이 잘 안 나도, 내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해서 누군가에게 질문의 형태로 던지다 보니 뭉뚱했던 아이디어들이 구체화되었고 박사논문 프로포절도 써낼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말하기는 좋아해도 (눈치가 빨라서, 다들 싫어하니까) 질문은 많이 안 하는 아이였는데, 미국 와서는 의문이 들 때마다 일단 손을 든다. 그리고 생각을 시작한다. 그렇게 질문을 많이 하다 보면 결국 내가 더 배우고, 더 말할 기회가 생기고,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알게 된다. 이건 단지 학교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직장에서도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더 주목받기 마련이라 질문을 잘하는 것은 참 유용한 스킬임에 분명하다. 이제 어디를 가더라도 누구를 만나더라도 질문할 준비가 되었다. 질문이 열어준 많은 기회들에 감사하고 앞으로 올 기회들도 기대가 된다.
4) 학교에서 배운 것이 절대 진리는 아니다. (Take it with a grain of salt)
실무에서, 현장에서 10년을 보내고 돌아온 학교에서 배운 수업들이 모두 달콤한 시간은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때로는 내가 아는 세상과 학교에서 배우는 이론과 지식들의 갭이 너무 커서 답답하기도 했다. 세상은 2시 방향으로 가는데 수업에서는 5시 방향으로 간다고 배우고 있는 느낌이랄까. 수많은 이론과 과학적 방법론들이 맞는 말이고, 논문이라는 것이 지식의 생산물임은 부정하지 않으나, 그런 것들 위에 수많은 인간의 편향성, 무지, 정치 경제적 요인들로 비이성적인 결정들과 이상과는 거리가 먼 규칙과 행태들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곳이 현장이란 생각을 했다.
더욱이나 내가 일하는 국제 개발/국제 보건의 영역은 더욱 그러했다. 보건 정책에서 증거 기반의 정책결정을 이야기하지만 현장에서 내가 본 정책결정은 증거를 넘어선 정치가 있고, 사람들의 관습과 문화가 있었다. 지식의 무게가 모두에게 같지 않으며, 지식이 권위가 되어 때로는 개발도상국에 여과 없이 적용되는 모습도 많이 봐 왔다. 목소리가 없는, 힘이 없는 사람들의 삶에 들어와 가정(assumption)을 잔뜩 얹은 실험과 조사를 하고, 그것에 이성을 덧칠하여 지식이 되어 어디론가 팔려간다. 그 지식은 선진국에서 소비가 되고, 그 지식의 시작이었던 그들의 삶에는 크게 변화가 없는 것들. 그런 생각들이 2년 동안 수업을 들으며 끊임없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냉소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그러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지식을 배우러 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학계가 만들어내는 지식이라는 것에 대한 의구심도 키우는 시간이었다. 결국에는 학계와 현장의 밸런스가 중요하고, 부족하지만 그 가운데서 평생 줄타기를 하면서 내 역할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에는 행동가의 열정이, 머리에는 전략가의 지성을 갖춘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어딘가에 설 수 있다면 더 힘없는 사람들을 대변할 수 있는 자리에, 그들에게 리소스를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 2년간의 시간이었다.
영어에 이런 표현이 있다. Take it with a grain of salt. 굳이 번역하자면 걸러서 들어라고 할 수 있으려나. 학교가 알려주는 국제 개발/국제 보건이 분명 진리에 가깝지만 절대 진실을 아니라는 것. 어느 정도는 걸러 들어야 한다는 것. 실무/현장으로 돌아갈 나에게 스스로 되뇌어 본다.
5)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This too shall pass)
솔로몬이 반지에 넣을 문구로 추천했다는 이 말. 승리했을 때나 패배했을 때 모두 읽어야 한다는 그 말. 지난 2년 많은 업과 다운이 있었지만 다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작은 것들에 걱정하고 불안했던 시기가 있었던 것 같다. 학기가 시작할 때 이 수업을 잘 마칠 수 있을까. 이 연구 페이퍼를 내가 쓸 수 있을까. 퀄은 통과할 수 있을까. 다 지나갈 일이었는데 고민하는 데 시간을 많이 보낸 것 같다. 반대로 하버드에 합격했을 때는 엄청 기뻤는데 그것 또한 잠시였다. 재정이 너무 힘들었을 때 딱 나타난 가비 일자리가 한줄기 희망이었는데 그런 기쁨들은 현실의 무게로 금방 지워져갔다.
유엔을 내려놓고 지난 10년 월급쟁이에서 학생이 되는 경험은 여러모로 업 다운이 심한 언덕이었음을 고백한다. 현실은 고되었지만 이것 또한 다 지나갈 거란 믿음이 있었다. 이곳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루하루 순간순간에는 흔들렸고, 불안했고, 앞이 보이지 않은 순간들이 있었다.
2년의 시간을 보내고 이제는 인생에 있어 조금은 더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그래서 가졌을 때는 더욱 겸손하게, 없을 때는 다가올 기회들을 소망하며 기도의 자리로 나가게 되는 것 같다. 나이가 더 들면서 삶이 이끄는터뷸런스에 더 의연하게 침착하게 맞서는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 내 삶의"이것"은 내일도 나를 기다리고 있고, 난 그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기도로 다짐한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는걸.
그리고 이길의 끝에 모든 것이 지나고 나에게 남는 것은 내가 가진 재산이나 지위나 명예가 아니기에 세상의 헛된 것들에 마음과 눈을 두지 않기를 기도해 본다.
지난 2년 나를 지켜준 하나님께. 그리고 옆에서 나를 무한 지지해 주고 사랑해 준 아내와 자녀들과 부모님. 무엇보다 하버드에서 2년간 수업을 들으며 만났던 나에게 영감을 준 친구들과 교수님들에게 참 감사하다. 난 아직 논문을 쓰고 졸업을 해야 하지만, 남들의 졸업을 보면서 내가 저 졸업식에 박사 가운을 입고 서있을 그날을 그려본다. 그것 또한 다 지나가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