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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CHO Nov 11. 2022

호야의 현재는 Karma의 산물

업보(마지막)

내 아이가 진짜 사랑받고 있는지, 아니면 사랑받고 있는 척 하는건지 늘 궁금했었는데 그 의문이 얼마전 우연히 풀렸다. 얼마 전 마테오의 엄마가 8학년 때 셀폰으로 찍은 영상을 나에게 보여주었는데, 그 영상이 바로 내 의문에 대한 답을 알려주었다.여기에 올릴 수는 없지만, 호야가 마테오네 차 문을 열어주면서 반갑게 인사하는 1분도 안 되는 짧은 동영상이었다. 그 비디오를 보는 순간 나는 그들이 왜 그렇게 호야를 사랑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마테오는 중학교에서의 마지막 학년인 8학년 때 전학을 왔다.

마테오의 엄마 알레한드라는 "Most Likely to Succeed(2015)"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감명을 받아 '반드시 저 학교에 우리 아이들을 보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이애미에서 샌디에고로 이사를 감행했지만, 마테오를 이 학교에 등록시키기까지 꽤 오래 기다려야 했다. 결국 마테오는 중학생으로서는 마지막 학년인 8학년때에 High Tech Middle, Media Arts(HTMMA)로 전학을 올 수 있었다.


졸업이 1년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전학을 감행한 것은 마테오에게는 물론 부모들에게도 나름 큰 모험이었을 것이다. 새 학교, 낯선 환경에서 누구 하나 아는 이가 없었던 그 때, 호야가 마테오에게 먼저 다가갔고, 아침마다 호야는 차 문을 열어주며 자기의 방식으로 마테오를 환영했다. 


지금도 사람을 이름보다 차량 번호판으로 외우는 것을 더 잘하는 우리 아들.

그 당시에도 아침마다 친구들이 차에서 내리는 학교의 Drop Spot에서 서서 멀리서 다가오는 차량 번호를 보며 누가 내릴 것인지 맞추며 혼자 놀았다. 그것에 멈추지 않고, 호야는 매일 아침마다 친구들의 차 문을 열어주며 차에서 내리는 친구에게 따뜻하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엄마 입장에서 그닥 유쾌한 장면은 아니었다. 

'우리 아들이 호텔 보이도 아니고, 저게 뭐람?'하는 생각에 나는 애써 모른척 했다. 그냥 남들이 하지 않는 저런 행동을 하는 것 자체가 싫고 속상했던 것 같다. 

호야는 중학교 때 친구들과 스스로 담을 쌓고 자기만의 세계에 갖혀 사는 것을 자처했다. 부모로서 가슴아팠지만, 정작 본인은 행복했다. 불평 한 번을 하지 않고 행복한 중학생 시기를 보냈다. 물론 여기에는 자기가 원할 때 언제든 주변 친구들이 손을 잡아주었던 것이 정말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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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Boy, Hoya. 그리고 unhappy한 아이들

헌데 둘째를 키우며 이 '중학생 시절'이 얼마나 혹독한 시기인지 몸소 깨달았다. 

한국에만 중2병이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틴에이저들도 사춘기에, 각자가 처한 집안 환경의 문제까지 겹쳐 거기서 헤어나오기 위해 발버둥치는 시기인데, 그 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일테면 우리 딸 반에서 자신의 '생물학적 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들을 많아야 한 두명에 불과하다. 부모의 이혼이 마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져 나가기 때문에, '아직 이혼하지 않은 부모님'을 둔 아이들은 '우리 엄마아빠도 곧 이혼하지 않을까'하는 불안함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 부모님이 이혼해서 각자 따로 살아 그 사이를 왔다갔다 해야 하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이혼한 부모님의 새 남자친구/여자친구와 새 관계를 가져야 하는 아이, 심지어 동성애자였던 부모가 이혼해 한 부모의 새 이성친구와 관계를 가지게 되어 학교 행사에 여자 셋이 나란히 앉아 있는 경우도 보았다. 가족형태의 다양성에 대해 개인적인 가치 판단은 별개로, 기존의 가족 질서가 붕괴되면서 사춘기 아이들이 겪는 정신적 혼란은 상당했다. 이 모든 문제들이 겹쳐져 아이들의 교우 관계도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는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중학교는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살아남아야 하는 곳이다. 아무리 좋은 학군이라도 중학교 성적은 학군과 상관없이 낮은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하루 하루가 지옥같은 아이들에게 마냥 행복해 보이는 호야는 분명 위안이 되었을게다. 특히나 친구가 없는 전학생이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따뜻하게 맞아주는 친구 하나 없는 아이들에게 호야가 아침마다 차 문을 열어주며 건넨 인사는 그들이 그 날 하루를 버텨낼 수 있는 힘을 주었을 것이다.알레한드라도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호야는 마테오가 이 학교로 전학와서 제일 먼저 사귄 친구였다..고..


인간 관계가 한 쪽 방향으로만 일방적으로 흐르는 경우란 없다.

작용과 반작용이 동시에 일어나는 일상사에서 호야가 이렇게 오랜 기간동안 작용의 방향으로 배려를 받아온 것은 호야 나름대로 그 아이들에게 준 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이 평범한 진리를 나는 그동안 깨닫지 못했다. 심지어 호야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이 녀석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나름의 공덕을 오랜 기간동안 쌓아 왔던 것이다. 그러니 Karma라 할 밖에.


올 9월, 중학교에서 살아남은 작은 아이도 드디어 고등학생이 되어 호야와 같은 학교에 다시 다니게 되었다.

나중에 쓸 기회가 있겠지만, 특수한 형제를 둔 아이들의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중학교때는 둘째를 굳이 호야와 같은 학교에 넣으려고 애쓰지 않았다. 분명 호야의 학교가 더 좋은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금도 우리 아이는 '호야의 동생'으로 불리기 보다는 본인의 이름으로 불리길 원한다

입학한 지 1주일 정도 지났을 때, 작은 아이에게 물었다. 정말 오빠 친구들과 후배들이 오빠를 좋아하냐고, 네가 보기에도 정말 그렇냐.

작은 아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Yes"라고 대답했다.

심지어 자기 베프들도 나보다 오빠를 더 좋아한다며, 쉬는 시간에 오빠에게 툴툴대기라도 하면 친구들이 "너는 저렇게 좋은 오빠에게 왜 그렇게 못되게 구느냐"고 한단다. 그 정도로 아이들이 오빠와 잘 지내는데, 자기가 보기에 학교 아이들이 오빠를 좋아하는 이유는, "선을 잘 지켜서"란다. 


아침 등교길에 만나면 먼저 붙임성있게 인사하고, 어떻게 지내냐고 안부를 묻고, 자기가 알고 있는 그 아이 신상에 관한 것, 예를 들어 그 아이가 전 날 조퇴를 했다면, 어제는 왜 조퇴를 했는지, 만약 아파서 일찍 간거라고 한다면 지금 몸상태는 괜찮은지 등등 일상적인 것들을 묻는데, 워낙 기억력이 좋은 녀석이니 며칠 전에 아팠던 것까지 기억해 내어 "너 x월 x일에도 감기 걸리지 않았었냐? 근데 또 아파서 어쩌냐? 집에 가면 따뜻한 물 많이 마시고 푹 쉬라"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절대 그 아이가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도록 어느 정도의 '적정선'을 잘 지킨다는 것이다. 친구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싶어하면서도 한편으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에 지친 아이들 입장에서는 호야가 적정한 선에서 자신을 챙겨주고 있어 '편하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좋아할 수 밖에. 


자신의 방식, 

그러나 부모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 

사람이 사회 속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주변의 타인의 수 만큼이나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자폐인들은 분명 이런 면에서 타인과 관계맺기가 불리하다. 내가 우리 아들을 보며 느낀 것은 자신의 테두리에 높던, 낮던 장벽을 친 자폐인들은 그 안에 혼자 있을 때 가장 편하다는 것이다. 그 테두리 밖에서 이 아이를 보는 부모 관점에서는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고 항상 혼자인 아이가 가엽다고 충분히 느낄 수 있지만, '스스로 왕따'되는 것이 가장 편한 자폐인들은 생각보다 본인이 행복하다고 느낀다고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일반인들은 가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자폐인은 타인과 교류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때 자신이 쳐 둔 테두리 밖으로 타인에게 손을 뻗는 방식이 일반인들과 다를 수도 있고, 세련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서투를 수도 있다. 그 때 내 기준에 맞춰 타인의 행동을 평가하는 반응을 보이기 보다는, 그저 그의 방식을 존중해 주시라.

그의 방식을 받아주기 싫다면, 적당히 예의있는 언어로 표현하되, 분명하게 그 사람이 내민 손을 거절하고 조용히 그 자리를 뜨면 된다. 나와는 맞지 않는 '어색한 방식'일지라도 세상 어딘가에는 그런 방식을 좋아하는 이들이 있기에, 그들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 뿐이다.


그렇게 우리 아들은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포인트를 쌓아왔고, 굉장히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해 왔다. 이 관계는 다니고 있는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에 국한되지 않고 Point Loma 캠퍼스 전체, 그리고 학교 관계자와 학부모들에게까지 적용가능하다. PL 캠퍼스에 있는 High Tech 구성원 중 호야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인사이고, 호야의 이름을 듣는 순간 미소짓는다.

 HTH 밖에서도 이런 감사한 관계를 다시 만들 수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나는 우리 아들을 믿는다.


2022년 11월 9일

E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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