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아침 출근길, 창 너머 보이는 아침이 추울 것 같아 단단히 껴입고 나섰다. 걸어서 15분 거리의 출근길이지만 마주치는 것은 늘 새롭다. 날은 추워도 바람이 없고 햇살이 있어 걸을만했다. 8차선 큰길 사거리를 벗어나 접어든 2차선 도로 옆에는 축대 아래 작은 공터가 있다. 몇 가지 과실수가 심어져 있고 가꾸지 않아도 알아서 피는 토종 화초가 저절로 피었다 지는 곳이다.
아침 햇살을 받아 헐벗은 나무의 나신이 선명하게 드러나는데 유독 허술해 보이는 나무가 두 그루 있다. 자세히 보니 감나무다. 옆의 나무처럼 목질이 단단해 보이지도 않고 곧게 땅에 깊이 뿌리박고 서 있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나무는 금세라도 꺾일 것처럼 물기라고는 하나도 없이 퍼석해 보이는 데다 삼 년 가문 땅 거죽처럼 수피는 갈라져 꺼슬하다. 수형이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저것이 지난가을, 주먹만 한 주황색 감을 가지가 휘어지게 매달고 두텁고 윤기 나던 잎을 풍성하니 지녔던 그 나무인지 싶어 새삼 자세히 보게 된다.
사실 감을 딸 때도 어른들이 감나무는 조심해서 올라가라고 늘 주의를 주었다. 가지가 힘이 없어 부러지기 쉽다는 것이다. 웬만해서는 그냥 아래서 댓가지로 감을 딴다. 물론 요즘은 아예 키를 높이 자라지 않게 수형 관리를 하지만 집 뒤란이나 밭의 가장자리에 자리한 수십 년 된 오래된 감나무는 올려보게 제법 높이 자란다.
감나무는 그다지 튼실하거나 실하지 않은 가지로 물과 양분을 빨아올려 그 어느 과실수 못지않게 탐스런 열매를 키우고 결실을 맺는 것이다.
온 힘을 다해 한 해 농사를 마치고 추운 겨울에 서 있는 감나무를 보며 우리네 엄마들, 할머니들이 생각났다. 풍족하지 않은 집안에서도 자식들은 어떻게든 힘껏 거두고 가르쳐서 세상에 내놓고 시대의 뒤안길로 서서히 사라져 가는 이 시대의 엄마, 할머니들 같아서.
여름 가을의 늘 풍성한 모습만 생각하다가 갑자기 눈에 든 겨울의 앙상한 감나무가 새롭게 가슴으로 훅 들어온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