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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Dec 15. 2021

버거운 일

메타버스

지난주 근처 도서관에서 메타버스 특강이 있다고 해서 참석했다. 마침 시간이 맞아 미리 예약하고 참석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7명 정도의 사람만 참석할 수 있었다. 


몇 년 전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처음 만난 메타버스 세계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미래를 그린 SF영화라서가 아니라 아마도 곧 그런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강한 예감에서 오는 어지러움 때문이었다. 

꽁지머리에 머리띠를 한 젊은 강사님은 증강현실과 가상세계 그 내부와 외부를 분류해서 도식으로 보여주며 설명을 이어갔고 결론으로 시민, 특히 우리 같은 중장년 이후의 세대와 장애인이나 취약층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을 보여주는데서 끝이 났다. 전에도 비슷한 강의를 인터넷 매체를 통해 접한 적이 있지만 그저 감만 잡을 뿐 구체적인 어떤 것을 체득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익숙한 미국 메타버스 관련 기업과 메타버스를 이용한 게임 정도가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그려질 뿐이다.


"실제로 영화 '매트릭스' 같은 완벽한 가상 세계를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날이 올까요?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이나 '그녀(her)'에서 보듯이 아무리 가상세계에서 활동하고 실생활에서 밀접하게 이용한다고 해도 몸을 가진 우리는 결국 현실에서 의식주를 해결하고 사람과 교류하며 정서적 안정성을 찾고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게 기본이 아닐까요?"라고 강사분께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내 이해 범위와 우려는 거기까지였다.

그런 질문을 하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선불교에서 말하는 "환영, 공의 세계"(우리가 실제라고 믿는 현실 세계)를 메타버스를 이용해 깨달음에 이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키오스크 앞에 서서 더듬거리며, 나날이 새로워지는 모든 사회 시스템에 접근하며, 휴대폰으로 전달되는 이 사회에 살면서 필요한 지시사항을 수행하며 두려움을 느끼는 우리 세대에게는 모든 게 버겁다. 기껏 익힌 것들이 수시로 업그레이드되면서 다시 생경한, 모든 게 첨단을 걷는 우리나라에서 중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버거운 일이다. 컴퓨터라는 것을 실제로 대학 졸업 후 10년이 지나서야 접하게 된 우리 세대는 디지털 문맹을 벗어나기 위해 배워야 할 것도 많은데 그 속도도 급해 따라잡기가 힘들다. 요즘 Z세대들을 보면 이들은 이미 태생부터 디지털 두뇌를 장착하고 있는 것 같아 경이로울 때가 있다. 예전 우리는 모르는 것은 윗세대나 선배들에게 물어봤는데 지금은 전자제품의 사용법이나 사회 시스템 접속법 같은 것조차도 아랫세대에게 물어볼 게 더 많다. 거대한 사회의 흐름에서 도태될 것 같은 불안감 같은 것을 가끔 느낀다. 여행 중에 머문 와이파이도 잘 안 터지는 유럽 소도시에서 산다면 오히려 덜 피곤할 것 같다는 생각까지. 내 아이들은 제 부모세대의 이런 두려움을 이해나 할까?



어제는 숲 속 작은 시집 도서관에 갔다. 도시 근교의 산중에 자리한 도서관인데 앞으로는 작은 호수가 보이고 시집만 진열되어 있는 예쁜 곳이다. 나른한 오후 도서관 창 앞에 기대앉아 시집을 펼치다가 가상세계, 증강현실이 어쩌고 저쩌고 해도 이렇게 햇살 받으며 책을 볼 수 있는 이 한적한 공간에서의 즐거움과 어찌 치환 가능할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솔바람소리 들리는 숲 속 작은 도서관에서 한없는 충만감으로 오후의 시간을 보냈다. 

뭐 닥치면 내 범위 안에서 배워가며 살지 싶은 생각, 나름 열심히 배우고 익히며 살아왔는데 갑자기 문명권 밖으로 내쳐진 것 같은 내재된 두려움도 오늘 오후는 느낄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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