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써 드립니다.
글로 표현?전달?하기 제일 어려운 마음에 대한 글이 궁금해요!
채널A 예능 프로그램 <하트시그널 3>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인물은 서민재다. 8명의 남녀가 한집에 살며 서로 썸을 타게 만드는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 간의 미묘한 감정변화를 관찰카메라로 잘 잡아내 보여준다. 이번 시즌 출연자 중 유독 서민재를 좋아하게 된 건 “차라리 오빠랑 같이 요리 안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던 장면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단둘이 함께 요리할 기회가 드디어 찾아왔는데, 수준급으로 요리하는 상대방 앞에서, 서민재는 요리를 잘하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워 모든 순간 좌불안석이다. 결국 자신의 요리 실력을 (필연적으로) 들켜놓고는, 어쩌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싱크대 앞에서 행주를 쥐어짜며 말한다. ‘차라리 오빠랑 같이 요리 안했으면 좋겠어’
무슨 마음인지 단박에 알겠어서, 그걸 또 혼자 감내하지 못하고, 너무 속상한 나머지 있는 그대로 내뱉어 버리는 모습에 반했다. 파와 당근을 씻지도 않고 먼저 썰어버리는,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실수까지 하는 행동을 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생각은 ‘저렇게 좋을까’ 뿐이다. 말로는 같이 요리하고 싶지 않다지만 서민재의 모든 행동이 말해준다. 지금 나는 엉망진창이에요. 왜냐면 당신을 좋아하니까요. 어휴.
진심은 이렇게 느닷없이 튀어나올 때 더 강력하다. 능숙한 사람보다 서투른 사람에게 더 마음이 끌리는 성격은 어쩔 도리가 없는지 늘 지고 만다. 서툴러서 포기하듯이 실수처럼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늘 반대다. 어떻게든 가리고 꾸민다. 인스타에 있는 그대로의 사진을 올리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내 인스타 계정에 올린 사진들은 대충 찍은 것 같아 보이겠지만 사실 심혈을 기울여 올린 사진들이다. 찍을 때부터 몇 번이고 다시 찍는다. 그 중 베스트컷에 또다시 필터들을 덧씌운다. 최대한 그럴듯하게.
재난지원금으로 오랜만에 산 작약이 너무 예뻐서 며칠 흐뭇했었다. 어느새 은근히 만개한 작약 사진을 올리고 싶었는데 프레임에 걸리는 배경인 내 방은 아무리 보아도 예쁘지가 않았다. 각종 전자기기의 충전 케이블이 널부러져 있는 공간을 피하고, 자취방에 옵션으로 있던 전혀 내 취향이 아닌 장롱의 손잡이와, 밥솥 거치대를 피하고 나면 이젠 또 현관문 신발장이 보이는 것이다. 어떻게든 피사체를 클로즈업하여 최대한 배경이 잡히지 않도록 사진을 찍은 후, 열심히 보정을 한다. 필터들엔 손이 가지 않는다. 수동설정에 들어가 일일이 대비와 밝기를 조절한다. 그러고도 며칠을 망설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들도 있다.
튀어나오려는 진심은 늘 내 자취방처럼, 익숙하지 못한 칼질처럼 엉망진창이다. 그래서 함부로 표면 위로 드러나지 않도록 날뛰는 진심의 고삐를 꼭 붙잡고 산다.
쓰고 싶은 글은 늘, 진심이 어쩌지 못하고 불쑥 튀어나와버린 글이다. “차라리 오빠랑 요리 안했으면 좋겠어” 같은 글. “나 너 좋아해”라고 직접 본심을 던진 글까지 생각은 못하더라도, 엉망진창이야. 너무 괴로워 “(이럴거면 차라리) 너랑 요리 안할래” 같은 마음이 담긴 글. 꽁꽁 싸매고 절대 들키지 않으려 해봤지만 늘 어쩔 수 없이 들키고야 마는 글을 쓰고 싶다. 그만큼 진심인 것들에 대해서만 쓰고 싶다. ‘진짜야? 이거. 진짜냐고’ 수십 번씩 되묻는다. 글쓰기만큼은 인스타그램의 사진처럼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굳이 힘주어 꾸미기보다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는데 더 공을 들이고 싶다. 하지만 사회화에 성공한, 인정욕구에 목마른 나는 ‘해야 할 말’, ‘할 수 있는 말’을 담는 일에서 멈출 때가 많다. 하고 싶은 말. 튀어나오는 본심은 항상 업로드 전에 지워지고 마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표현하고 전달하기 힘든 마음은 늘 있는 그대로의 마음이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누구의 미움도 두려워하지 않고 내놓을 수 있는 솔직한 마음. 오늘도 있는 그대로를 들켜보려고, 그 어려운 길을 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