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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블 Jun 23. 2020

노래도 못하고 그림도 못그리지만 11

읽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써 드립니다.

“전혀 모르는 사이에 친구가 된다면? 어떨 거 같으신지 궁금해요”          



디어 마이 랜선 프렌즈-



어떤 존재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우리가 그 존재에 대해 전혀 모를 수 있을까?   한번이라도 그를 마주친 적 있다면 전혀 모르는 사이가 성립할 수 있을까? 그가 입은 옷, 안경 너머 눈동자와 피부의 색을 알고도 전혀 모른다고 말할 수 있을까. ‘첫눈에 반한다.’는 사실에 호들갑을 떨며 가슴 설레하지만 사실 첫눈에 알 수 있는 정보는 얼마나 많을까.





그럼 존재와 마주치지 않았다면, 전혀 모를 수 있을까? ‘그 순간 그 곳에 있었다’는 것을 ‘내가 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나는 너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고 생각해. 네가 ‘고라파덕’이란 아이디로 새벽 세시에 올린 글을 나는 다음날 느지막이 일어나 오후 두시에 읽을 수도 있겠지. 그 순간 이미 나는 너와 모를 수 없게 돼. 수많은 포켓몬 중에 하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포켓몬을 네 아이디로 골랐다는 것부터 이미 마음을 빼앗겼을 거야. 네가 골라놓은 신경 쓴 듯 신경 쓰지 않은 프로필 사진들, 어디에도 얼굴이 나오지 않은 이미지들뿐이더라도, 그런 색감과 구도의 사진을 선택한 너를 내가 전혀 모른다고 하기는 어렵잖아.     




보여주는 것만 볼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한결 더 편하기도 해. 서로가 서로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에 대해서 끝내 모를 테니까, 거기서 오는 안정감이 있지 않을까. 용기를 내어 한 발짝 더 다가가려 애를 쓰거나, 내쳐질지 모르는 두려움을 안고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되니까. 가끔은 농도가 짙은 무거운 감정보다, 아무 맥락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어떻게든 너를 응원한다며 눌러준 하트가 더 힘이 될 때가 있어. 전부를 다 설명한다 해도 이해받지 못할 것 같은 불안 속에서는 내가 편집한 만큼만 내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되니까. 그럼에도 누군가 눌러준 하트와 댓글로 위로를 받은 날들이 있었으니까.      




뒤죽박죽인 시공간 속에서 우리는 서로 만나겠지. 그러다 길거리를 걷다 마주쳐도 알아보지 못하겠지. 지하철 옆자리에 앉아있어도, 산책하다 실수로 부딪쳤어도. 심지어 네가 동전을 떨어뜨려도 차마 부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칠 가능성이 더 크지. 그런 재미있는 상상을 하며 길거리를 거닐다 보면 내 안에 조금 더 생기가 돌아. 혹시 핸드폰 액정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저 사람이 내가 올린 무언가를 보고 있을 수도 있잖아. 아닐 가능성이 훨씬 크지만 그런 상상이 가능해진다는 것만으로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조금은 더 다정해질 수 있어.     




조회수가 0인 글을 본 적이 없어. 신기하지. 이 세상의 누구 한 사람은 내가 올린 글을 본다는 게. 그 사람이 이 글을 읽는 너라는 것이. 모르는 사이지만 우리는 친구일 수 있어.



적당한 거리감과 가면 속에서 우리는 친구를 하자. 내가 상상한 네 모습과 다르다고 배신감을 느끼거나 실망하지 말고, 서로의 흔적 속에서 나눌 수 있는 만큼의 마음을 나누자. 서로의 조각을 하나 하나 바라봐주자. 그 조각이 다 모여 어떤 모습이 될지 안다고 속단하지만 않는다면, 어쩌면 서로가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관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을 수만 있다면. 네 이름과 목소리를 알지 못해도, 나는 네가 눌러주는 하트에 충분히 기쁠 것 같아. 고양이 알러지가 있는 나지만, 네 고양이 애교에 함께 심장을 부여잡을게. 네가 좋아하는 음악도 들을게. 기꺼이 네가 남긴 고민을 내 안에 품고 시간을 보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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