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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비 Apr 14. 2021

길에서 줍는 시간들

사소함이 주는 행복에 대하여


하루 2시간 반, 한 달 50시간, 1년 600시간.



집과 회사가 멀다 보니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나는 길에서 줍는 이 시간들을 꽤 좋아한다.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동안 동안 나는 일과 육아로 긴장된 머리와 마음을 툭하고 던져놓는다. 뒤엉킨 생각을 정리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거나, 책을 읽고 아이디어를 떠올다. 명상을 하고 좋아하는 음악에 빠져든다.


길에서 줍는 시간들을 좋아하는 것은 세밀한 계절의 변화를 전해준다. 나는 매일 콘크리트 상자 속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늘 비슷한 온도인 그 상자 안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기 어렵다. 큰 덩어리로 흐르는 계절의 흐름 정도만 느낄 뿐이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가는 10분 남짓. 그 길에서 나는 세밀한 계절의 변화를 만난다. 메마른 가지에 돋아나는 작은 싹은 며칠 후 튼튼한 잎이 된다. 또, 얼마 뒤 꽃봉오리가 맺히고 툭하고 열린다. 그 길은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녹음이 우거지고, 가을에는 단풍이 들고, 겨울에는 눈이 내린다. 운 좋은 날은 길에서 지내는 고양이와 인사를 나눌 수 있다.


길에서 줍는 시간은 계절을 전해준다


그 길에서 나는 세상을 관찰한다. 강남대로를 따라 걷다 보면 희한한 광경을 만날 수 있다. 클럽에서 밤새 놀고 나오는 젊은 친구들과 아침을 열며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교차하는 장면이다. 누군가에게는 끝이고 누군가에게는 시작인 길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과 휙휙 바뀌는 세상을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가끔은 일부러 길에서 보내는 시간을 연장하기도 한다. 복잡한 생각이 생기면 더 오래 길을 걸으며 그 생각들을 탈탈 털어낸다. 일상이 무료하다 싶으면 몇 정거장 전에 내려 잘 안 가는 길을 걷기도 한다. 낯선 골목길에서 재미있는 가게를 발견하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그래서일까? 여행지에서도 낯선 길을 따라 찬찬히 걷는 것을 좋아한다. 여행지가 더 세밀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시작하며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소중해졌다. 물론, 집에서 일을 하면 출퇴근 시간을 더 유용하게 쓸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날은 거의 집 밖에 나가지 않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쓰레기 버리는  10분을 빼고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게다가 일이 끝내고 바로 이어 눈 앞에 보이는 집안일을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길에서 보내는 시간은 하루 중 지극히 일부이자 아무것도 아닌 시간일지 모른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길에서 줍는 시간들을 소소한 행복으로 바라보자 하루가 특별해졌다. 사소한 것을 감사하게 여길 때 우리 삶은 농밀해질 수 있다. 사소한 행복은 다음 날을 열어가는 힘이 된다. 행복은 별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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