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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이비 Apr 22. 2021

지키지못한 약속, 할아버지 다녀올게

삼 일간의 장례가 끝났다. 아버님을 보내드리는 길, 차 안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아버님은 말간 얼굴에 고운 한복을 입고 환히 웃고 계셨다. 아픈 기색 하나 없이.


아버님은 평생 교육자로 살아오셨다. 두 아들에게 그다지 살갑지 않았지만 손자 손녀에게는 더없이 다정한 할아버지셨다. 사실 생각지도 못하게 아버님과 6년을 같이 살았다. 감사하게도 아들과 며느리를 위해 쌍둥이를 돌봐주시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싫다는 어머님을 설득해 아이들을 봐신다고 했다. 주말마다 댁에 다녀오실 때면 아이들에게 늘 손을 흔들며 '할아버지 다녀올게'라고 하셨다. 건강이 안 좋아지셨어도 늘 한결같으셨다. 일 년 전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시며 병원에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할아버지 다녀올게'라고 말씀하셨지만 결국 돌아오지 못하셨다. 게다가 코로나로 인해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손자 손녀를 끝까지 보지 못하셨다. 얼마나 보고 싶으셨을지 알기에 지금도 너무 마음이 아프다.


아버님은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한 분이셨다. 한 번은 어머님이 갑작스러운 두통으로 꼼짝을 할 수 없던 적이 있었다. 유치원에 있는 아이들을 데리러 갈 수 없다고 하셔서 좀 늦게까지 유치원에 부탁을 했다. 평소보다 늦게까지 유치원에 있을 아이들 생각에 부리나케 달려왔는데 유치원에 아이들이 없었다. 거동조차 힘든 아버님이 지팡이를 집고 한발, 한발 간신히 떼어 제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데려오신 것이다.  


그토록 의지와 생명력이 가득했던 아버님이었지만, 오늘 아침 한 줌이 되어버렸다. 아버님의 삶이 끝나는 것을 보자 허무함이 밀려왔다. '삶이 이렇게 가벼웠던가?' 장례를 치르는 3일 간 나는 삶과 죽음 사이 그 어딘가에 있었다. 아버님을 보내야 하는 동시에 아이들을 돌봐야 했다. 아버님을 더 이상 볼 수 없음에 슬퍼했지만 아이들의 농담에 실없이 웃었다. 보이지 않아도 삶은 그렇게 조금씩 조용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휘몰아치듯이.


아이들은 아직 죽음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지만 많은 추억이 있지 않다. 1년 정도 병원에 계시는 동안 아이들의 기억에서도 희미해져 갔다. 이제 할아버지의 삶이 멈추었지만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제 우리의 몫이 남아있다. 할어버지의 삶을 아이들에게 잘 전해주는 것. 그 마음이 아이들 안에 살아 숨 쉬게 하는 것 말이다.


집에 와 정리를 하며 남편 손에 낙서를 했다. 너무 슬퍼하지 말고 그분의 삶을 우리의 마음속에서 이어가자고 했다. 그래야 그분의 삶이 의미가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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