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치열한 식탁 대전이 벌어졌다. 전쟁의 서막은 사소한 질문이었다. 바로 ‘오늘 점심은 뭐 먹을까?’. 별거 아닌 주제가 단초가 되어 우리집 쌍둥이는 꽤 오래 설전을 벌였다. 아들은 짜장, 딸은 카레를 먹겠다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2주 전에 카레를 먹었으니 이번에는 짜장을 먹어야 해!”
“아빠가 카레를 더 좋아하니까 짜장보다는 카레가 나아!”
“아냐! 아빠는 카레도 좋아하고 짜장도 좋아해”
“난 짜장 싫어해. 짜장을 먹는다면 차라리 점심을 먹지 않을 거야!”
각자 왜 짜장과 카레를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날 줄 몰랐다. 식탁 대전을 끝낼 방법은 단 하나였다. 바로 엄마의 결심과 헌신(?)! 결국, 카레와 짜장 둘 다 만드는 것으로 식탁 대전은 막을 내렸다. 이런 식탁 대전은 자주 벌어진다. 쌍둥이지만 너무 다른 입맛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입맛’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했던 것은 신혼 때였다. 그동안 함께 살아온 가족은 대게 비슷한 음식 취향을 가졌다. 하지만 새로운 동반자는 나와 다른 입맛을 갖고 있었다. 심심한 맛을 좋아하는 나와는 달리 진한 양념을 좋아했다. 또, 매일 과일을 먹어야 하는 나와는 달리 입에 넣어줘야만 과일을 먹었다. 그때는 각자 자라온 환경에서 먹어온 음식이 다르니 입맛이 다르겠구나 했다.
하지만, 쌍둥이는 좀 다르지 않은가! 뱃속에 있던 기간, 세상에 나온 날까지 동일하다. 뱃속에서부터 9년 간 둘은 비슷한 음식을 먹어왔다. 그럼에도 둘의 입맛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간식을 고를 때도 아들은 젤리, 딸은 초콜릿을 고른다. 과일 취향도 다르다. 아들은 감을 좋아하지만 딸은 절대 먹지 않는다. 좋은 점은 서로 입맛이 너무 다르다 보니 남의 간식을 탐하는 경우가 없다.
그렇다면, 입맛은 환경이 아니라 유전인 걸까? 살펴보면 과일과 나물, 젤리를 좋아하는 아들은 딱 내 입맛이다. 초코렛과 빵을 좋아하고 과일을 잘 먹지 않는 딸은 딱 남편 입맛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아들이 좋아하는 짜장을 나는 싫어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에는 변수가 있다. 어렸을 때는 짜장을 잘 먹었다. 짜장이 싫어지게 된 것은 학창 시절의 기억 때문이다. 학교에서 수련회를 가면 꼭 마지막 날 짜장이 나왔다. 씹을 것이 별로 없는 말간 짜장을 먹는 것은 곤욕이었다. 그 뒤로 짜장밥을 싫어하게 됐다.
잠시 얘기가 샛길로 갔지만, 나 같은 궁금함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입맛이 선천적 요인(유전)인지 후천적 요인(환경)인지 궁금해하는 검색을 했더니 비슷한 질문들이 꽤 많이 보였다. 게다가 우리 집처럼 쌍둥이지만 입맛이 다르다는 인터넷 글들을 많이 있었다.
궁금함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놀라운 연구를 찾았다. 실제 런던에서 쌍둥이 3000쌍(!)을 대상으로 입맛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다는 것이다. 연구 과정이 매우 흥미롭다. 유전과 환경이 식습관에 미치는 영향을 분리하기 위해 똑같은 유전자를 지닌 일란성 쌍둥이와 환경은 유사하지만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가진 이란성 쌍둥이를 비교 분석한 것이다. 연구 결과 음식에 대한 기호의 41~48%는 ‘유전적 요소’에 의해 좌우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유전적 구성은 외모뿐 아니라 입맛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입맛 사건은 결국 우리 집에도 큰 영향을 줬다. 짜장 남자와 카레 여자의 원인이 엄마 아빠의 다른 입맛 유전자 때문임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아이들의 개취를 고려해 카레와 짜장을 동시에 만들기로 했다. 유전자에 대한 반반 책임(?)이 있는 엄마와 아빠가 각각 짜장과 카레를 맡아서 말이다! 식탁 평화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