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이비 Jan 16. 2022

경양식돈까스, 코로나와 슬로우 푸드


'밥도 알약으로 나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알약 하나 꿀꺽하면  배도 부르고 고른 영양소도 섭취할 수 있게 말이다.  그때는 너무 바빠서 밥을 챙겨 먹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매일 밥 먹는 시간을 줄이면 그만큼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을 것 같았다.


요즘은 '밥'에 대한 생각이 좀 변했다. 코로나로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며 할 일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때 떠오른 것이 요리였다.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를 하고 먹고, 치우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내가 차린 밥을 가족이 맛있게 먹어주는 것도 좋았다. 오늘은 뭐 먹지?'에서 오늘은 뭐해(!) 먹지로 바뀌며 예전과 달리'슬로우 푸드'를 즐기게 됐다.


오늘은 뭐해먹지를 고민하다 보면, 자주 '기억 속 음식'이 소환된다.(물론, 머릿속 음식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한계적인 탓도 있다.) 기억 속 음식 중 꽤 상단에 있는 것이 바로 '경양식 돈가스'이다. 요즘처럼 두툼한 고기가 씹히는 돈가스가 아닌 접시를 가득 차지하고 있는 얇고 넓은 돈가스 말이다. 경양식은 말 그대로 간단한 서양식 일품요리를 뜻한다. 코스요리를 간단히 하나의 접시에 담아낸다.


커다란 접시는 마치 종합선물세트 같았다


특별한 날이면 엄마 회사 앞에 있는 경양식집을 가곤 했다. 나는 늘 돈가스를 주문했다. 주문을 끝내자마자 고소한 크림 수프가 가득 담긴 하얀 그릇이 내 앞에 놓였다. 마시듯이 수프를 해치우고 나면 하얀 그릇은 커다란 접시로 바뀐다. 커다란 접시는 마치 종합 선물세트 같았다. 접시를 가득 채운 넓적한 돈가스, 마요네즈로 고소함을 더한 마카로니, 새콤달콤한 소스가 뿌려진 양배추 샐러드, 동그랗게 놓인 밥, 방울토마토 2~3개가 예쁘게 담겨있었다.


경양식 돈가스를 먹는 나만의 순서가 있었다. 우선 소스가 미처 닿지 못한 가장자리의 바삭한 돈가스를 재빨리 먹는다. 다음은 소스에 푹 담겨 말랑해진 돈가스 차례이다. '소스를 뿌려 말랑하게 먹을 거면 뭐하러 튀기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스를 머금은 튀김옷과 바삭한 튀김옷 모두 각자의 매력이 있다. 중간중간 마카로니와 양배추 샐러드로 느끼함을 날려주고, 마지막으로 방울토마토를 해치우면 커다란 접시가 깨끗이 비워졌다.


집에 먹다만 식빵이 눈에 띈 어느 주말, 경양식 돈가스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내 기억 속에 있는 경양식 돈가스를 아이들에게도 보여 싶었기 때문이다. 시장에 가서 돼지고기 등심을 넓게 펴고 마카로니와 양배추, 분말로 되어 있는 크림 수프를 샀다. 고기를 우유에 담그고 소스를 위해 루를 만들고.... 쉽게 보이던 한 접시에는 꽤 오랜 시간과 정성이 필요했다.


접시를 마주한 남편의 입가에 묘한 웃음이 번진다.


기름이 가득한 프라이팬에 돈가스를 넣자 지글지글 소리와 함께 고소한 튀김 냄새가 집안 가득 번져갔다. 돈가스가 튀겨지는 사이 크림수프를 내놓았다. 고소한 냄새에 시장기가 오른 아이들은 수프 접시를 뚝딱 해치웠다. 그 사이 커다란 접시를 꺼내 종합선물세트를 완성해갔다. 마카로니, 양배추 샐러드, 밥과 방울 토마토를 담고 마지막으로 갓 튀긴 돈가스를 올렸다. 아이들 앞에 하나씩 커다란 접시를 놓아주자 '이게 뭐지?'하고 신기한 표정이다. 그런데, 남편의 입가에 묘한 웃음이 번진다. 그는 내가 모르는 경양식 돈가스의 추억을 떠올렸으리라.





< 추억을 부르는 경양식 돈가스 >

* 재료: 돼지고기 등심, 식빵, 밀가루, 달걀, 우유, 소금, 후추, 식용유


1. 고기는 돼지고기 등심, 어린아이가 먹으려면 안심으로 고르세요.

돈가스는 돼지고기 등심으로 하고 정육점에서 돈가스용으로 펴달라고 하세요. 집에서 튀길 때 두꺼우면 겉에는 타고 속은 안 익을 수 있어요. 어린아이가 먹으려면 안심이 좋지만 부위 특성상 크기가 작아요.


2. 고기를 우유에 담가 두면 부드러워져요.

고기를 우유에 30분 정도 담가 두면 부드러워져요. 우유 꺼낸 고기에 소금과 후추를 뿌리면 밑작업 끝!


3. 빵가루 대신 식빵을 쓰면 식감이 더 좋아져요.

고기에 밀가루-달걀-빵가루 순으로 튀김옷을 입혀요. 밀가루는 계란을 입히는 용도라서 박력분, 중력분, 강력분 상관없어요. 빵가루는 식빵을 강판에 갈아서 사용하세요. 습식 빵가루를 쓰면 더 바삭해져요!


4. 튀길 때는 기름을 아끼지 마세요!

튀김의 생명은 아무래도 기름이에요. 고기가 푹 잠길 정도로 기름을 넉넉히 사용하세요. 온도가 낮으면 눅눅해져요. 튀김가루를 넣었어 온도를 확인해보세요! 보글보글 떠오르면 알맞은 온도예요.


5. 바삭함을 위해서는 식히는 것도 기술이에요!

바닥에 붙는 면적이 넓으면 금방 눅눅해져요. 식힘망을 써도 좋고, 없다면 오목한 접시에 젓가락을 여러 개 겹쳐서 지지대로 사용하세요.


6. 돈가스 소스 집에서 만들면 더 맛있어요!

시판 돈가스 소스는 아무래도 좀 시큼한 맛이 강해요. 버터와 밀가루, 간장, 설탕을 1 대 1로 준비해요. 여기에 식초는 간장의 1/2로 준비하면 됩니다. 프라이팬에 버터를 녹이다가 밀가루를 넣고 볶으세요. 갈색이 되면 간장, 설탕, 케첩, 식초, 물을 넣고 끓여줍니다. 걸쭉해지면 완성이에요! (버터 30g, 밀가루 30g, 간장 30g, 설탕 30g, 케첩, 식초 15g, 우유 2컵--> 집에 계량기가 없다면 10g을 1스푼으로 넣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치즈, 노란 맛의 첫 경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