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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May 05. 2024

단유할 결심

1개월 13일

단유한다고 해 놓고 어영부영 한 달 넘게 모유수유를 하고 있다. 


원래 계획은 조리원에서 일주일 동안 초유만 먹이고 완전분유수유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조리원에서 밥 먹을 때 유튜브로 신생아 관련 영상들을 보다가 모유의 이점을 깨달아 버렸다. 그래서 뒤늦게 모유수유를 시도했다.


늦은 젖물리기와 회음부 염증으로 인한 눕눕생활은 모유수유를 방해하는 2연타가 됐다. 덕분에 아기는 유두혼동이 와서 쮸쮸베이비 없이는 젖을 물려고도 하지 않았다. 


맘카페를 전전하며 모유수유 성공 케이스를 찾아봤다. 그러다 누군가가 댓글에서 “40일차에 그냥 물려봤더니 아기가 물어줘서 지금 완모하고 있어요”라고 믿기 힘든 증언을 했다. 4일차에 물려도 유두혼란이 오는데, 40일차에 그게 가능한가? 


어쩌면 아기가 커서 빠는 힘도 좋아졌으니 가능했을 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누군가로부터 또 들었다. 말도 안 되는 희박한 성공 사례라고 생각했지만 속으로 ‘어쩌면 나도? 흠…….’ 하는 희망을 몰래 품었다. 누구든 로또를 살 때면 그렇게 생각하듯이. 


그렇게 쮸쮸베이비와 유축을 오가면서 모유수유를 하다가 슬슬 포기의 길로 접어들었다. 하루는 아예 유축도 뭣도 안 하고 분유만 먹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예전에 예약했던 서울시의 모유수유 지원 사업의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다. 단유하려는 사람에게 모유수유 전문가가 발걸음을 하게 한다니, 취소할까…….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마사지나 받자는 생각으로 그대로 갔다. 


그런데 막상 유방 마사지를 받다 보니, 생각보다 모유가 꽤 나오고 있었다. 물론 그것도 적은 양이었지만 나는 아마 한 방울도 안 나올 수 있겠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방울방울이 아깝게 느껴져서 이 참에 유축이나 해 두자 싶었다. 그래서 유축을 며칠 했고, 그러다 어느 날 속는 셈 치고 직수를 물려 봤더니 진짜로 아이가 물었다. 심지어 빨대 빨듯이 쪽쪽 빠는 게 아니라, 턱 관절을 써서 정석으로. 


이래서 사람들이 로또를 사는 걸까?




직수에 성공했더니 이제는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하는 아쉬움에 단유를 또 못 하고 있다. 


쮸쮸베이비를 쓰지 않았더니 확실히 난이도가 낮아졌다. 이것은 달리기를 할 때 목발을 짚느냐 쌩쌩한 두 다리로 달리느냐의 차이와도 같았다. 쮸쮸베이비를 쓸 때는 신경 쓸 게 너무 많았다. 일단 보조 도구를 내도록 쥐어야 하니 한 손이 자유롭지 못했고, 여차하면 그 안에 고여 있던 모유가 흘러서 옷에 묻어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모유가 옷에 묻으면 만사 다 때려치우고 싶어졌다. 


그러다 직접수유가 가능해지니 두 손이 자유로워졌다. 수유쿠션도 이리저리 옮길 수 있었고, 아이를 들었다 놨다 할 수도 있었다. 젖을 잘 물리기 위해서 아이 머리의 방향을 잡는 것도 훨씬 쉬워졌다. 


게다가 이제는 수유쿠션도 없이 그냥 쿠션을 팔 밑에 끼우고 수유를 한다. 젖 물리는 자세를 알아보려고 유튜브를 뒤적였는데, 해외에서는 수유쿠션 쓰는 영상이 거의 없었다. 다들 그냥 중세 시대 그림에 나오는 성모 마리아가 예수에게 젖 물리는 모습처럼 생짜로 아이를 들고, 혹은 소파 쿠션 정도만 받치고 수유를 했다. 


사실 수유쿠션이 부피가 커서 다루기 어려웠던데다, 나는 뭔가를 할 때 가급적 인위적인(?) 도구들 없이 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실제로 쿠션이나 봉제인형만 간단하게 받치고 수유를 했더니 훨씬 부담이 덜해졌다. 


번거로운 목발들이 없어질수록 삶이 편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밤 9시마다 단유할 결심이 섰다. 


아기가 잘 때 자야 한다는 것은 신생아 육아의 철칙이지만, 아기는 3시간마다 딱딱 잠 자고 일어나는 존재가 아니었다. 3~4시간씩 자고 일어날 때도 있지만, 보통은 3분도 안 돼서 깨어 울었다. 그렇게 몇 번 자다깨다를 반복해야 겨우 1시간 이상의 낮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보니 밤에 부족했던 잠을 낮에 보충하기도 어려웠고, 저녁이 되면 하루의 피로가 누적돼서 엄청 피곤했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와 씨름을 해가며 모유수유를 하려다 보니 더 이상은 못하겠다는 생각이 팍팍 들었다. 


이 와중에 최근에는 뼈마디가 아프기 시작했다. 산후풍이란 이런 것인가 싶을 정도로 여기저기가 아팠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파서 세숫대야에 뜨거운 물을 받고 담가두기도 했고, 그 밖에도 허리도 디스크가 살짝 나갔나 싶도록 찡하게 아프고 무릎도 치골도 욱씬거렸다. 


후폭풍이 몰려오는 것일까, 아니면 아기를 들었다 놨다 하다 보니 점차적으로 관절에 무리가 와서 아파진 걸까? 이유야 어찌 되었든, 몸이 아프니 모유수유가 더욱 힘들게 느껴졌다. 무슨 부귀영화를 위해서 아이를 깨워가며 30~40분씩 먹이고 있는지 회의가 들었다. 눈 감고 코 고는 아이를 데리고 모유를 먹이다가 남편에게 바톤 터치를 하고 분유를 먹이면 아기는 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10분 내로 100ml 안팎을 꿀떡끌떡 먹었다. 아니, 모유는 세월아 네월아 하고 먹었으면서.


하지만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또 할 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아직 젖이 마른 것도 아니고, 모유가 면역 성분도 좋다니까 보약처럼 먹이면 좋지 않을까…….




만약 모유수유가 솔로 플레이였다면 조금은 더 홀가분하게 그만 두었을 지도 모른다. 


모유수유는 과연 팀플이었다. 나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아기의 협조도 필요했다. 입을 크게 벌리는 법, 먹다 지쳐 잠들지 않는 체력, 빨대처럼 ‘쫍쫍’ 빠는게 아니라 턱 관절을 움직여서 먹는 요령 등등. 


특히 분유는 젖병 꼭지를 톡톡 치기만 해도 먹을 수 있는 반면, 모유를 먹으려면 아기가 턱관절을 열심히 써야 했다. 그랬더니 알이 배겼는지 울 때도 “응애~”가 아니라 “응애~배배배배” 하고 턱을 덜덜 떨며 울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유튜브에 나오는 것처럼 정석대로 젖을 무는 아기를 보면 기특했다. 나만 열심인 게 아니라 아기도 노력하고 성장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밤중 수유를 하다 보면 어두운 수유등 불빛 속에서 눈을 땡그랗게 뜬 아기의 옆모습을 볼 수 있다. 아무도 그 각도와 위치에서 아기를 볼 일은 없을 테지. 그럴 때면 ‘너랑 나만 아는 서로의 표정과 시간이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이 수유하는 모습을 보면 그냥 아기를 가슴에 착 물리기만 하면 알아서 수월하게 빠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유수유는 아기와 합을 맞추면서 끙끙대던 시간이 켜켜이 쌓여서 이뤄지는 셈이었다. 그리고 시간을 같이 많이 보낼수록 아기와 더 친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왠지 모를 동지애, 혹은 전우애, 그런 감정이 느껴졌다.


어쩌면 신은 이 효과를 노리고 포유류에게 젖물리기의 시련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모유수유로 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계속 들었다. 


혼합수유에서 모유수유를 하려면 하루 열 번 이상 젖을 물리고, 최소 6번 이상 유축을 해서 젖양을 늘려야 한다고 한다. 그 외의 시간에는 스스로 유방 마사지도 좀 하고, 따뜻하게 찜질을 해서 젖이 잘 돌도록 하면 도움이 된다고 한다. 


반면에 나는 하루에 네 번 정도 젖을 물리고, 유축은 힘 딸려서 못 하고 있다. 수유 횟수가 하루 6회다 보니, 밤중수유 두 번을 놓치면 겨우 4~5번의 기회 뿐인 셈이었다. 그러나 밤중수유에는 모유를 줄 자신이 없었다. 몇 번 해 보기는 했으나, 낮에도 먹다가 자는 아이를 어떻게 밤에도 깨워서 먹일 수 있을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런 와중에 그저께는 카페를 가려고 수유텀을 건너뛰었다. 남편에게 분유수유를 맡기고 스타벅스를 갔다. 단지 선물 받은 스트로베리 세트를 먹고 싶었기 때문에……! 아이 키우느라 벚꽃 구경도 못 갔는데, 이 정도는 먹을 수 있지! 사실 벚꽃 구경은 ‘못’ 갔다기 보다는, 이제 십 년 이상 해봤더니 큰 감흥이 없어져서 굳이 가지 않는 것도 있지만……. 


아무튼 진짜 모유수유를 본격적으로 하려면 하루에 열 번 이상 젖을 물려야 한다는데. 하지만 설렁설렁 사는 지금이, 산후 3주차까지의 내 상태보다는 훨씬 나았다. ‘완전모유수유로 가지 못하면 끝장이야!’ 하는 강박관념은 산후우울증을 불러오기 딱 좋았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지금처럼 ‘먹으면 좋고~ 덜 먹어도 안 먹는 것보다는 낫겄지~’ 하는 마인드가 ‘모 아니면 도’라는 흑백논리(?)를 막고, 단유 사태를 막았다. 어쩌면 육아에는 전반적으로 이런 마인드가 필요한가 싶은 생각이 든다. 


오늘도 완전혼합수유러는 완전모유수유를 하는 꿈을 꿔본다. 게으르게.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Bia Octav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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